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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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이 영화에는 총 다섯 대의 로봇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서만큼은 로봇이란 이름 대신 예거라는 이름을 붙여줘야 되겠지요. 크림슨 타이푼, 체르노 알파, 코요테 탱고, 집시 데인저, 스트라이커 유레카 - 이렇게 다섯 기의 예거가 출연하는데 태풍의 중국식 이름인 타이푼을 딴, 크림슨 타이푼 중국인 세 쌍둥이가 탑승하는 로봇이며 체르노 알파는 체르노빌에서 따온듯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러시아 로봇입니다. 크림슨 타이푼의 파일럿은 남자 세 명으로 이뤄져 있지만 체르노 알파의 파일럿은 남녀 두 명인데 록키 4에서의 소련 권투 선수 드라고 (돌프 룬드그렌)와 드라고의 매니저 루드밀라 (브리짓 닐슨)을 연상시키는 외양을 가진 배우가 체르노 알파에 탑승합니다. 참고로 크림슨 타이푼의 파일럿은 훌쩍 큰 키에 짧게 깍은 헤어스타일이 중국의 농구스타 야오밍 이미지를 따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아닌게 아니라 영화 속에서 이들 세 중국인 파일럿은 농구공을 바닥에 튕기며 농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시간이 많답니다.


 


영화 초반 괴수들의 침입에 멋지게 대응하다 불의의 일격으로 파일럿 1명을 잃고 파괴된 예거가 집시 데인저란 이름의 로봇으로 함께 탑승했던 형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동생 롤리 버켓, 2인 이상이 조종할 수 있는 예거를 필사적인 노력으로 혼자 조종하여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생존에는 성공하였지만 그 마음은 상처로 가득 차서 예거 파일럿으로서의 자신의 운명을 거부하고 방랑의 시간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무협으로 얘기하면 검(劍)을 내려놓고 쟁기를 잡고 은둔한 셈이지만 강호(江湖)에 몰아닥친 풍운(風雲)은 은둔 고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법. 일본식으로 카이주라 이름 붙여진 괴수(怪獸)의 숫자는 날이 가면 갈수록 늘어만 갔고 카이주로 대표되는 사악한 사파(邪派)의 공격으로 인해 위험에 처한 강호(江湖) 제인(諸人)들은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정파(正派)의 뜻 있는 무림 고수들이 소림사, 아니 홍콩에 그들만의 둥지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막노동꾼 행세를 하며 은둔해있던 무림고수 롤리 버켓을 그곳으로 불러들입니다.


 


형제이거나 부모, 또는 친밀한 남녀일 경우에 드리프트로 지칭되는 정신교응이 잘 이뤄진다고 하는데 정신교응 중에 형을 잃은 롤리 버켓은 형이 죽을 때의 트라우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합니다.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롤리 버켓 뿐만이 아닙니다. 여주인공 모리 마코 역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지요. 일본 도심에 나타난 카이주에게 부모를 잃고 혼자 쫒기던 어린 마코는 갑자기 나타난 예거로 인해 홀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그때 마코를 구해준 예거가 바로 코요테 탱고였으며 코요테 탱고의 파일럿이 바로 홍콩에 모인 무림 고수들을 지도하는 리더 스태커였답니다. 스태커에게 마코는 딸 같은 존재가 되고 마코에게 스태커는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었지요. 그렇기에 스태커는 마코의 정신적인 고통을 잘 알고 있었고 그녀가 파일럿이 되는 것을 막습니다. 하지만 무협 영화에서, 부모의 원수를 눈 앞에 두고 검을 뽑지 않는 검객이 없듯 스태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코는 예거의 파일럿이 됩니다. 카이주에게 형을 잃은 롤리와 함께 부모를 잃은 마코가 수리 완료된 집시 데인저의 조종석에 나란히 올랐는데 문제는 이 두 사람의 트라우마입니다. 과거를 떠올리며 정신교응을 하던 중에 트라우마 때문에 조종 불능 상태에 빠져버리면서 기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어수선한 상황을 지켜보며 코웃음을 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호주의 파일럿 척 한센이었습니다. 아버지 허크 한센과 나란히 스트라이커 유레카 탑승하는 인물인 척 한센 이 친구, 아버지도 못말릴 정도로 제법 오만방자합니다. 롤리와 끊임없이 트러블을 잃으키던 척 한센은,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아버지가 조종석에서 내려오게 되자 리더인 스태커와 함께 스트라이커 유레카에 탑승하여 마지막 전투에 나선답니다. 스태커가 탑승했었던 코요테 탱고의 경우는 일본에서의 전투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아서 홍콩에 파일럿들이 모인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예거는 크림슨 타이푼 체르노 알파, 스트라이커 유레카, 집시 데인저 이렇게 단 네 대 뿐이죠. 그 중에서 크림슨 타이푼과 체르노 알파는 강하게 생긴 모양과 달리 얼마 가지 못하고 카이주에게 파괴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예거는 스트라이커 유레카와 수리를 끝마친 구형 예거 집시 데인저 두 대 뿐이었습니다. 예거를 조종할 수 있는 파일럿 역시 몇 남지 않아서 매사 불만이 많은 척 한센과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스태거가 새롭게 한 팀이 되어 스트라이커 예거에 탑승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롤리와 마코가 집시 데인저를 조종하게 되었지요.


