크눌프
  1.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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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콜레스테롤이 눌러붙은 뱃살과 피로에 찌든 얼굴, 비율이 맞지 않는 신체이긴 하지만 어릴 때의 내 모습은 여장이 어울릴 정도로 이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굳이 여장을 해놓고 사진까지 찍어놓을 것은 또 뭐람.)


 


저 사진에는 벗다만 것인지 입다만 것인지 어정쩡한 자태이긴 하지만 제대로 갖춰입고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그 사진은 여자로 오인할만큼 참 이뻤었다.


학교 교실 꾸미기에 사용한다고 재미있는 사진 하나씩 가져오라길래 하필 그 사진을 들고가서 교실 뒷 벽 보드판에 곱게 오려 붙여놓았더니, 이게 누구 (여)동생 사진이냐고 물어보는 선생들 덕분에 1학년 1학기만큼은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었다.


 


기실 본인이야 중학교로 올라오며 스포츠머리로 짧게 깎인 머리 때문에 미모가 죽은 것이 아쉬워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으며 분필가루를 비롯한 각종 먼지로 가득찬 중학교 교실 환경과 짧은 머리, 한창 호르몬이 왕성한 성장기가 겹쳐서 머리통에 이전까진 없었던 비듬까지 생겨버렸으니 일종의 자기혐오의 지경에까지 빠졌다고나 할까. 사진 속의 미태(美態)와는 그때부터 점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고 할 것이다.


 


복숭아빛 뺨을 곱게 물들이며 잘 빗어넘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던 그 고왔던 어린 시절에는, 지나가는 여학생을 쳐다봐도 내가 여장을 해도 쟤보다는 낫겠다.. 이런 야무진 생각을 종종 하기도 했었으니, 반에서 1등은 당연하고 전교 순위에 들 정도의 미소녀(美小女)여야만 그 엄한 '망상'에 가까운 미적 기준을 넘어서 '예쁘다'고 인정을 해줄 수 있을 정도였다.  


 


유치원에나 들어갈 무렵에는 그 미모가 더욱 절정에 달하여 인근 여자애들이 그 '나'를 차지하기 위해 주먹다짐을 하기도 하였더란다. 주변 여자애들 코피 몇 번 터트렸을 백某라는 동갑내기 여자애가 '나'를 차지하였다고도 하는데 전리품으로 나를 찜해놓고는 아쉽게도 가정 형편 때문에 서울로 이사갔던 그 아이는 침발라놓았던 내가 잘 크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왔는지 중학교 즈음에 부산 해운대에 놀러간다는 이유로 나의 가족과 동반 바캉스를 가게 된다. 많이 여성스러워졌긴 했는데 그 여성스러워짐이 어색해서 수줍어진 탓도 있고 몇 년의 공백기 때문에 어색해진 것도 있겠고 내가 '역변'을 시작한 탓도 있을 것이고 아무튼 그애는 그렇게 그 여름을 끝으로 사라져갔다.


 


그 백某가 서울로 이사를 간 뒤에는 한살 어린 이웃의 여자애 김某가 나를 노리기 시작하였는데 남녀의 차이도 제대로 모를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여자애는 (지금 생각해봐도 어이없을 정도로 육체적으로 적극적이어서) "오빠야,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 못 들어주나" 같은 멘트로 나를 녹인 끝에 끝내 내 손가락 하나를 얄궂은 지경에 이르게 하였더랜다. 덕분에 나는 지금도 내 손가락에 뭐가 묻어 있는 꼴을 못 보고 빠닥빠닥 뽀드득뽀드득 씻곤한다. 땀이라도 묻어 찐득해지거나 손에서 냄새라도 나는 경우 손소독제나 정 안되면 핸드크림 같은 것으로라도 처리를 해야 안심이 된다. (세수는 안하고 자더라도 손은 꼭 씻는다고나 할까.)


