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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게임을 즐겨 해봤던 이들이라면 이름 한 번은 꼭 들어봤을 코에이(KOEI)란 게임 회사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는 그 코에이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거대 영화사가 있다. 일본 문화에 끼친 영향력을 따진다면 게임회사 코에이를 능가할 그 영화사의 이름은 바로 토에이(TOEI 東映)로, 일본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토에이 플라이어스 구단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토에이 플라이어스는, 한국계 야구선수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선수가 데뷔를 했던 팀으로, 장훈 선수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옮겨가서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와 함께 OH포를 완성하기 전까지 열심히 뛰었던 팀인데 한국에서 건너간 백인천 선수가 토에이 플라이어스의 중심타자였던 장훈 선수와 함께 뛰기도 했던 팀이기도 하다.


 


1954년부터 1972년까지 야구단 토에이 플라이어스를 운영했던 바로 그 회사가 토에이(東映) 영화사로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1958년작)을 제작하기도 했으며 마징가 시리즈와 겟타 로보 시리즈, 세일러문 시리즈, 드래곤볼 시리즈 등 기라성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에 국한되어 설명해도 논문 몇 편은 거뜬히 나올 토에이 영화사이지만 가면 라이더 같은 특촬물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작품이 많이 있다. 물론 일반적인 영화로도 다방면에서 히트작이 많은 곳이 바로 토에이 영화사이다. 그리하여 이른바 일본의 3대 영화사 토에이, 토호, 쇼치쿠를 꼽는다고.


 


특이한 점은 이 토에이란 영화사가 일반적인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영화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쿠자물, 공포물, 괴기물에 서슴없이 손을 대던 토에이는 SM 장르 영화까지 만든다. 성수학원(1974), 얼핏 한글 제목만 봐서는 성수동 어디의 학교 재단 이름 같기도 한 이 영화는 일본 어디에 있는 수녀원을 배경으로 당시 유행하던 익스플로테이션 장르의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익스플로테이션 (Exploitation), 착취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B급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잊을 수 없는 장르를 뜻하는데, 흡혈귀의 성, 여자 교도소, 여자 수도원 등을 배경으로 섹스와 폭력이 난무하는 거친 핏빛 세계로 관객 여러분을 안내할 것이다.


 


영화 성수학원의 오프닝 타이틀에서, 신인(新人) 배우라고 소개된 타키가와 유미(多歧川裕美)의 등장 역시 일종의 착취에 가까운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 것으로 끈질긴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배우로 입문한 그녀는 그렇게 노출이 많은 영화인줄 모르고 촬영 현장에 나오게 된다. 이런 영화인줄 몰랐다고 하며 옷을 벗을 수 없다고 뒤늦게 따져봤자 이미 계약서에 도장은 찍은 상황이요 건장한 스태프들은 어린 여배우 하나를 둘러싸고 영화 촬영을 종용한다. 이렇게 되니 약자인 신인 여배우로선 울며 겨자먹기로 촬영에 임하게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착취(익스플로테이션) 무비에 걸맞는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도시적인 이미지의 여주인공이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남자와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여자가 마음에 든 남자는 하룻밤의 정사가 아닌, 좀 더 오랜 기간의 사랑을 원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다르다. 그녀에게 있어 이 남자와의 하룻밤은 목적지인 수녀원에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여자가 여자가 아닌 곳을 가려한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 수녀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순결을 지키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일텐데 이 여자 뭔가 수상하다. 아니 수상한 것은 그녀만이 아니다.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타키가와 마야, 그녀가 들어간 수녀원은 엄격한 규율과 혹독한 형벌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움베르토 에코 지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장미의 이름 속 수도원이 이단 심판과 마녀사냥, 연쇄살인이 이어지는 곳이라면 마야가 들어간 수녀원은 겉으로는 성(聖)스러운 곳이나 속으로는 짐승들의 욕망이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비틀린 욕망과 강압적인 권력에 의해 그곳은 린치와 강간, 고문과 살인이 자행되는 곳으로 변질되어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질서정연한듯 보이는 이곳은 첫 입문식부터가 나체로 이뤄진다. 이곳에선, 일탈과 자유를 꿈꾸던 이들은 인정사정 없는 처벌을 받게 된다. 익스플로테이션 영화답게 이 과정에서 여자들의 동성애 장면과 SM에 가까운 고문 장면을 보여주며 진행된다. 식욕을 못이겨 음식을 훔쳐먹은 철없는 두 수녀가 다른 수녀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반라의 몸으로 서로에게 지칠 땨까지 채찍질을 하는 형벌을 받는다든지 규율을 어긴 이가 가시 돋힌 장미로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얻어맞는다는 등의 장면이 화면 가득 이어진다.


