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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 작성일
- 2012.10.4
[Blu-ray] 풍운 2 (2disc)
- 글쓴이
- 감독 : 팽 씨 형제 / 배우 : 곽부성, 정이건
조은
1998년 유위강 감독이 연출한 풍운 1편은 중화권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그로부터 10년 쯤 지나서 풍운 1편에서의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연출이 더이상은 첨단의 화려함으로 느껴지지 않을 무렵인 2009년에 풍운 2편이 만들어졌지요. 정이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고혹자 시리즈의 히트와 이어 만든 인기 만화가 마영성 원작의 풍운, 중화영웅의 성공까지 내달린 유위강 감독은 경찰과 조직원, 뒤바뀐 신분의 두 남자의 운명을 다룬 무간도 시리즈로 홍콩에서 가장 핫한 감독 중의 한 명이 되지요. 무간도 시리즈의 명성은 바다 건너 할리우드에까지 넘어가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이 양조위와 유덕화 역을 맡은 <디파티드>까지 만들어지게 됩니다. 무간도 3부작과 할리우드 진출, 예 그렇습니다. 서극과 오우삼 등 홍콩에서 난다긴다 하는 감독들이 그러하듯 유위강 감독도 할리우드 진출을 했더랬습니다. 이럴 경우 보통 적당히 작은 규모의, 적당히 인지도가 있는 배우들을 써서 할리우드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테스트해보는데 그 테스트에 실패했는지 유위강 감독은 소리소문 없이 홍콩으로 돌아오고 말았지요.
풍운 1편을 연출했던 유위강 감독이 유덕화 양조위의 무간도 시리즈는 물론이요, 전지현, 정우성을 캐스팅한 데이지와 리처드 기어를 캐스팅한 트랩 등등으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는 동안 마영성 원작만화 '풍운'은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답니다. 홍콩, 대만 등지에서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다보니 영화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야 그 동네에선 굴뚝 같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공중을 날고 장풍을 쏘고 검기를 날리는 원작 만화의 무공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와 방대한 원작의 내용을 어떻게 간추리냐인데 유위강 감독 대신 속편의 메가폰을 잡은 옥사이드팡, 대니 팡 형제는 할리우드 영화 <300>을 롤모델로 삼습니다. 한 마디로 최대한 '만화'처럼 보여주겠다는 것이지요.
풍운 1편에 캐스팅되었던 곽부성과 정이건이 주인공인 보경운과 섭풍을 맡았고 소니 치바가 빠진 악역 자리를 중견 배우 임달화가 차지했습니다. 임달화가 맡은 무신절궁 문주 '절무신'은 천하의 야심가요 '마향골'이라는 독을 쓰는 악당인데 원작 만화의 내용을 모르는 대부분의 한국 관객들로서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자막 몇 줄로 설명되는 절무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상황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설정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몇 줄의 자막에 이어서 풍운 1편에서 신묘한 무공을 펼쳤던 보경운을 비롯하여 각종 고수들이 사슬에 묶여 심문을 받고 있는 장면으로 화면이 나옵니다. 다짜고짜 자막 몇 줄로 이 모든 상황을 간추려버린 영화는, 무림의 고수들이 힘을 합쳐 절무신에게 대항하는 스토리로 이어집니다. 수백 개의 검(劍)을 화살처럼 날려대고 그 검을 튕겨내는 공력(功力), 바위를 날리고 불을 쏘아대는 장풍, 물방울을 비수처럼 튕겨내는 절기까지 온갖 무공이 펼쳐지는데 할리우드여, 우리도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듯 특수효과를 맘껏 과시하지만 이미 풍운 1편에서 볼만큼 본 특수효과인데다가 상황 설명마저 갑작스럽다보니 원작 만화를 접하지 않은 타국의 관객으로서는 영화에 몰입하기 어렵지요.
풍과 운, 무명을 비롯한 무림 고수들은 절무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또 한 명의 고수 '사황'(황덕빈)를 찾아나섭니다. 섭풍(정이건)은 사황에게, 보경운(곽부성)은 무명(하가경)에게 무공을 전수받아 절무신에게 맞서려고 하는데 요즘 정국이 정국이다보니, 권력을 움켜진 보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문재인, 안철수 두 후보가 나란히 대선 레이스를 펼치는 장면이 연상되는 장면이 아닐까 싶습니다. 절무신을 막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찾아낸 무림 고수 사황은 스스로 두 팔을 잘라 무공을 봉인한 상태였습니다. 무협소설에서 종종 나오는 '주화입마', 바로 그 주화입마 때문에 이성을 잃고 광기의 노예가 되었던 사황은 스스로 두 팔을 잘라냄으로써 마성(魔性)을 떨쳐내었습니다. 하지만 유력 대선 후보 절무신을 꺾을 수 있는, 당장 눈에 보이게 지지율을 높여여주는 비법이라고 하니 권력 교체를 꿈꾸는 진보 세력에게는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그렇게 하여 섭풍(정이건) 후보가 포퓰리즘의 마도(魔道)를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당장의 지지율은 뛰어올라 대선 승리를 장담하던 대세론의 주인공 절무신은 고꾸라지고 말았지요. 이제 남은 것은 섭풍 후보와 보경운 후보와의 단일화 그리고 평화로운 정권 교체일텐데 극단적인 포퓰리즘의 마성에 주화입마된 섭풍 후보는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섭풍이냐 보경운이냐 보경운이냐 섭풍이냐 영화의 후반부는 두 후보간의 치열한 대권 경쟁을 묘사합니다. 작금의 시국에 빗대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영화는 시종일관 현란한 특수효과를 보여주며 한 씬 한 씬 홍콩 장인들이 공들여 만든 멋진 영상을 보여주는데 절무신을 이기기 위해 무공을 수련하는 장면, 절무신에 대항해 싸우는 장면, 주화입마된 섭풍을 막기 위해 싸우는 장면. 이렇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답니다.
