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크눌프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6.11.20
요즘의 젊은 네티즌들이라면 김두한을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드라마 야인시대를 많이 떠올리 것이다. 김두한(안재모)과 구마적, 신마적, 하야시, 시라소니와의 결투는 흥미진진했으며 싱그럽던 안재모에서 중년의 김영철로 갑자기 배우가 바뀔 때는 다들 당혹스러했으며 심영이란 캐릭터가 병원의 의사로부터 무심한 통고를 받는 장면은 지금도 컬트적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야인시대에 심취했던 층보다 좀 더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신인배우 박상민과 신현준이 김두한과 하야시 역으로 출연했던 영화 장군의 아들 시리즈를 떠올렸을 것이고. 홍성유, 윤삼육, 김용옥의 글솜씨와 임권택, 정일성의 영화적 재능이 만나 만들어진 영화 장군의 아들은 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던 시기의 한국 영화계의 대형 흥행작이었다. 홍콩 영화의 인기, 할리우드 영화의 물량 속에 시름시름 시들어가던 당시의 충무로에 신인배우들을 대거 기용해서 만들어진 장군의 아들은 기적적인 흥행이나 다름 없었다. 실제 김두한과 달리 신인배우 박상민이 너무나 곱상한 외모였던 것이나 김두한과 그 라이벌 하야시가 의외로 꽤 깊은 교류가 있었던 것이나 악역 하야시가 실제로는 해방 후 조선에 남아 사업체를 운영했다는 것을 따져보면 이런저런 허구적인 면이 있긴 했지만 당시의 한국 관객들은 이 잘만들어진 액션활극에 환호했었다.
총알을 몇 발이나 쏘았는지 당최 알 수 없는 오우삼표 홍콩 느와르 영화나 SFX 효과를 잔뜩 이용해서 하늘을 날고 땅을 가르며 장풍을 쏘는 것이 흔해버린 정소동식 홍콩 무협영화와 달리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장군의 아들 시리즈는 실제 격투를 보는듯 등장인물들이 서로의 간격을 재며 발길질을 하고 주먹을 맞으면 땅에 쓰러져 실감나게 뒹굴곤 했었다. 장군의 아들 1편을 보며 액션이 참 리얼하단 생각에 역시 임권택 감독이구나 싶어 감탄을 했었는데 사실 이런 류의 액션 영화는 임권택 감독 이전에 김효천 감독이 더 유명했다고 한다. 몇 년 전이었나 아니 이젠 십 여 년 전의 일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눈에 띈 영화 한 편이 있었으니 그것은 김효천 감독이 예전에 만든 김두한 시리즈 중 한 편이었다. 일본도를 가지고 덤벼드는 일본 야쿠자들과 정말 소수의 조선인 주먹패들은, 장군의 아들 속 액션을 어린애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실감나게 싸우기 시작했으니 어쩌면 그 영화 속 일본도는 촬영용 소품이 아닌 진검(眞劍)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었다. 뽀송뽀송한 피부의 박상민, 곱상한 얼굴의 안재모가 아닌 그야말로 주먹패다운 체구의 배우가 등장해서 김두한을 연기했으며 이들의 싸움들은 그야말로 수호전 속 피칠갑의 세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경양강 식인호(食人虎) 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던 무송이 형 무대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한 뒤 유배를 갔고 그 유배지에서도 억울한 사연이 있는 인물(시은)를 만나 친구가 되었더랬다. 그리고 그 친구를 돕기 위해 해당 나와바리(!)의 오야붕 장문신 일당과 피칠갑의 혈투를 벌이며 독자에게 쾌감을 줬듯이 김효천 감독의 영화 속 김두한 역시도 극단적일 정도의 지독한 싸움을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전해줬던 것이 아니었을까. 주먹으로 대표되는 남성성의 매력에 지독하게도 중독된 김효천 감독은 팔도 사나이, 실록 김두한, 협객 김두한 등의 작품을 연신 내놓았더랬다. 요즘은 그 이름만으로도 뽕, 변강쇠, 클라이맥스 원 같은 영화 속 에로틱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지만 당시만 해도 이대근이란 배우는 주먹패 두목 김두한 캐릭터에 더 잘 어울리는 인물이었었다. 아무튼 각설하고 남성 호르몬 가득 찬 김효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영화를 만든 뒤, 김효천 외 다른 감독(고영남, 이혁수 등)이 메가폰을 잡은 아류작도 속속 만들어졌고 시라소니가 주인공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등장하기도 했었다.