 


이런 지옥 같은 곳을 여주인공 마야는 왜 자청해서 들어간 것인가. 그녀는 장미의 이름 속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가 그러하듯 수녀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들의 비밀,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가장 큰 악을 찾아내기 위해 그곳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었다. 폭력적인 규율, 그 권력의 정점엔 마치 장미의 이름 호르헤 같은 인물이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여주인공 이금자가 백선생 (최민식)을 처벌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듯 성수학원의 여주인공 마야 역시 성스러운 짐승들로 가득찬 이곳, 그 짐승들의 왕을 찾아 처벌하기 위해 움직인다.


 


마야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이 수녀원을 찾아왔던 것이었고 수녀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의 열쇠를 찾는다. 종교란 이름의 이데올로기를 지배하고 있는 원장은 고백이란 형식을 통해 수녀들의 감정적 약점을 틀어쥔 뒤 그 약점을 빌미로 자신의 육욕을 채우고 있는 광인(狂人)이었다. 그 광기의 근원은 원폭에 의한 것이었다. 대동아 전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미쳐 질주했던 일본은 핵폭탄의 위력 앞에 항복하게 된다. 맹목적으로 추종했던 기존의 이데올로기가 또다른 거대한 힘 앞에서 처참하게 붕괴되는, 그 파괴와 죽음의 혼돈이 그를 육욕과 권력, 폭력에 미친 광인으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야의 어머니는 과거 이 수녀원의 수녀였고 광인(狂人)의 육욕에 희생된 또 하나의 제물이었다. 수녀복을 입고 수녀원 곳곳을 살펴보던 그녀는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하나씩 밝혀낸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호응하는 체제 일탈적인 무리와 광기어린 지금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고문과 살인마저 서슴치 않고 자행하는 무리들이 뚜렷히 대비된다. 그 갈등은 막부 시절 서양 종교를 배척하기 위해 만들어진 잔인한 고문인 후미에 장면을 통해 정점으로 다가간다.


 



 



 


 


후미에 형벌을 통해 신(神)을 모독하는 행위를 하게 되었으나 그녀 자신은 신의 존재를 여전히 믿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동료 수녀의 죽음을 지켜본 타키가와 마야. 이제 마야는 복수의 대상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간다. 동성애와 SM 장면으로 점철되었던 이 영화는 막바지의 클라이막스로 맹렬히 달려가고,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B급영화 매니아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가 어쩌면 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마저 하게 되는 장면이 나오게 된다.


 


만화 올드보이에는 없으나 영화 올드보이에는 있는, 결정적 장면 진행되고 나면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수녀원에 들어왔던 타키가와 마야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다. 권력과 폭력의 정점에서 색귀가 된 원장은 이전까지의 위엄을 잊고 큰 충격에 빠지게 된다. 수 십 년간 수녀원이란 밀폐된 공간에서 독재자 노릇을 하던 원장은 자신이 그동안 권력 유지의 상징으로 삼았던 십자가에 찔려 쓰러진다. 원폭 후유증으로 얼룩진 원장의 몸에 박힌 십자가는 원장이 죽는 그순간 똑바로 기립하여 그 영적 광휘를 보여준다.  


 


악의 정점에 있던 원장이 죽고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인물들까지 하나둘 물리친 여주인공 타키가와 마야는 자신의 존재를 낳아준 이에 대한 복수와 징벌을 마친 뒤 수녀원 밖으로 나온다. 영화의 처음처럼 도심 한복판의 도로 위를 또각또각 걸어가는 그녀. 그런 그녀가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영화는 정처없이 걷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난다.


 


영화 속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수녀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일들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도 일어나고 있다. 고립된 집단 속에 이뤄지는 변태적인 행위와 그에 동반되는 가학적인 집단 폭력 속에서 고통받는 젊은이들에 대한 뉴스가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는 요즘, 나는 오래 전에 보았던 이 B급 컬트 영화 떠올린다. 성스러운 짐승들의 학원, 성수학원(聖獸學院)에 이은, 충성스런 짐승들의 학원, 충수학원(忠獸學院)이여, 이제 그 광기어린 가학의 행위를 멈출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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