 


그애의, 지금 생각하면 오싹하기까지한 부탁을 들어주고난 후 그대로 멍하니 얼어붙어 있는 그때 그 상황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애의 어머니가 똑똑 노크를 하고는 방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그때의 내 심정은, 칼을 쥐고 <백호절당>에 함부로 들어왔다 역적의 누명을 쓰기 직전의 <표자두 임충>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싶다. 뭐 하고 놀고 있었냐고 묻길래 '금강산 호랑이'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급히 둘러 대답했지만 그세 붉어진 뺨마저 감출 수 있으랴. 


 


남중, 남고를 지나 그 나이를 처먹고도 여전히 어린 날의 망상과 착각에서 채 벗어나지 못해 여자 보기를 돌보듯 했던 대학시절을 지나 군입대까지 하게 되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의 그 쫄병 시절에는 입대 직전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여드름이 심해져서 피고름이 가득찼던 탓에 (군대괴담처럼 전해지는) 고참들의 그런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베게닢에 여드름 피고름을 묻혔다고 혼나기는 했었지만.


 


제대하고 졸업까지 했을 무렵이건만 여자와의 썸싱은 없었다.


대학시절도 그렇고 어학연수 시절도 그렇고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 여자와 뭔가 되어가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 자신이 보기에도 이렇게만 가면 그럴듯한 커플의 모습이요 연애의 형태가 되겠다 싶은 적도 있긴 하였지만 결정적인 순간 내 마음 속에서는 No, 이건 사랑도 연애도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단의 벽을 넘어선 것은 여전히 그 손가락 뿐이었달까.


 


남들은 사고를 쳐도 몇 십 번을 쳤고 남녀상열지사를 써도 책 몇 권을 썼을 이 나이인데도 어린 시절 문제의 그 <검지손가락> 트라우마가 단단히 자리잡힌 것 때문인지 결정적인 순간에 큰 욕심이 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이후의 위험에 대한 부담감, 도덕적인 두려움이 먼저 생각난다고나 할까. (이대로 훅~ 했으면 했던 적이 전혀 없었던 적은 아니지만 하필이면 그때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었다. 호텔, 모텔은 커녕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구입할 몇 백원의 돈도 주머니에 없었다고나 할까. 돈은 빌려서라도 마련하면 된다지만 그 상황에 상대방이 미성년자인 것은 아닌가 그게 그리 걱정이 되더라는 얘기. 그 상황에서 민증을 까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하긴 미성년자라고 해도 둘이 좋아서 일이 벌어졌다면 어찌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역시나 앞서의 그 <백호절당> 같은 사건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장담을 못한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몸 쓰는 것에 대해 무뎌서인지 육체적인 모험심이 결핍되어서인지 너무 얌전하게 자라서인지 그게 그렇게 크게 욕심나지가 않고 행여 야한 것을 보더라도 보는 것은 보는 것이로되, 정작 내가 저렇게 엎드려 저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면 실로 어색하고 막막하게만 느껴지기만 한다. 가장 중요하다면 중요한, 본편이라면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부분으로 하는 행위는 막막하게만 느껴지는데 그놈의 검지손가락만큼은 묘하게도 자신있어하는 것 같으니 이 무슨 육체적 아이러니인가.


 


암튼 요즘 세태에는 보기드문 '숫-스러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던 중, 집 근처 어느 한적한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살결 뽀얀 게이를 만나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할고.


때를 밀어주겠다고 해놓곤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던 '그곳'을 손대기 시작하니. 나란 인간의 '그곳'에 닿은 '타인'의 첫 손길이 게이의 손길이라니 오호통재라.


그놈의 게이 왈 "만져줘야 시원해지지예"라는데 예끼, 이놈.


 


예전의 고왔던 모습은 흘러간 옛 추억 속 사진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뿐 지금에 와서는 폐인의 몰골, 루저의 형상이 되어버린 것이긴 하지만, 천하의 김태희를 보고도 턱이 어쩌니 아랫입술이 어쩌니 날 선 평론을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달까.


다만 흘러가는 세월이 아쉬울 뿐이고 내 검지손가락이 부러울 뿐이니 


하긴 그놈의 검지손가락도 이제는 속절없이 마우스휠이나 굴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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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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