포청천 시리즈의 호위무사 '전조' 역으로 널리 알려진 하가경이 무림 고수 무명 역을 맡아 보경운의 멘토가 되어줍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조각같은 외모의 곽부성에 비하면 10년의 세월이 얼굴이 묻어나는 정이건은 1편에서의 온화함 일변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영화의 후반부 극단적인 악마성에 휩싸인 모습을 선보이며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지요. 80년대 첩혈가두, 재전강호에서 익사일, 흑사회, 엽문, 8인 최후의 결사단 그리고 최근 한국영화 <도둑들>에까지 출연한 중견 배우 임달화가 절정 고수이며 야심가인 절무신 역을 맡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중후해지는 임달화의 매력 때문인지 악당이라기보다는 멋진 남자로 보인다는 것이 살짝 미스캐스팅이랄까요. 삼국지로 비유하면 '조조' 같은 느낌인데 조조에게 후계자인 아들 조비가 있듯, 절무신에게도 아들이 있습니다. 장백지와 진관희를 둘러싼 스캔들 때문에 국내에도 그 이름을 아는 이가 부쩍 많아진 사정봉이 절무신(임달화)의 아들 절심 역을 맡았습니다.
신용문객잔도 그렇고 동방불패도 그렇고 백발마녀전도 그렇고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도 그렇고 이런 류의 영화에서 무공의 표현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지요. 지금과 같은 컴퓨터그래픽이 없던 지난 날 장철 호금전 영화 시절과 같은 표현 기법이라고 해도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둘러싼 스토리만 잘 짜여져 있다면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높아질 것입니다. 바늘을 화살처럼 쏘아대고 비단자락을 날리고 대나무 위에 낭창낭창 뛰어다니는 것은 사실 전체 영화로서는 매우 적은 부분입니다. 이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애잔한 사랑이고 엇갈리는 운명이고 애타는 마음이었지요.
풍운 1편의 성공이 현란한 특수효과에 있었다고 믿어서였는지 할리우드 300의 기술적 성취도에 자극을 받아서였는지 풍운 2는 컴퓨터그래픽의 전시회장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명장면(?)을 연출합니다. 기술적으로는 명장면일지 몰라도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과장된 무공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곳곳의 특수효과는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긴장감을 풀어지게 만듭니다. 영화의 후반부 대부분을 차지하는 섭풍과 보경운의 맞대결은 영화 <풍운 2>에서 보여주는 특수효과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데 영화의 메인 악당 절무신이 죽고 관객의 긴장감이 풀어진 상태에서 두 사람의 결투가 다양한 각도에서 현란할 정도로, 현란함이 지나쳐서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다보니 장엄하다거나 감동적이라기보다는 영화가 언제 끝나나 기다리게 되지요.
2PM 닉쿤과 옥택연이 함께 출연한 코카콜라 CF나 동방신기의 두 멤버 유노 윤호와 최강 창민의 Why: Keep Your Head Down 뮤직비디오 내지 박중훈, 안성기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나 하지원, 강동원의 <형사 듀얼리스트>를 연상하게 만드는 화려한 영상이 대사도 거의 없는 상태로 이어집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현란하게 연출되는 화려한 액션씬은 그 자체로서 대단한 영상미를 보여주지만 빼어난 촬영 기술에 비해서 영화의 처음부터 계속된 현란한 액션씬은 그 장면의 미적 완성도에 대한 체감적인 만족도를 떨어뜨려 버리지요.
곽부성, 정이건이라는 수려한 외모의 두 배우, 화려한 액션 연출, 빼어난 색감, 뛰어난 촬영 기술이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조율에 실패한 채 영화의 후반부 수 십 분동안 진행되는 액션씬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이란 옛말의 의미를 되새겨줍니다. 마공(魔功)에 주화입마된 섭풍처럼 풍운 시리즈의 연출자들은 컴퓨터 그래픽에 주화입마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해보게 됩니다. 검을 날리고 폭풍우를 불어일으키고 바위를 자르는 것은 CF나 뮤직비디오에서 보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영화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몰입은 인물들 간의 갈등 구조를 어떻게 배치하며 이야기의 호흡을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있지, 화려하고 과장되고 특수효과에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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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