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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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
천녀유혼 (1987)
감독
정소동
제작 / 장르
홍콩
개봉일
1987년 12월 5일
평균
별점8.2 (0)
크눌프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까지, 서극 감독 내지 서극 제작에 오우삼 또는 정소동 감독 이름이 붙은 비디오테이프 하나면 한 두 시간 즐겁게 지내기에 충분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사실 당시만 해도 감독이니 제작이니 따지지 않고 서극 이름에 이연걸 같은 당시 인기있던 홍콩 스타 이름만 들어가면 서극 영화, 이연걸 주연 이런식으로 홍보되어 비디오대여점의 인기 작품이 되기도 했었더랬다. 홍콩과 한국의 영화 제작상의 표기법이 달라 한국식으로 한자를 읽으면 감제에 해당되는 쪽이 제작자의 이름이며 역시나 한국식으로 한자를 읽으면 도연(배우의 연기를 지도한다는 뜻이리라)에 해당하는 부분에 감독의 이름이 들어가는데 섣불리 감독의 이랑 감제의 이 같은 한자인 것만 확인하고는 서극이 도연이 아닌 감제, 즉 제작을 맡은 작품도 서극이 감독한 영화안 것처럼 적당히 퉁치곤 했더랬다.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온 서극홍콩의 스필버그 꿈꾸며 기획, 제작, 연출에 있어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며 그의 이러한 영화적인 열정에 힘입어 홍콩 영화계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때 바다 건너 한국의 비디오키드들에게 한자로 쓰여진 감제와 도연의 애매함 그리고 서극의 이름값을 빌린 마케팅 등으로 인해 서극 영화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던 작품을 연출했던 인물들이 바로 정소동, 이혜민 같은 감독들로, 왕조현을 스타로 만든 천녀유혼과 임청하의 중성적 매력이 돋보였던 동방불패는 서극이 제작하고 정소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양가휘와 장만옥, 임청하 그리고 견자단이 출연했던 신용문객잔은 역시나 서극 제작에 이혜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었다. 서극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들과 장르가 비슷해서 종종 헷갈리는 이들의 작품과는 현저히 영화의 장르가 달랐던 오우삼 감독 역시 영웅본색 1편과 2편에서 서극 제작, 오우삼 감독의 형태로 뭉치기도 했던 인물이며 영웅본색 3편은 아예 서극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더랬다.


 


미국에서 배운 SFX 기술과 중화권 고유의 무협 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하고 싶어했던 서극 감독은 제작자의 역할을 맡아 요재지이 속 짤막한 이야기에 살을 붙인다. 서극과 궁합이 잘 맞는 정소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의 장국영왕조현을 남녀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여 기이하고도 애틋한, 귀신과의 사랑 이야기를 관객에게 선보인다. 당대 홍콩의 인기 가수이기도 했던 장국영은 영화 속 노래를 불러 관객의 몰입도를 더욱 더 높였다. 남자를 유혹해서 양기를 빼먹는 여자귀신, 귀신을 퇴치하려는 퇴마사, 귀신 세상에서의 싸움, 애처로운 이별이 이어지며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아름다운 여인이 긴 옷자락을 휘날리고 춤을 추며 남자에게 다가간다. 글 읽던 선비로 보이는 남자는 음욕을 견디지 못하고 합방을 하는데 아뿔싸, 여인은 양기를 뺏으러 온 귀신이었으며 남자의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화면이 전환되고 만다. 흡사 미녀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오프닝이 끝나고 나면 지금의 이승기 같은 이미지의 장국영이 등장한다. 한 마디로 여자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허당 캐릭터란 얘기.


 


우리네 이승기처럼, 가수 겸 연기자였던 장국영, 그 장국영이 부르는 노래가 관객의 귀에 들리는 가운데 순진, 순수 그 자체인 장국영. 아니 영채신이 등장한다. 허당끼 가득한 모습으로 등장한 영채신(장국영)은 먼 길을 걸어 도착한 마을에서 수금을 하려고 하지만 장부가 흠뻑 젖어 먹물이 번진 탓에 수금은커녕 범죄자로 오해를 받는 해프닝까지 겪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범죄자가 아님은 밝혀지게 되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불쌍한 영채신은 마을 사람들의 따돌림 끝에 난약사(蘭若寺)란 곳에서 야외취침을 하러가게 되었는데 영채신을 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수상하다. 마을 사람들 입자에선 수금 장부를 들고 돈을 받아내려고 나타난 영채신이 영 마뜩찮은 존재였던 것으로, 성을 측량하러 왔다가 측량을 못하고 말았던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城)에 등장하는 측량기사 K 같은 존재랄까.


