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코너

크눌프
- 작성일
- 2013.12.17
천녀유혼 2 - 인간도
- 감독
- 정소동
- 제작 / 장르
- 홍콩
- 개봉일
- 2015년 4월 9일
섭소천과 영채신의 애절한 이별로 마무리된 천녀유혼 1편의 인기가 워낙 드높았기 때문에 천녀유혼의 속편이 만들어질 것은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었고 속편인 2편 인간도(人間道) 편은 이러한 전편의 인기에 따라 1편의 하이라이트를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긴머리 흩날리는 아름다운 귀신 섭소천의 모습에, 1편에서의 섭소천과 영채신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기억하는 관객들이 전편에서 느꼈던 감동을 되새기고 나면 그제서야 영화 본편이 시작된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표현하려고 그랬는지 영채신(장국영)의 얼굴엔 긴 수염이 붙어있다. 곱상한 장국영의 얼굴에 긴 수염이라니 당최 비주얼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아무튼 그런 얼굴로 홀딱 벗고 목욕을 하며 룰루랄라 노래까지 부른다. 갑작스런 외부인의 인기척에 잔뜩 겁을 먹고 목욕 중에 몸도 제대로 닦지 못하고 헐레벌떡 도망치던 영채신은 괴한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지만 젊은 퇴마사(장학우)의 무공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귀신인줄 알고 싸웠는데 알고보니 복면을 쓴 괴한들의 정체는 여자가 섞여있는 인간(人間)의 무리로, 이들 중에는 영채신의 그녀 섭소천을 빼닮은 아가씨(왕조현)가 포함되어 있었다.
영채신을 습격한 괴한(?)들은 압송되어가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자매가 지휘하고 있는 무리로, 왕조현이 언니, 이가흔이 여동생으로 나란히 출연하였다. 장국영이 연기한 영채신은, 섭소천을 빼닮은, 자매의 언니(왕조현)가 자신이 사랑한 섭소천이 환생한 것으로 여기고 그녀를 만날 때마다 소천이 아니냐고 되물어본다. 귀신이 아님을, 악당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이런저런 오해가 풀리지만 한 가지 오해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섭소천님, 당신이 정말 섭소천이 아닙니까? 저 모르겠어요? 기억나지 않아요? 영채신(장국영)은 끊임없이 물어보지만 그녀(왕조현)는 단호하다.
하지만 영채신은 그런 그녀가 전생의 기억을 잊었을 뿐 자신이 사랑했던 섭소천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공리와 장예모가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 진용에서 불로불사의 환단을 먹은 몽천방(장예모)이 진시황 때의 무덤에서 나온 뒤 궁녀 동아가 오랜 시간 후에 환생한 현재의 여인(공리)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사랑을 되새기듯 그렇게 영채신은 섭소천을 빼닮은 여인(왕조현)에게 다가간다. 과장될 정도로 긴 영채신의 수염은 전편의 귀신 섭소천이 이승으로 사라진 뒤 인간으로 환생을 했다면이란 가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만큼의 세월이 지났다란 설정을 뒷받침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오래 전 프랑스 영화 중에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란 영화가 있다. 그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 자신을 만나지 않았었냐고 묻고 여자는 그것을 단호히 부인한다. 남자는 여자에게, 나와 당신은 사랑했던 사이였으며 당신을 만나기 위해 여기 왔다고 말하지만 여자는 그런 일 없다고 잡아떼는데, 천녀유혼 2편 인간도에서의 영채신과 이 여인(왕조현)이 딱 그 꼴이다. 난약사에서 당신을 만난 적이 있다고 영채신은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섭소천을 빼닮은 여인은 딱 잡아뗀다. 공리와 장예모가 출연했던 영화 진용에선 천 년 전 시황제 궁에서 만난 관계임을 남자가 얘기하자 나 그런 사람 아니다, 기억에 없다, 모른다라고 잡아떼던 여배우(공리)가 죽기 직전에 자신이 그때 그 궁녀 동아(공리)가 환생한 존재임을 기억해내었던 적이 있으니만큼 그 시절 홍콩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관객은 왕조현이 연기하는 이 여인이 섭소천의 환생일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어서 옛 기억을 찾아 영채신의 사랑을 받아주길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한밤의 오해로 인해 서로 칼을 겨뤘던, 자매가 이끄는 무사 일행과 영채신 일행은 오해가 풀리자 칼을 거두고 각자의 길을 떠난다. 영채신이 섭소천을 빼닮은 여인(왕조현)을 보고 심장이 두근두근거릴 때 그 심장의 두근거림 때문에 생생한 인간의 냄새가 더 진하게 느껴져서인지, 귀신에게 양기를 빼앗겨 좀비처럼 변해버린 괴물이 영채신 일행을 습격한다. 퇴마사이자 뛰어난 무사인 지적(장학우)과 여전히 허당끼 가득한 영채신이, 커다란 좀비(!)를 상대로 징그러우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싸움을 펼친다. 퇴마사에게서 주문을 배우고 퇴마사가 손바닥에 그려준 부적을 무기 삼아 좀비에게 대항하는데 영채신이란 인물이 워낙 허당 캐릭터이다보니까 그 과정에서의 장면 장면이 제법 재미있다. 좀비를 향해 동작 그만 주문을 외친다는 것이 방향을 잘못 잡아서 자신을 도와주는 퇴마사(장학우)의 몸이 선 채로 굳어지게 만든다지 애써 퇴마사가 손바닥에 그려준 부적이 땀에 젖어 못쓰게 된다든지 제법 아기자기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영채신 일행이 좀비와 싸우고 있을 무렵, 영채신 일행과 헤어진 자매와 무사들은 형틀에 묶여 귀양을 가고 있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1편에서 나무귀신 역할로 열연을 펼치며 섭소천(왕조현)을 괴롭혔던 유조명이 여기에선 자매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전편에서 섭소천과 나무귀신의 관계가 유사 부녀 관계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캐스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웅본색 1편에서 주윤발, 적룡 일행을 배신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이자웅이 천녀유혼 2편에서 등에 여러 자루의 칼을 꽂고 싸우는 무사로 등장해서 무공을 보이는 것도 그 시절 홍콩영화 꽤나 보시던 분들이라면 기억에 남을만한 캐스팅이다.
