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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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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8.6.24
요즘이야 자유당 정권 시대의 어두운 모습들이 영화는 물론이요 드라마를 통해서도 자유롭게 만들어집니다만 1960년대 당시만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정권이 바꼈지만 독재정권이란 형태만큼은 닮아 있었기에 1968년에 개봉하려고 했던 이 영화는 개봉 직전에 상영이 금지되고 말았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 한 편 만들어 극장에 내건다는 것은 상당히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일이죠. 게다가 이 영화는 김희갑, 박노식, 김지미, 허장강, 장민호, 남정임 등등 유명한 배우를 출연시킨 호화 캐스팅이었으니 영화 개봉이 무산되었을 때의 경제적 타격은 더 컸을 것입니다. 원로배우 김희갑씨라고 하면 드라마 야인시대 등을 통해 자유당 시절 임화수 등으로부터 수모를 겪은 배우로 젊은 층에게 알려져 있곤 합니다만 그 시절 유명한 배우였어요.
이 영화 잘 돼 갑니다는 1968년 영화 상영이 무산된 뒤 노태우 정권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극장 상영이 이뤄지게 되었다고 해요. 김희갑씨를 비롯, 자유당 정권 때의 권력자들을 직접 겪었던 배우들이 출연해서 만든 이 영화는 기고만장했던 자유당 실세들의 몰락을 그려냈었는데 워낙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개봉을 하게 되었던 데다가 노태우 정권에 들어서면서 표현의 자유가 예전보다 많아진 탓에 TV 드라마 등을 통해서 자유당의 몰락 과정 같은 것은 쉽게 그려내질 수 있게 된 상황이었기에 흥행에 완전히 참패하고 말았답니다.
자유당 시절 정치깡패 중 한 명이었던 유지광의 책 대명을 바탕으로 KBS 드라마가 만들어져서 인기를 끌 때가 바로 1989년이었던 것이었죠. 동대문 사단 이정재 역을 탤런트 조경환씨가 맡았었고 그 오른팔 유지광 역을 나한일씨가 맡았었던 드라마였죠. 임화수 역에 연규진, 이영숙 역에 유혜영, 박마리아 역에 정영숙, 김두한 역에 김영인 등이 캐스팅되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었답니다. 정치깡패를 미화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안방극장에서 이런 화끈한 자유당 시절 이야기를 볼 수 있는 상황인지라 조긍하 감독이 만든 20년 전 영화 잘 돼 갑니다를 구태여 극장까지 찾아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0년 뒤에 개봉했던 이 비운의 영화는 개봉 이후에도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되었으니 엄청난 흥행 참패에 비관한 나머지 영화 제작자의 부인이 자살을 기도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답니다. 제작자였던 남편은 영화의 상영이 무산된 것에 항의하다가 홧병으로 사망했고 부인은 20년 뒤의 개봉을 기다렸으나 자살을 시도하게 되었고 그 아들 중 한 명도 청와대에 항의하려고 갔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청와대 이발사의 모습은 어쩌면 송강호 주연의 영화 효자동 이발사 캐릭터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구요.
이 영화 독재소공화국은 당시 청춘스타였던 최재성이 출연했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최재성이 주인공이라고 보기에는 여주인공 비중이 훨씬 컸던 영화였답니다. 대학가에 있는 하숙집 민주학사골... 그곳을 거쳐가면 출세가 보장되었다고 해요. 면접과 시험까지 보며 깐깐하게 뽑힌 대학생들은 시위 금지, 음주 금지 등의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만 했답니다. 여자들은 올 수 없는 금녀의 공간 민주학사골에 여주인공 진영(김서라)가 남장을 하고 들어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갖가지 일이 생겨나게 된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요상한 하숙집에 남장을 하고 나타난 여주인공의 코미디 같습니다만 박정희를 빼닮은 배우 이진수씨가 군복을 입고 등장을 해서 하숙생들을 지휘하는가 하면 고작 하숙집(?) 행사임에도 국풍 81 내지 그 이전의 무슨 행사마냥 연예인까지 동원하기까지 합니다.
얄개 시리즈로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도 했던 배우 진유영씨는 감독으로 직접 연출을 했던 작품도 몇 편 있는데 이 영화 역시도 진유영씨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던 작품이었죠. 석래명 감독의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태와 내 사랑 동키호태란 작품에선 진유영씨가 최재성, 박중훈 씨 등과 함께 출연을 하기도 했답니다. 내 사랑 동키호태란 영화를 촬영하던 당시 박중훈씨 소유의 자동차를 김민종씨가 운전을 했다가 사고를 내서 박중훈씨에게 엄청 혼이 났더라는 얘기도 있었죠. 동키호태 시리즈는 물론이요 독재소공화국으로 이어졌던 진유영, 최재성씨의 인연은 진유영씨가 1990년대 중반에 만들었던 도둑과 시인이란 영화로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각설하고 박정희, 전두환 시대였으면 독재소공화국이란 영화는 개봉은커녕 진유영씨가 컴컴한 곳으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만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극장 개봉이 이뤄졌다고 해요.
