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크눌프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4.8.28
이즈음 초보적인 형태의 3D 영화가 유행했었는데 다이아트론 5이라는 이름을 커다랗게 내세운 이 애니메이션 역시 3D 입체 기능을 내세워 홍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 만화영화를 극장, 아니 시민회관에서 봤을 때는 색안경을 나눠주지 않고 맨눈으로 관람을 해야만 했었다. 어쩌면 내 첫 3D 영화가 될 뻔 했던 이 영화는 그렇게 2D로만 감상하게 되었고 이후 세월이 흐르고 흘러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그래비티(2013) 개봉 때가 되어서야 3D 영화를 감상하게 되었더랬다.
3D 체험의 유무는 둘째치고, 이 만화영화는 내게 생물학적 상상력을 드높여준 작품이라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데니스 퀘이드와 멕 라이언이 출연한, 그리고 둘을 맺어주게 했던 영화 이너 스페이스보다 몇 년 빨리 만들어진 이 만화영화는, 사람의 몸 속에 초소형화된 특공대를 보내어 모험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너 스페이스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적혈구와 백혈구,원자와 전자를 외우고 익히던 학창 시절, 나는 마이크로 특공대 다이아트론 5를 떠올리며 사람 몸 속 적혈구와 백혈구 사이에 또다른 세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그 세계 속 생물체와 소통할 수 있을 때는 언제일까 등을 상상하곤 했었다. 원자, 전자 등의 회전을 공부하던 때 역시 우리가 넓게만 보는 태양계 우주 역시 아주 거대한 외부 세계에서 볼 때 우리가 관찰하는 원자, 전자처럼 보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이한 상상 역시 어릴 때 본, 바로 이 마이크로 특공대 다이아트론 5 때문에 시작된 것이리라.
멀고 먼 외계 행성을 배경으로 제법 재미있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멀쩡히 잘 싸우던 인간 모양의 로봇이 뜬금없이 소방차로 변신하여 화재를 진압하며 묘한 위화감을 들게 만들었다. 트랜스포머의 캐릭터 하나를 베껴와서 외계 어딘가의 행성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시켜나간 것인데 외계 행성에서 지구에서나 쓰일 소방차가 떡하니 등장하고 그 소방차의 크기가 어마어마한 사이즈이다보니 작품 내용 속 설정이 헝클어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일본 로봇을 베껴 그리든 미국 만화를 도용하든,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공 로봇이 출동하면 우루루 박수를 치고 위기를 해결하면 연이어 만세를 부르던 시절이었지만 이야기의 결이 흐트러진 것에 대한 불만 때문에 마지막의 환호만큼은 살짝 미뤄두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극장을 나왔었던 것이 생각난다.
원조 태권브이에 슈퍼태권브이, 84 태권브이, 태권브이 90, 태권브이와 황금날개,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 등등 태권브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긴 하지만, 직접 극장(시민회관)에서 봤던 것은 1984년에 개봉한 84 태권브이가 개인적으로 유일하다.
죽은 아들 현을 살리겠다며 어머니인 여박사가 자신의 과학기술을 동원하여 아들을 로봇으로 복원시킨다. 아들을 되살렸다 생각하는 어머니와 달리 로봇으로 되살아난 아들 현은 로봇으로의 자신의 정체성만 생각한다. 엄청난 파워를 지닌 로봇 현은 인간을 지배하는 로봇 세상을 꿈꾸며 반란을 일으킨다.
태권도 특기를 살린 인간 형태의 태권브이에 왜 분리 합체 기능을 집어 넣었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그 의문은 후반부 결정적인 위기에서 풀린다. 강력한 적 로봇에게 태권브이가 잡혔는데 분리 기능을 이용해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다이아 트론 시리즈의 다이아버틀스 디자인을 도용하여 분리 합체 변신 기능을 집어넣었는데 변신 자체는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고나 할까. 태권브이는 변신이니 분리 합체 이런 것을 떠나 그냥 인간형 로봇 형태일 때가 제일 매력적이지 않은가 싶다.
80년대 그 시절엔 오늘의 케이블 방송에 해당되는 유선방송이란 것이 있었다.
유선 방송국에선 시간대별로 한국영화, 홍콩영화, 할리우드영화, 만화영화 이런 식으로 적당히 테마를 나눠 공중파 방송이 비워져 있는 낮시간을 채워줬었는데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온 꼬마들은 오후 4시 지나서 시작하는 만화영화 시간을 기다리곤 했었다. 그땐 지금처럼 학원 열풍이 거세게 불지 않아서 만화영화 한 편 정도는 볼만한 여유는 있었다고나 할까. 물론 각 지역의 교육열에 따라 분위기가 달랐겠지만.
