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노인이 술병을 들어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목청껏 샤아를 비난하던 노인이 술이 가득찬 술잔을 들더니 한 입에 털어넣었다.

"그랬던 샤아 녀석이 지금은 지온의 총수가 되어 각하 소리를 듣고 있으니 세상 참 모를 일이오." 

"샤아의 네오지온이 과거의 그 지온을 잇는 세력이라 하니 세상 일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이지요."

"샤아 그 녀석은 네오지온, 액시즈 이전에 연방군 내 정풍(淨風) 운동도 했었다오. 연방군 내 부패한 고급장교들을 정화하는 군사 쿠데타였지. '에우고'라고 그랬었던가... 젠장. 티탄즈를 내친 것이 연방군 내의 에우고, 지온이 아닌 연방군 내 신진 파벌이었다오. 쿨럭쿨럭. 그때 샤아 녀석은 크와트로 파치나란 이름으로 연방군 군복을 입고 연방군 행세를 했었다오. 지온에서 활동했던 샤아가 아니냐고 물으면 딱 잡아뗐었다고 합디다. 지금의 나는 크와트로 파치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말이오. 일년전쟁 당시에 샤아와 안면이 있던 지온군 장교가 지온 세력의 밀서를 가지고 연방군복을 입고 있는 샤아를 찾아갔을 때 샤아 녀석은 그 장교를 고발해버렸고 샤아 놈의 속도 모르고 샤아를 찾아간 장교 녀석은 사형대로 끌려가고 말았다는 얘기도 있다오."

"허허, 어찌보면 '샤아'란 인간은 남들보다 세상을 잘 아는 인간이랄수도 있을 겁니다. 범인(凡人)들보다 세 배는 빠르게 세상의 흐름을 타고 넘어 새로운 물결을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청류와 탁류, 우주와 지구, 선과 악을 가리지 않고 한 몸에 집어 넣고 삼킨 인간이 아닌가 싶지요. 괴물(怪物)인지 거인(巨人)인지, 영웅(英雄)인지 악인(惡人)인지는 적어도 앞으로 백 년은 지나봐야 명확히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백 년이라 ... 쿨럭. 과거를 많이 아는 나 같은 늙은이는 빨리 죽어야 맘이 편한 세상이오.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것이 인간의 과거이니... 이놈의 세상 빨리 죽어야 ... 쿨럭쿨럭 ..."

"술잔이 또 비었구려. 죽은 자는 억울하고 산 자는 원통한 것이 세상 이치니 한 잔 쭈욱 드시오."

"그때 그 아바오아쿠 전투에서 동료들과 함께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 쿨럭쿨럭 ... '나'란 인간은 너무 오래 살았나보오. 일년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지온군 동료들이 보고 싶어진다오. 우주의 별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을 희망봉 삼아 우리는 멀고먼 항해를 했었다오. 그 항해의 끝에 자유와 혁명을 부르짖던 스페이스노이드들의 승리가, 계급 해방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 끝은 ... 쿨럭쿨럭 ... 배신자만 살아서 떵떵거리는 지옥이었구려."

옆자리 동년배 노신사가 건네준 술에 얼큰하게 취해버린 불평쟁이 노인네는 비틀거리며 술집을 나오다가 검은 양복을 입은 청년들에게 끌려갔고 이후 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고 한다.
혼란의 시기,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이 어디 그 노인네 한 명 뿐이겠느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