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크눌프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5.2.19
내가 기억하기로는, Tony Leung이란 영어 이름을 쓰는 양가휘와 양조위 둘 중 토니 륭이란 영어 이름으로 더 먼저 알려졌던 배우는 양가휘가 아니었나 싶다. 홍콩영화가 무척 인기있었던 그때 그 시절, 성룡의 영어 이름 재키, 장국영의 영어 이름 레슬리처럼 영어 이름이 한자 이름과 더불어 알려진 홍콩 스타가 있는가 하면 알란탐(譚詠麟, 담영린)처럼 아예 영어 이름이 더 먼저 기억되는 이도 있었는데 양가휘의 경우 영어권 영화 연인에 출연하면서 토니 륭이란 영어 이름을 영화팬들에게 널리 알렸었다. 제인 마치와 함께 출연했던 연인의 경우는, 동양인 남자배우가 서구권 영화에 출연하면 조연으로나 출연했던 당시의 영화적 관례를 깨고 당당히 주연을, 그것도 멜로물의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었더랬다. 지금은, 같은 영어 이름을 가진 양조위의 색계가 격정 멜로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제인 마치와 양가휘와 함께 했던 연인 역시도 격정 멜로 부분의 한 획을 그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90년대 그 시절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연인에서 남자 주인공 역을 맡았을 때가 무비스타로서의 양가휘의 영화적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의 양가휘를 생각한다면 그때 그 시절 양조위보다 먼저 토니륭이란 이름을 알린 양가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없겠지만 연인이 개봉되었던 그 시절까지만 해도 분명 양조위보다 양가휘의 이름값이 높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조위가 왕가위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데 이어 이안 감독의 색계에서의 열연 그리고 무간도 시리즈의 히트까지 이어지며 홍콩 영화의 인기가 현저히 식은 요즘에도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에 비해 양가휘는 그와 같은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의 토니 륭 중 양조위보다 덜 유명해진 양가휘의 영어 이름 Tony Leung 뒤에 Ka-Fai 라고 별도 표기하곤 한다는 얘기도 있다. 색향(色香)마저 풍기던 꽃미남 시절의 얼굴은 주름살 가득한 중년의 얼굴이 되었고 최근작 콜드워에선 머리까지 밀어 험상궂기까지 한 인상으로 변해버렸으니 양가휘의 젊은 날 얼굴을 아는 이로서는 세월이 무상하달까.
한국에도 팬이 많았던 이소룡, 성룡,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이연걸, 양조위, 주성치 등과 달리 양가휘는 어쩌면 허관걸, 맥가, 알란탐, 등광영, 오진우, 유청운과 같은 중화권 내수용 배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에서는 여전히 인기가 높겠지만 바다 건너 외국에서는 스타로서의 입지를 구축하지 못한 배우, 따지고 보면 우리네 한류 스타 중에도 그런 배우들이 꽤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는 훈훈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승기가 해외에서는 한국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이승기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국내에서 적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장근석이 해외에선 신기할 정도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내수용 스타와 해외파 스타의 대표적인 예랄까. 아무튼 젊어서는 꽃미남 배우로 출발, 해외진출까지 성공적으로 한 뒤 지금은 중년의 연기파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양가휘는 국내팬들에겐 연인으로 정점을 찍었던 그때 같이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연기 경력까지 잊혀지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하여 부족한 글솜씨로나마 양가휘 영화 몇 편을 골라 그의 필모그래피를 정리해본다.
양가휘의 영화 출연작들은 무척이나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데 홍콩 느와르에서 코미디영화, 멜로물, 시대극까지 이어진다. 양가휘는 임영동 감독의 영화 감옥풍운에서 고문관 신입죄수 역을 맡아 주윤발과 열연을 펼치더니 오우삼 대신 서극이 메가폰을 잡은 영웅본색 3에서도 주윤발과 함께 출연했다. 여기에 황지강 감독이 연출한 천라지망, 성룡과 유덕화, 홍금보가 참여한 화소도 등에도 출연을 했는데 이 영화들은 당시 홍콩 느와르라고 분류되던 영화의 범주에 속할 수 있을 것이다. 오우삼과의 관계가 틀어진 뒤 서극은 오우삼이 연출했던 영웅본색 시리즈의 3편을 직접 연출하며 프리퀄에 해당되는 베트남 배경 이야기에 양가휘를 참여시킨다. 한편 오우삼은 역시나 베트남을 배경으로 하는 첩혈가두에 양조위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한다. 이렇게 맞붙은 영웅본색3와 첩혈가두의 맞대결은 주윤발과 양가휘가 출연하고 서극이 메가폰을 잡은 영웅본색 3편이 홍콩 내 흥행에서 훨씬 앞섰지만 양조위는 첩혈가두에 이어 첩혈속집(辣手神探)에도 주연급으로 출연, 필모그래피를 착실하게 채워나갔더랬다.