 


예거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원자력을 동력으로 이용해서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었는데 그 때문에 카이주와 싸우다가 예거가 파손되는 과정에 방사능이 누출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구형 예거에 오랫도록 탑승했던 스태거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어가는 상태였었죠. 그런 고통을 알기에 딸처럼 아끼는 마코에겐 파일럿의 고통을 대물림해주지 않으려고 했었구요. 이후에 만들어진 신형 예거의 경우는 원자력 동력계가 아닌 까닭에 방사능 걱정은 없었지만 전자파 공격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고 결국 이 때문에 조종에 이상이 생겨 카이주와의 전투 도중에 동작 불능을 일으키게 됩니다. 집시 데인저는 구형인 원자력 동력을 사용하는 예거로, 파손된 부위는 수리했지만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엔진 자체는 바꾸지 못했던 까닭에 카이주의 전자파 공격에서는 자유로울 수가 있었지요.


 


일본의 오래된 특촬물 고지라 시리즈의 고지라, 모스라, 킹기도라 등을 연상시키는 카이주(怪獸)는, 괴수라는 이름에서부터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일본 로봇물과 일본 괴수 특촬물의 영향 아래 만들어진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연성이라든지 현실성 대신 일본 특유의 오타쿠 문화에 대한 오마주로 이뤄진 영화라고 해야 되겠지요. 임춘애 또는 하춘화가 떠오른다는 여주인공 기쿠치 린코가 공각기동대로 서구의 SF 매니아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던 유명한 일본 영화감독 오시이 마모로의 스카이 크롤러, 킬, 어썰트 걸즈에 연이어 출연하였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여주인공 기쿠치 린코의 캐스팅 역시 오시이 마모루로 대표되는 일본 오타쿠 문화를 향한 오마주의 한 방편이었음이라고 짐작할 수 있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육탄 공격의 대명사 철인28호, 머리 부분에 도킹해서 조종하는 마징가 제트, 세 마음이 하나로 뭉쳐 싸우면 하나의 정의는 백만 파워라는 겟타 로보, 원자력 에너지의 힘이 쏟는다 랄랄랄라 랄라랄라 공격 개시하는 메칸더 브이, 파일럿들의 정신교응으로 로봇을 조종하는 초인전대 바라다크, 파일럿과 로봇이 싱크로를 통해 하나가 되는 과정을 그려내었던 에반게리온까지 여러가지 일본 로봇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날개 달린 카이주가 예거를 끌고 하늘 위로 올라가는 장면에선 데빌맨을, 한쪽 팔이 날라간 예거가 남은 한쪽 팔로 카이주를 상대하는 장면은 기동전사 건담 떠올리게 만든다고 볼 수도 있구요. 로켓 펀치가 발사되는 장면에선 마징가 제트, 뒤늦게 칼을 꺼내 적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장면에선 볼트파이브의 천공검을 기억하실 수도 있을 것이구요.  롤리와 마코 두 남녀 주인공이 드리프트를 통해 한 마음이 되어 공룡 형태의 괴수를 물리치는 장면은 공룡대전쟁 아이젠보그를 연상케 한다고도 볼 수 있으며 벽을 쌓아 괴수들을 막는 장면에선 일본에서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진격의 거인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들죠.


 


IMDB의 퍼시픽 림 항목에선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강철 지그, 데빌맨, 고바리안 등을 만든 나가이 고와 건담 시리즈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토미노 요시유키에게 제작진이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영화의 스탭롤에서는 스톱모션 특촬물의 대가 레이 해리아우젠 고지라의 감독 혼다 이시로에게 이 영화를 헌정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보고 극찬을 하던 이들 역시 로봇물과 특촬물에 종사하거나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았는데 메탈기어 시리즈를 만든 게임업계의 기린아이지 오타쿠 중의 오타쿠 코지미 히데오 같은 인물은 이 영화를 보고난 후 트위터로 극찬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답니다. 한 마디로 이 영화 퍼시픽 림은, 오덕을 위한, 오덕에 의한 오덕의 영화입니다. 일본의 로봇 애니와 괴수 특촬물을 중심으로 미국의 크툴루 신화, 할리우드 영화 맨 인 블랙까지 감싸안은 영화로, 만국의 오덕들의 오덕심을 자극하게 만드는 영화이며 영화가 오마주한 장면들을 찾아내며 그들의 오덕 레벨을 테스트해보는 영화가 될 것입니다. 로봇과 괴수의 움직임에 마음이 움직이는, 가슴 속 깊이 소년의 심장을 가진 만국의 오덕들이여, 단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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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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