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코너

크눌프
- 작성일
- 2013.4.14
금의위: 14검의 비밀(디지털)
- 감독
- 이인항
- 제작 / 장르
- 홍콩
- 개봉일
- 2012년 6월 14일
삼국지 용의 부활과 초한지 천하대전 두 편의 영화로 중국 고전의 영상화에 흥미가 있는 국내 관객들의 이목을 끄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던 이인항 감독. 금의위 14검의 비밀은 바로 그 이인항 감독의 작품입니다. 이인항 감독은 스타일리쉬한 액션과 고증을 뛰어넘는 무구(武具)로 독특한 개성을 보여주는 감독인데 문제는 스토리에요. 삼국지 용의 부활과 초한지 천하대전이야 원작이 있는 영화니까 스타일리쉬하든 어쩌든간에 영화의 이야기에 관객이 몰입할 수 있습니다. 관객이 이해하기도 좋고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쉽지요. 그러나 이 영화 금의위 14검의 비밀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은 이게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짐작을 하지 못합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명나라에 황제 친위부대가 있고 그 부대의 대장이 견자단이라는 정도겠죠.
영화 (신)용문객잔 또는 용문비갑을 보면 명나라 시대 동창, 서창이란 조직이 나옵니다. 환관이 주도하는 조직으로 황제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이들을 핍박하던 악명 높은 기관이었죠. 동창, 서창과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기관이 바로 금의위였습니다. 비단 錦, 옷 依, 호위할 衛... 비단 옷을 입고 황제를 호위한다 이런 뜻을 가진 이름의 조직인데 설립 목적과 달리 부패한 권력집단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영화는 금의위의 대장 청룡(견자단)이 어린 시절 형을 죽이고 금의위에 선발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 금의위로서의 운명이 가혹함을 설명합니다. 황제를 보위한다는 대의명분과 달리 그 내부의 일은 이렇게 지독함으로 가득차 있었죠. 금의위에는 청룡을 필두로 주작, 백호, 현무 등으로 구성된 대장들이 있는데 그 중 야심많은 현무가 나머지를 배신합니다. 그리고 대장인 청룡(견자단)은 그 과정에서 누명을 쓰고 쫒기게 됩니다.
사실 이야기의 시놉시스만 보면 괜찮은 영화입니다. 금의위의 운명, 권력의 부패, 누명과 탈출 등은 걸작 무협 영화가 되기에 충분한 소재죠. 고문용, 사살용, 자살용으로 사용 용도가 나눠진 14자루의 검 역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소재입니까. 하지만 스타일에 집착한 이 영화는 영화적인 짜임새보다는 시공을 초월한 만화적인 액션을 보여주기에 급급합니다. 황도(皇都)에서 변방으로 도망치는 과정에서 만난 견자단과 조미,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고 부딪히는 캐릭터들은 겉돌고 있습니다. 물론 비장하고 화끈합니다. 하지만 힙합 래퍼처럼 땋은 머리와 코트 깃을 세운 것 같은 견자단의 의상, 일본 만화 속에서나 볼 것 같은 독특한 디자인의 칼, 불필요하게 복잡한 기계장치들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을 무색케 만들지요.
대만의 인기 그룹 비륜해의 멤버이면서 연기자인 오존(吳尊 )의 출연 분량은 영화의 맥을 끊습니다. 우리나라 보이그룹 멤버로 비유하면 비스트의 윤두준 쯤 위치일 이 청년은 잘생긴 얼굴로 영화의 비주얼적인 장점을 살려주긴 하는데 문제는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빼버리면 오히려 전체적인 이야기가 더 집중력 있을 것 같은 캐릭터란 점입니다. 명장 관우에서 형수를 모시고 오관돌파를 하던 관운장의 모습처럼 견자단은 조미를 데리고 변방으로 향합니다. 쫒고 쫒기는 과정에서 옥새와 비밀무기, 총과 대포, 또다른 음모를 꾸미는 자들까지 끼여들면서 영화는 중구난방이 되어갑니다. 다 추려내고 이야기를 간단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어요.
견자단은 늘 견자단 자신을 연기합니다. 엽문도 견자단이고 관우도 견자단이고 청룡도 견자단이에요. 그게 먹혀들면 멋진 영화가 되는데 이야기가 쓸데없이 복잡하거나 우물쭈물해버리면 이것도 저것도 안됩니다. 이소룡, 성룡, 이연걸에서 견자단으로 이어진 무술 고수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스타일리쉬라는 겉멋 때문에 밋밋해져버렸죠. 견자단이 주인공이면 견자단을 상대하는 사람도 견자단 못지 않은 고수 느낌이 나야 영화의 무게 중심이 잡히는데 특수효과를 남발하는 이 영화에선 그런 것이 없어요.
그 시절 홍콩 무협 영화를 좋아했던 국내 관객들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천녀유혼의 우마와 가화삼보의 일원인 홍금보까지 출연했지만 영화는 우마과 홍금보를 제대로 써먹지 못합니다. 아이돌 그룹 멤버와 힙합 그룹 멤버처럼 머리를 땋은 젊은 여배우가 날고 뛰며 견자단을 상대로 칼을 휘두르는데 그 위화감이 상당합니다. 인상을 쓰고 고함을 지르며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디자인의 검을 휘두르고 버튼을 누르면 상자 속에서 비밀스런 장치가 튀어나와 슝슝 상대를 찌르고 베는 식으로 액션이 연신 이어지죠. 금의위를 둘러산 초반의 진지함은 어느덧 사라져버리고 영화는 과장된 액션 연출, 캐릭터의 분배가 실패한 스토리 속에서 표류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게 봤던 장면은 견자단과 조미가 도망치는 중에 들린 객잔에서 고기 요리 먹는 장면이었어요. 정말 맛있게 잘 먹었는데 계산을 하려니 돈이 없어 쩔쩔 매는 장면이 나온답니다. 견자단과 조미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목욕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녀의 욕탕이 나뉜다? 이건 일본식 목욕탕의 구조겠죠. 영화는 국적불명, 시공초월의 길을 걷습니다. 동창, 서창, 금의위 같은 명나라 시대의 이야기에 흥미가 가서 이 영화를 택한 저 같은 사람으로선 실망이 되는 부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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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