 


자기 집에 재워주겠다는 사람 하나 없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난약사에서의 노숙을 권하지를 않나 아예 장례를 치를 관(棺)을 만들겠노라고 치수를 재는 사람이 있질 않나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 가관이다. 하지만 우리의 허당끼 가득한 영채신은 그 와중에도 아리따운 미녀의 모습이 그려진 한 폭의 그림에 감탄한다. 꽃보다 누나 속 이승기에게 터키 팽이가 있다면 영채신에겐 이름모를 미인이 그려진 그림이 있다고나 할까. 마을 사람들이 말한 난약사란 곳은 귀신들의 소굴로 오프닝에서 보여준 글 읽는 선비, 우리로 말하면 절에서 책 펼쳐놓고 사법고시 준비하는 고시생 같은 이를 유혹해서 양기를 빨아먹던 바로 그 장소인 셈인데 여자를 모르는 순진한 영채신 앞서의 고시생처럼 쉽게 유혹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에게 떠밀리던 끝에 등의 옷자락에 찍혀버린 부적 자국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 접근했던 여자귀신이 더 당황하는데 바로 여기서 장국영이 연기한 영채신과 왕조현이 맡은 귀신 섭소천과의 영화 속 첫번째 만남이 이뤄진다.


 


 



 



 


왕조현이 연기한 여자귀신 섭소천은 순진한 남자 영채신에게 색다른 감정을 느낀다. 육체적인 쾌락에 빠져들었던 다른 남자들과 달리 이 남자는 순수함 그 자체였고 허당끼 가득한 그의 실수마저도 섭소천에겐 사랑스럽게 보인다. 죽음의 장소인 난약사에서 영채신은 귀신인 섭소천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된다. 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 속에 숨은 영채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섭소천의 아리따운 자태에 감탄하지 않은 남성 관객이 없었으리라. 물 속에 숨은 영채신을 살리기 위해 웃옷을 벗고 고개를 숙여 영채신에게 입맞춤하는 섭소천(왕조현) 덕분에 이후 많은 남학생들이 처녀귀신을 더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동양권 영화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로맨틱한 명장면을 통해 영채신과 섭소천의 사랑은 점점 깊어진다.


 


난약사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모르고 난약사에 들어간 영채신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양기가 다 빨려 좀비처럼 변한 시체들의 습격을 받지만 워낙에 허당이다보니 밑에서 뒤에서 위에서 계속 나타나는 시체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고 하룻밤을 보낸다. 위험천만한 곳인 난약사에서의 하룻밤을 무사히 지내고 영채신이 살아서 마을에 돌아오니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랜다. 장부의 글자가 알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돈을 줄 수 없다고 버티던 이들도 알아서 돈을 내겠다고 할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만 허당 영채신으로서는 이들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섭소천을 못 잊어 다시 한 번 난약사를 찾는 영채신, 하지만 상황은 간단하지 않았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면 섭소천은 다방 레지나 룸살롱 아가씨요 그 위에 마담이니 사장이니 하는 그악스런 무리가 있는 셈.


 


영채신과 섭소천이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 산 깊은 곳에선 귀신 잡는 퇴마사 연적하(우마)가 무공을 다듬으며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우마는 이후 화중선이란 영화를 직접 감독하며 왕조현에게 천녀유혼 속 섭소천 캐릭터랑 비슷한 귀신 캐릭터를 맡기기도 한 인물이며 우마가 연기한 연적하 캐릭터는 이후 유역비가 섭소천 역을 맡아 리메이크가 된 천녀유혼 2011 편에서는 상당히 비중있는 존재로 격상되어 섭소천(유역비)과 멜로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리메이크된 버전에서는 고천락이 맡아 유역비의 섭소천과 인연이 깊은 연적하였지만 이 영화에서의 비중은 낮다. 영채신을 만나 난약사 귀신들의 정체를 알려주고 영채신과 섭소천을 도와 섭소천을 괴롭히는 나무귀신을 퇴치하는데 도움을 주는 정도랄까. 섭소천의 유골이 묻힌 곳이 바로 나무귀신이 있는 나무 근처라서 섭소천은 나무귀신의 하수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존재였고 귀신들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더 큰 힘을 가진 귀신에게 시집을 가기로 약정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섭소천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움켜쥐고 그녀를 향항 사랑을 잊지 못하던 영채신은 연적하의 얘기를 통해 섭소천 역시 귀신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섭소천을 다시 만난 영채신은 그녀의 사연을 듣게 되면서 귀신인 섭소천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된다. 귀신임을 알게 되어 소천을 멀리 하는 영채신에게 섭소천은 귀신보다 더 악한 사람도 있다며 귀신이라고 모두 나쁘게 보지만은 말아달라고 애원한다. 귀신이라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는 인간과 귀신이라고 모두 나쁘지 않다는 귀신의 애절한 탄식은 그 몇 년 후 조문탁이 퇴마사 역할을 맡고 장만옥과 왕조현이 나란히 귀신 역할을 맡은, 서극의 영화 청사(青蛇)에서 더욱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달까.