극장 또는 시민회관에서 만화영화 개봉작을 보지못한 아이들은 유선방송에서 방영해주는 만화영화를 챙겨보며 애니메이션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갔었다. VTR이 대중화되지 않았었고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볼 비디오대여점마저 쉽게 구경하기 힘들었던 80년대, 요즘처럼 투니버스 같은 만화 채널도 없던 그 시절엔 지역 유선방송이 재량껏 방영해주는 만화영화는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모았고 태양의 전사 철인 28호,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황금용사 골든 라이탄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태권브이, 슈퍼태권브이, 슈퍼 마징가 3, 똘이와 제타 로보, 미래소년 쿤타 버뮤다 5000년 같은 국산 애니메이션이 유선방송을 통해 아이들에게 선보여지곤 했었다.
그 시절의 한국 만화영화란 것이 일본 애니메이션의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마크로스 시리즈의 주역 메카닉 발키리 디자인을 도용한 스페이스 칸담 V를 필두로 여러가지 표절 및 도용 사례가 있었더랬다.
우주대장 애꾸눈 내지 우주해적 애꾸눈으로 알려진 이 애니메이션 역시 그러한 표절 및 도용 사례의 하나였는데, 유선방송을 통해 이 작품을 볼 때만 해도 나름 잘 짜여진 스토리에 감탄하며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캡틴 하록의 극장판 외전 쯤으로 생각했었다. 애꾸눈 선장 캡틴 하록의 디자인과 설정을 과감하게 가져온 이 작품은, 인질이 된 소녀를 구하기 위해 하록 본인이 덫을 놓고 있는 적 앞에 직접 나타날 것인가 아니면 적들의 함정을 피해 몸을 숨기고 전략적으로 행동할 것인가 하는 딜레마를 만들어낸다.
안 나타날 줄 알았던 캡틴 하록이 비장한 분위기 속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순간 울려퍼지는 우렁찬 주제가가 소년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나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꼬마 하나를 위해 나 자신 어쩌면 우리 편 전체가 몰락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다. 아니 좀 더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대답 쪽으로 기울어갈 것이다. 슬프게도.
우주해적 애꾸눈 선장이 캡틴 하록의 커다란 해적 망토 안에 캡틴 퓨처의 강화복을 입혀 놓았다면 우주 흑기사는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의 최고 라이벌 아무로 레이와 샤아 아즈너블이란 두 캐릭터를 합쳐서 하나의 캐릭터로 뭉뚱그려 놓는다.
가면을 쓰면 샤아 아즈너블, 가면을 벗으면 아무로 레이로 변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 만화영화는 당대 최고의 인기만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기동전사 건담 속 인기 캐릭터들을 무단 사용한 것이다. 유선방송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던 그때 그 시절, 어지간한 디자인 도용에는 무덤덤해져 있었지만 이 작품은 그 선을 넘은 도용 때문에 어린 내가 한숨을 내쉴 정도였었더랬다.
당시 코흘리개 꼬마들 사이에선 아카데미 과학교재사에서 칸담이란 이름으로 출시된 플라모델 장난감과 마징가와 건담, 철인28호, 용자 라이덴 등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해놓은 다이나믹 콩콩 미니백과가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러한 칸담 플라모델과 미니백과의 인기를 발판으로 건담 매니아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을 때였다.
중경삼림 타락천사를 내세운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크게 인기를 끌 무렵 특유의 연출 기법을 고스란히 흉내내어 만든 한국영화가 국내 영화 평론가와 왕가위 팬들에게 큰 비난을 받았고 감독은 물론 해당 영화에 출연했던 쟁쟁한 배우들까지 혹평을 받는 일이 90년대 말 우리 영화계에 있었는데, 아마 이 우주 흑기사를 봤던 80년대 꼬마들의 마음 역시 왕가위를 흉내낸 영화를 욕하던 그때 그 왕가위 팬들의 심정과 비슷했었으리라.
더욱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만화영화의 원작자가 한국 최고 만화가 허영만이라는 것.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지면(紙面) 만화에까지 표절과 도용이 일반적으로 이뤄졌던 시절의 쓰디 쓴 과거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우주 해적 애꾸눈 선장은 캡틴 하록 외전이라고 해도 믿겨질만큼 이야기 자체가 제법 그럴듯 했으나, 건담 속 캐릭터들을 대놓고 훔춰 만든 우주 흑기사는 이도저도 아닌 씁쓸한 맛만 남겼다. 만화영화를 그렇게도 좋아했던 나였지만 유선방송에서 우주 흑기사를 방영해줄 때면 그냥 TV를 끄고 말았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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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