쌍권총과 비둘기로 대표되던 홍콩 느와르의 시대가 저물 무렵 동방불패, 백발마녀전, 황비홍 등을 앞세운 홍콩 신무협의 시대가 열린다. 양가휘는 이 신무협의 시대에도 잊지못할 영화를 남겼었는데 장만옥과 임청하와 함께 했던 신용문객잔이 바로 그것이다. 인육만두를 빚어 손님을 대접하는 사막의 객잔에서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의 삼각관계과 흥미롭게 진행되더니 객잔까지 추격해온 당대 최고 무술고수 환관 우두머리와의 대결이 펼쳐진다. 신용문객잔의 경우 한국의 모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재미있게 패러디해서 보여줬던 것도 기억난다. 이 즈음의 한국 코미디 프로그램은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 속 명장면을 즐겨 패러디하곤 했었는데 친구와 연인을 위해 독이 든 잔을 마시곤 그 잔엔 독이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걸어 나가던 지존무상 속 유덕화의 모습은 1박2일에서 행해지고 있는 까나리 복불복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신용문객잔이 개봉되었던 1992년이 양가휘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영화적 전성기였었는데 이때 바로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하고 제인 마치가 출연한 연인이 개봉한 것이다. 신비스러운 매력을 가진 소녀 제인 마치와 사랑을 나누는 양가휘의 열연은 실로 대단한 것으로 당시 서구권 메이저 영화에 동양 배우가 주인공을 맡는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연인를 통해 해외 진출을 한 양가휘는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이런저런 많은 영화에 출연을 한다. 수작도 있지만 졸작도 여럿 있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멜로 영화로서 연인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매염방과 함께 했던 하일군재래(何日君再來)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렇게 홍콩 느와르와 신무협, 멜로 영화를 두루 거치던 양가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 동사서독에서 동사 황약사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동사서독 제작 과정에서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 동성서취에선 남제 단황야 역을 맡아 웃음을 선사해주기도 했었다. 동사서독은 양가휘와 양조위가 왕가위 영화에서 만난 작품인데 이때만 해도 연인의 남자 주인공이었던 양가휘의 이름값이 더 높지 않았나 싶다.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에 출연했던 양조위는 이후 중경삼림과 해피투게더를 거치며 장국영과 함께 왕가위의 영화적 페르소나가 되었고 장국영이 죽은 뒤에는 단독으로 화양연화, 2046, 일대종사에 출연하며 영화적인 위상을 높였다. 그 중간중간 색계와 무간도 시리즈에 출연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갖춘 배우가 되었는데 양가휘의 경우는 동사서독에서의 황약사 캐릭터를 끝으로 왕가위 작품에 출연을 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이 즈음이 양가휘와 양조위의 인기가 역전하게 되는 시점이 아니었을까.
감옥풍운, 영웅본색3, 하일군재래, 연인, 신용문객잔 등에 출연하며 90년대 초반까지 멋진 필모그래피를 쌓았던 양가휘는 90년대 후반 들어 주춤하기 시작한다. 동사서독과 동성서취의 경우는 그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없는 영화들이며 그 직후부터 양가휘는 홍콩 영화의 대세 배우 대열에서 멀어진다. 그렇게 잊혀진 배우가 되다 싶더니 훌쩍 세월이 지난 뒤에 두기봉 감독의 영화 흑사회에서, 예전의 그 꽃미남 배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다혈질적인 조직 보스의 모습으로 등장해서 새로운 모습을 영화팬들에게 인식시킨다. 국내에서 감시자들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던 천공의 눈(跟蹤)에서도 양가휘가 맡은 역할은 악역이었다. 두기봉 사단에 속하는 유내해 감독의 작품이며 두기봉 감독의 흑사회에서 나란히 출연했던 임달화와 함께 출연한 것도 기억해볼만하다. 이렇게 양가휘는 두기봉 사단의 영화에 참여하며 영화적 새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후 양가휘는 8인 최후의 결사단,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콜드 워, 타이치 시리즈 등에 출연한다. 홍콩 반환 이후 영화계에 들어온 중국계 대자본과 홍콩의 영화인들의 기술력이 만난 영화에 출연하며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데 물론 그 과정에서 건국대업 같은 중국 국책영화에 출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아무튼 그렇게 대중적인 영화에 출연하는 와중에 쓰리 몬스터, 로스트 인 베이징 같은 마이너 계열 작품에도 출연하며 영화적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 양가휘. 예전의 꽃미남 얼굴도 사라지고 토니륭이란 그의 영어 이름도 기억에서 가물가물해졌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몇몇 작품만큼은 이대로 잊혀지기엔 참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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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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