 


이제부터 영화는 섭소천과 영채신, 연적하가 한 팀이 되고 질퍽질퍽한 촉수를 휘두르는 나무귀신과의 대결로 이어진다. 귀신과 서생의 사랑 얘기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서극 특유의 SFX 판타지 무협으로 변하고 징그러운 나무귀신의 점액질을 뒤집어쓴 연적하와 영채신은 천신만고 끝에 나무귀신의 공격을 물리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영웅본색 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던 중견배우 유조명은  한없이 징그러운 나무귀신을 독특한 분장과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잘 소화해내었다. 섭소천 역을 맡은 왕조현과 함께 천녀유혼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어버린 유조명은, 2편에 이어 3편까지 출연한다. 3편에서 장국영 대신 양조위가 출연하고 우마 대신 장학우가 연적하 역으로 출연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천녀유혼 시리즈에서 유조명이 보여준 나무귀신 이미지가 얼마나 강하게 자리잡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무귀신과의 대결이 어느 정도 끝난 뒤 나무 옆에 묻힌 소천의 유골함을 파내온 영채신, 연적하 일행은 어느 유골함이 소천의 유골함인지 확인하지 못해 여러 개를 함께 파온다. 그러한 다급함 끝에 소천의 유골함을 빼놓고 온 것이 아닌가 할 때에 소천이 나타난다. 어렵게 다시 만난 영채신이 섭소천과 다정한 시간을 보낼 찰나 소천이 지하세계로 끌려간다. 서양식으로 얘기하면 드라큘라신부가 될 예정이었던 것이 바로 소천으로, 지하세계의 거대한 존재인 흑산노아의 힘에 의해서 소천(왕조현)이 끌려가고 말았던 것이다. 퇴마사 연적하, 순진한 총각 영채신, 그녀 자신이 귀신인 섭소천이 전력을 다해 흑산노아와 싸운다. 그들이 흑산노아와의 싸움을 마치고 지상의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여명의 햇빛이 창문을 통과하고 있을 때였다.


 


영채신(장국영)이 온몸으로 창문 앞에 서서 햇빛을 가로막으려 하지만 귀신인 섭소천(왕조현)은 햇빛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다. 나무귀신에 흑산노아까지 물리쳤건만 귀신과 사람의 사랑은 여기서 엇갈리고 만다. 간절한 표정으로 새벽의 햇살을 가로막는 장국영의 표정과 엽청문의 노래 여명불요래(黎明不要來, 새벽이여 오지마세요)이 어울러지는 이 장면 역시 천녀유혼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명장면이다. 영채신이 뒤돌아봤을 때 이미 섭소천을 사라지고 난 뒤였고 새벽의 햇빛 가득한 방 안에는 소천의 유골함만이 남아 있었다. 섭소천의 그림이 그려진 족자를 쥔 영채신, 그리고 영채신과 섭소천의 사랑을 지켜봤던 연적하는 소천의 유골함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며 명복을 빌어준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해서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은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로 끝이 나는 한용운 시인의 시 님의 침묵처럼, 귀신이자 연인이었던 섭소천은 새벽 햇빛 속에 조용히 사라졌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영채신은 섭소천을 좀처럼 잊지 못한다. 아니, 섭소천을 잊지 못한 사람은 영채신만이 아니라 그 시대, 천녀유혼을 관람한 우리 모두였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섭소천에 대한 끝없는 사랑은 속편인 천녀유혼 2 인간도 편이 제작되기에 이르고 이후 장국영 대신 양조위를 캐스팅해서 천녀유혼 3 도도도 편까지 제작되도록 만든다. 피천득 작가의 글 인연에서,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라고 나와 있는데 어쩌면 천녀유혼 시리즈와 관객들 사이의 만남 역시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관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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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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