요즘, 아니 몇 년 전만 해도 여배우 누구는 모 권력자의 아들과 요트를 탔니 어쩌니 하는 얘기가 시중에 떠돌기도 했습니다만 과거에는 그런 식의 만남이 훨씬 더했을 거에요. 이 영화 빨간 여배우는 그런 루머(?)들을 은근슬쩍 버무린 영화였죠. 높으신 분들은 여배우를 탐하고 여배우들은 그런 분들을 만나 신분 상승을 꾀합니다만 그런 관계가 영원할 수는 없었겠죠. 높으신 분들의 안방마님이 불같은 성격을 가지신 분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문제의 여배우가 정치적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미리 제거를 해버리거나 다시는 덤비지 못하게 혼찌검을 내려고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각본 신승수, 연출 신승수인 이 영화에는 당시 섹시스타로 이름을 알려딘 하유미 씨가 출연을 했었고 훗날 배우 나한일 씨와 결혼과 이혼, 재결합과 이별을 택하고 말았던 모델 출신 배우 유혜영 씨도 출연을 했었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높으신 분들 중에는 그 직전 정권의 최고 권력자와 그 아내를 모티브로 잡은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합니다. 여배우와 놀아난 권력자 남편도 성격이 강하지만 그 아내 되는 분의 성격도 참 드세답니다. 남들 위에 군림하는 최고 권력자지만 그 아내의 성질머리가 더 대단했더라... 이건 밑에서 다룰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또 한 번 재현된답니다.
요즘 같으면 여배우와 남편이 놀아난 일이 세상에 드러나려고 한다면 열성 지지자를 동원해서 해당 여배우의 SNS부터 뭉개놓으려고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남편과 본인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정한 모습을 연출해서 대중들의 눈을 흐리게 만들고 다른 한 쪽에선 여배우의 과거 행실을 들먹거리며 믿지 못할 여자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꼭 물리적 힘을 써야만 폭력이겠습니까. 어쨌든 신승수 감독은 빨간 여배우 외에 장사의 꿈 달빛 사냥꾼, 수탉,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 가슴 달린 남자, 아찌 아빠, 할렐루야, 엑스트라 등의 작품을 통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말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답니다.
1212 쿠데타 주역 중 한 명이었던 노태우는 취임 이후 자신을 코미디 프로 소재로 좋다는 얘길 했다고 합니다. 시사풍자 개그의 달인이었던 고 김형곤 씨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 몇 코너를 맡아 웃음 이상의 웃음을 보여줬었답니다. 재벌회장이라고 하지만 대통령과 각 부 장관들의 국무회의라고 슬쩍 돌려봐도 이상이 없을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코너는 어쩌면 이 글의 맨 처음에 언급했던 잘 돼 갑니다란 영화와 연관이 되는 부분이 있답니다. 최고 권력자가 잘 돼 가냐고 물으면 그 부하는 잘 돼 갑니다라고 능청스럽게 말을 하죠. 여기까지는 이승만 자유당 정권 말기를 그려낸 영화 잘 돼 갑니다를 연상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만 여기에 더해 김형곤씨는 잘 돼야 될텐데! / 잘 될 턱이 있나! 이런 말을 유행시켰었답니다.
최고 권력자와 그 밑의 부하들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는 고 김형곤을 중심으로 했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 이어 최향락을 중심으로 했던 네로 25시까지 탄생시켰죠. 일본 예능계에 바보 영주란 유명한 코미디 코너가 있기 때문에 권력자의 무능함을 코믹하게 풍자한 것이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에 김형곤씨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등을 통해 보여줬던 것은 당시의 한국사회에선 제법 획기적인 것이었답니다. 비룡그룹의 회장 김덕배(김형곤)은 이사들 앞엔 큰 소리를 연신 치는 인물이지만 그 아내의 전화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인물이기도 했으니 영화 버전에선 이 아내 캐릭터에 당대 특급 여배우였던 원미경씨를 캐스팅하기도 했었죠.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을 외치는 이사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치던 회장(김형곤)은 의외로 아내 앞엔 굽신굽신거렸고 무능력자에 가까운 무식한 처남(양종철)을 이사 자리에 앉혀 놓기도 합니다. 최순실이며 장시호, 고영태 같은 이름들이 대중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 나니 이 코미디 속 비룡그룹의 엉터리 같은 회의가 어쩌면 그 당시의 청와대 안에서도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비룡그룹의 서열 최정상에 있던 비선실세 사모님 캐릭터는 최순실에 가까운 것이었을까요.
달콤한 신부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같은 영화를 연출했던 강우석 감독은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라는 제목의 정치영화를 연출하게 되었답니다. 이 영화에는 안성기, 박근형, 신성일 같은 중견배우는 몰론이요 1988년도 미스코리아였던 김성령씨가 출연했었죠. 김성령씨는 이 영화를 통해 1991년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게 되었다고도 해요. 용의 발톱을 봤다라? 이 표현은 권력자의 날카로운 부분을 목격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대선을 앞두고 방송국의 아나운서(김성령)이 모종의 사건을 목격하게 되었는데 이 아나운서는 사실 정치인(박근형)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었기에 법적인 증언을 하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죠.
정치판의 복잡하고도 음험한 이야기가 아나운서(김성령), 기자(안성기)의 눈을 통해 보여줍니다. 실제로 정치판에 뛰어들기도 했었던, 그리하여 신성일이란 이름 대신 강신성일로 불리기도 했던 신성일씨의 선거 유세 장면은 상당히 실감이 난답니다. 90년대 초반의 선거 유세 장면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는 영화랄까요. 아무튼 이 영화는 빨간 여배우 등의 영화와 달리 정치판과 언론인을 소재로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진행됩니다.
이 영화의 각본을 담당했던 인물이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등 작품을 연출했던 강제규 감독이랍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장미의 나날, 게임의 법칙 등의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자신이 각본을 쓴 공포특급으로 감독 데뷔를 한 뒤 은행나무 침대로 흥행 감독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고 쉬리의 성공으로 그 시절 한국영화계 대표 감독이 되었죠. 강제규 감독이 직접 기획하고 각본과 연출을 맡은 태극기 휘날리며는 선배 영화감독 강우석의 실미도와 천만 관객을 누가 먼저 이루는가 하는 흥행 대결을 펼치기도 했었답니다. 강우석과 강제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그야말로 한국영화계의 양강 체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기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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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