소설과 만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김두한 스토리와 다르게 현실 속의 김두한은 그렇게까지 멋지진 않았다. 대중의 카타르시스와 창작자의 상상력이 실재 사건에 살을 많이 붙여 김두한과 하야시, 시라소니에 관한 그럴싸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고 그 이야기들은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유인촌 주연의 영화 김의 전쟁이 그러했듯 수많은 일본인과 혈혈단신으로 싸우는 조선인의 비장한 이야기는 관객들을 흥분시키는 부분이 분명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효천 감독의 영화 일본대부는 너무 늦게, 그것도 장소를 잘못 찾아 도착했다. 김효천식 협객영화의 유행이 지나간지 오래였고 이미 관객들의 취향은 성룡과 주윤발, 장국영, 왕조현이 출연하는 홍콩영화에 맞춰져 있건만 김효천 감독은 협객, 아니 야쿠자 오야붕을 소재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김효천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배우 이대근은 80년대의 3S 정책 속에 에로배우 이미지가 덧씌워진 상황에서 김효천 감독은 윤승원이라는 신예를 발굴해낸다. 배우 윤승원은 대하 드라마 토지 속 길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던 인물로, 당시 무명이었던 최진실과 함께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란 멘트를 유행시킨 삼성전자 가전제품 CF에 출연하기도 했었다.
영화 일본대부 의 내용은 실제 조선인 야쿠자 보스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한단다. 사실 일본영화계에는 일찌감치 야쿠자들간의 항쟁을 다룬 영화들이 유행을 했었더랬다. 김효천 감독의 영화 일본대부는 그러한 야쿠자 항쟁물의 장르적 전통과 김두한 시리즈 등에서 보여준 민족주의 액션영화적 요소를 혼합시킨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조총련 세력이 끼여들면 반공주의적 요소까지 첨가되는 것이며 야쿠자로서의 신분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져야한다면 멜로물적인 요소마저 갖춰지는 것이다. 해방전후의 일본땅에서 조선인의 핏줄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이었다. 역도산, 최배달, 장훈, 가네다 마사이치처럼 현대 일본 문화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은 인물이 있었는가 하면 밤거리 어두운 곳에서 면상에 칼자국 한 획을 긋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조선인 출신 야쿠자들일 것이다. 밝은 대낮에 하기 어려운 일들은 이러한 밤거리의 인물들이 종종 해결하기도 했으니 DJ 납치 사건 때 가담했던 인물들이 재일교포 야쿠자들이었다나 뭐라나 하는 이야기들도 있는 것이다. 굳이 재일교포 출신까지 찾지 않더라도 정재계와 손을 잡은 야쿠자들 얘기는 흥미진진한 것들이 있으니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전 대통령을 접대하고 그의 네 번째 부인으로 자리를 잡아 일본과 인도네시아의 교류에 일조를 했다고도 전해지는 데비 부인(네모토 나오코)의 일화 뒷면에도 지하세계 실력자의 솜씨가 있었다나 뭐라나.
