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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아버지의 고등학교 동창생 몇몇과 그 부인들이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아버지와 함께 다녀온 어머니가, 오랜 세월 친하게 지낸 그 모임에서 영화 얘기가 나왔다며 모처럼만에 극장 나들이 하고 싶단 속내를 내비치셨다. 그 모임에 참여하는 인원 중 영화를 즐겨보는 이가 있어 영화 몇 편을 추천받았다고 종이에 적어왔었는데 몇몇은 이미 극장에서 내렸거나 다른 몇몇은 비상업적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예를 들어 해운대 영화의 전당까지 찾아가야 되는 작품들이었더랬다. 그 메모지에 적혀있던 몇 편의 영화 중 기억나는 제목은 마지막 4중주, 나우 유 씨 미 여기에 아티스트다.


 


마지막 4중주 나이 든 부부들의 모임에서 언급될만한 점잖은 영화이다 싶었다만 이미 극장에서 내렸고, 나우 유 씨 미 경우는 구음(口音)을 귀에 들리는 대로 적어오셨으니 처음엔 나우 유시민? 유시민이 등장하는 영화인가? 이런 착각을 잠시 하기도 했더랬다. 아티스트는 그 몇 해 전에 개봉했던 영화였던지라 혹시나 해운대에 있는 영화의 전당에서 상영을 하나 싶어서 인터넷에서 살펴봤는데 그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아티스트를 꼽았을까 고민에 빠졌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가 바로 당시 극장에서 상영 중이던 아티스트 봉만대(!)란 영화였다. 어쩌면 아티스트 봉만대란 제목에서 익숙치 않은 단어인 봉만대를 빼고 귀에 들어오는 아티스트만 적어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해보게 되었더랬다.


 


개봉 시기가 몇 년 지난 아티스트냐 아니면 상영 중이긴 하지만 장르 자체가 나이 꽤 든 점잖은 어르신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아티스트 봉만대냐. 65세란 나이를 지나서 전철을 무료로 타고 다니고 병원 진료비도 할인을 받고 당뇨에 혈압에 성인병을 달고 다니는 나이이니 에로티시즘을 소재로 다룬 영화를 못 본다 내지 안 볼 것이다라는 것은 나의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그 부부동반 모임에서 언급된 영화가 진짜 아티스트 봉만대가 맞다면(?), 아티스트 봉만대란 영화의 어떤 점이 추천작으로 꼽히게 했을까 하는 묘한 호기심도 생겼다.


 


그런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가 몇 개월 전에 예스24 굿다운로드를 통해 아티스트 봉만대 다운받았다. 개그우먼 출신 곽현화, 플레이보이 모델 출신 이파니, 번지점프를 하다의 여현수, 영화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 등이 출연을 했는데 내 눈에 들어오는 인물은, 지금은 성은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왕년의 16미리 에로배우였다. 비디오 대여점이 동네 곳곳마다 있던 시절, 대여점 한쪽 진열장은 에로영화로 꽉 차 있곤 했었는데 그때 그 에로영화 진열장 속엔 유리 그리고 하소연이란 배우의 이름을 내건 영화가 있었더랬다. 유리와 하소연은 16미리 에로영화를 통 보지 않았던 나도 아는 이름인데, 이들 둘은 16미리 에로영화를 벗어나 가수로서 활동, 나란히 성은하유선이란 이름으로 바꾸고 비슷한 시기에 음반을 내고 TV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기에 나 역시도 두 사람의 이름 그리고 개명(改名)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고백하건데,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으로 넘어가던 그 시절 딱 한 번 16미리 에로영화 비디오테이프를 봤던 적이 있다. 그 무렵, 일요신문이란 주간 타블로이드 신문을 무척 즐겨 봤었는데 그 신문에서 16미리 에로영화계의 심은하가 있다면서 이규영이란 여배우에 대한 기사를 실었던 것이다. 낯뜨거운 문구와 원색적인 사진으로 무장한 채 신성한(!) 비디오 대여점 한쪽을 점령(?)하고 있는 16미리 에로영화에 대한 불만감이 여전히 있었지만 에로영화계의 심은하 표현은 호기심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처럼 경멸하던 16미리 에로영화 진열대를 살펴보고 이규영이란 이름을 내건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빌려서 집으로 왔던 것이다.


 


16미리 에로영화계의 심은하 출연한다고 해서 큰 맘 먹고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왔는데 부모님 몰래 본 해당 영화는 동네 여염집 아낙(?)보다 못한 외모의 여자가 주인공이었고 영화의 편집은 말그대로 개판이라서 영화 전체의 내용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게다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회상씬은 가뜩이나 수준낮은 내러티브를 더욱 더 망가뜨리고 있었다. 여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배우보다 회상씬의 여배우 외모가 그나마 괜찮았던 것으로 봐서 그 회상씬의 여배우가 일요신문의 기사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되었던 이규영이고, 내가 빌려왔던 비디오테이프는 이규영의 기존 출연작 중 몇 장면을 이리저리 짜깁기로 갖다붙이곤 이규영 출연작이라고 이름을 내건 조악한 작품이었던 것이 분명하리라. 아무튼 그렇게 내 첫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16미리 에로영화 관람은 씁쓸하게 끝이 났었다.


 


이후 비디오 대여 시장은 사양산업이 되었고 그때 그 비디오대여점 진열장의 한쪽을 채웠던 16미리 에로영화 시장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봉만대, 성은(유리), 하유선(하소연). 이렇게 세 명이 그때 그 16미리 에로영화 시장의 유일 아니 유삼(唯三)한 생존자라고나 할까. 하유선의 경우는 가수 활동 이후 별다른 소식이 없지만 성은 같은 경우는 봉만대 감독이 연출한 아티스트 봉만대 출연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뒤늦게 또 한 번 알렸다. 솔직히 말해서 인조(人彫)적인 느낌이 있는 곽현화, 이파니보다 성은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예쁜 모습이었다.


 


메이저 영화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임필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에 출연해서 16미리 에로배우 출신이라는 과거를 잊어보려고 하지만 임필성 감독이 에로틱한 장면을 좀 더 새끈하게 찍어주길 원하는 제작자와 트러블이 생겨 하차하면서 16미리 에로영화 감독 출신인 봉만대 감독이 대타로 메가폰을 잡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건 사고들이 아티스트 봉만대 영화의 기본 스토리로, 성은은 이 영화에서 봉만대 감독과 더불어 16미리 에로영화 종사자의 서러움을 상징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영화 같지도 않은 영화, 우리 사회의 미풍약속을 어지럽히는 영화, 애들 볼까 부끄러운 영화 등으로 그 시절의 16미리 에로영화를 인식하고 있었던 나였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성은의 모습에 그런 편견들이 어느 정도 녹아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충무로 메이저 영화를 연출했던 임필성 감독이 물러나고 에로영화 감독인 봉만대가 메가폰을 잡자 한탄을 하는 성은의 모습은 실로 절절하다면 절절한 것이었달까.


 


아티스트만큼 아티스트 봉만대 높이 평가받진 못하지만 왕년의 16미리 에로영화에 출연했던 여배우 성은이 자신의 모습을 한껏 닮은, 아니 그녀 자체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모습은 예상치 못했던 뭉클함마저 느끼게 해줬다. 영화제 수상작 아티스트가 아니라 에로영화 아티스트 봉만대라고 해도 톱스타 심은하가 아닌 에로배우 출신 성은이라고 해도 앞으로의 그 발걸음에 축복이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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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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