그라비아 아이돌계의 스타였던 코무카이 미나코가 자신들의 부업은 매춘이었다고 언론에 고백을 하고 그 매춘의 화대 가격이 기사화되기 시작하자 코무카이 미나코의 지난 사생활이 폭로가 되고 심지어 마약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그녀가 꺼낸 충격 발언은 서둘러 진화가 되었다. 제2의 데비 부인을 꿈꾸는 여인들, 그리고 제2의 데비 부인 같은 존재를 만들어내서 정재계 유력인사와 관계를 유지하려는 지하세계 실력자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렇듯 현실적으로 따져보면 어둡고 추잡하기 그지 없는 이야기가 야쿠자들의 실상이겠지만 우리의 열혈남아 김효천 감독은 그렇게 비정하고 살벌한 야쿠자들의 이야기에 민족주의적 색채를 담아내려고 한다. 수호전의 무송이 그러했듯 주인공에게는 살인죄로 인한 형벌이 가해졌고 그 형벌은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종전으로 인해 끝이 난다. 하지만 그의 인생은 험하고 험해서 야쿠자 세계로 그의 발걸음은 옮겨진다. 조선인이었던 그의 핏줄은 완전히 숨길 수 없었고 그로 인해 야쿠자 오야붕으로 올라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윤승원)은 김효천 감독 영화의 주인공답게 의리파 협객으로 행보를 걸으며 끝내 오야붕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일본 조폭 하야시 패거리들과 종로 나와바리를 두고 싸우는 김두한 이야기에서라면 꽤 근사했을 민족주의 정서였겠지만 일본 내 야쿠자들끼리의 항쟁에선 그러한 민족주의적 색채가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이 영화가 갓 나왔을 때는 그러한 내용이 어느 정도 호응을 받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유인촌씨가 주인공을 맡아 김희로(또는 권희로) 사건을 영화로 만든 김의 전쟁이 한국에선 화제가 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에 영화평론가들의 성전(聖典)과도 같은 대부(代父)란 단어를 붙인 것을 패착 중의 패착이었다. 김효천 감독의 전작 오사카의 외로운 별처럼 도쿄의 뜨거운 주먹, 나고야의 열혈남아, 히로시마의 의로운 협객 정도의 제목을 붙였으면 어땠을까. 아무튼 이 시대착오적인 주먹패 영화는 너무 늦게 관객들을 만났고 그 배경은 또한 옆으로 너무 옮겨졌다. 일본도와 권총까지 등장하는 야쿠자 액션은 영화적으로 제법 근사한 소재가 되긴 하지만 한국 관객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 같은 싱거운 몰입도를 안겨줬달까.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의 얘기를 다룬 드라마 무풍지대(1989)라든지 영화 장군의 아들(1990)이 연이어 도착하면서 그야말로 신토불이의 세계가 열리게 되었고 이는 2000년대 초반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기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계 여성이 미국의 유명 도색잡지 플레이보이 모델로 뽑혔다는 이유로 주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서 환영받기도 했던 것이 그 즈음의 일이였다보니 한국인, 또는 한국계가 외국에서 약간이나마 출세를 하면 그게 그렇게 큰 경사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그 시대의 정서였긴 하디. 하지만 야쿠자 오야붕으로의 출세는 그렇게까지 환영받을만한 출세는 아닌 것이 분명하니 김효천 감독의 정서와 일반 관객들의 정서와는 분명 차이가 있긴 할 것이다. 야쿠자 항쟁물로 유명하기도 했던 후카사쿠 킨지 감독은 의리 없는 전쟁 등의 작품을 통해 야쿠자들의 맨얼굴을 그려냈다고 한다. 배신과 탐욕의 세계를 그려내며 영화적 성취도를 얻어냈던 후카사쿠 킨지 감독과 달리 김효천 감독은 낭만파 주먹의 환상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정치9단 소리를 듣던 JP 김종필씨가 그 정치적 말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나(김종필)는 좀 더 장엄하게 정치와 이별하고 싶었다. 비록 지는 해지만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고자 했다. 온 지구를 하루종일 덥혔던 태양이 서산에 이글거리며 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라고 말이다. 어쩌면 김효천 감독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좀 더 장엄하게 영화와 이별하기 위해서 영화감독으로서 전성기를 지난 나이에 이러한 영화를 만들어냈던 것이 아니었을까.
- 좋아요
- 6
- 댓글
- 4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