아무튼 영화는 영채신 일행과 자매가 이끄는 무사집단, 죄수를 압송하는 호송인 이렇게 세 집단을 교차시켜주면서 진행된다. 마치 양가휘, 임청하, 장만옥, 견자단이 출연했던 영화 신용문객잔에서 객잔 한곳에 이 사람 저 사람 다 모이듯, 이 영화에도 인물들이 낡은 건물 한 곳에 모이게 된다. 앞서 영채신(장국영)이 목욕을 했던 바로 그 폐가에서 왕조현이 목욕을 하고 그때 장국영을 덮치려고 했던 괴물이 왕조현을 덮치려고 하면서 이야기가 흥미롭게 진행된다. 목욕을 하는 왕조현을 덮치려고 했던 괴물은 햇빛 때문에 1차 습격에 실패하자 왕조현의 옷을 가져간다. 웃옷이 사라진 왕조현은 반나체의 몸이 되지만, 자신을 지켜주려는 장국영의 기지로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옷을 입는데 성공한다.
옷 사건으로 인해 자신을 향한 장국영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는 왕조현, 물론 이때쯤 장국영은 긴 수염을 말끔하게 면도하고 예의 그 곱상한 외모를 되찾은 상태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장국영의 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튕기는 왕조현과 옛 사랑 섭소천을 못 잊는 장국영, 여기에 새침한 언니 왕조현을 좋아하는 장국영을 좋아하게 된 털털한 여동생 이가흔, 이렇게 묘한 삼각 관계가 진행된다. 그 시절 이가흔이 맡은 역할은 이런 캐릭터가 참 많았었다. 이연걸과 임청하가 출연했던 동방불패에서도 이가흔이 맡았던 캐릭터는 이 비슷한, 털털한 여동생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아무튼 괴물이 나타나는 폐가에, 죄수를 압송하던 호송인 일행까지 들어오게 되면서 호송인과 무사들의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괴물에게 일격을 당하려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괴물의 머리통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안간힘을 쓰다가 그 머리통이 퇴마사의 법력에 의해 파괴되면서 괴물의 피를 흠뻑 뒤집어쓴 왕조현은 그 독 때문에 점점 흉측한 괴물이 되어간다. 그녀는 어느새 얼굴 전체가 괴물이 되어 예전의 그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이라고는 좀처럼 찾을 수 없게 된다. 괴물에서 인간으로 되돌아오는 비법을 퇴마사(장학우) 덕분에 알게 되긴 하지만 그 비법은 여느 인간으로선 좀처럼 하기 힘든 것이었으나 영채신이 과감하게 그녀에게 다가간다. 흉한 그리고 위험한 괴물을 부둥켜안고 깊고 진한 입맞춤을 나누는 영채신. 괴물로 변하고 있는 이 여인이 전생의 연인 섭소천이라고 여기기에 가능한 입맞춤이리라.
길고 긴 입맞춤 끝에, 괴물로 변해가던 왕조현은 인간으로 돌아왔지만 입맞춤을 했던 영채신(장국영)이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된다. 정소동 감독은 그런 영채신을 바라보는 두 자매의 표정을 연달아 보여준다. 언니인 왕조현은 이 남자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 표정이며 동생인 이가흔은 언니를 사랑하는 이 남자의 순정은 내가 가로챌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체념하는 표정이랄까. 형틀에 묶인 죄수였던 아버지가 형틀에서 풀려나고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온 여인의 마음에 영채신의 사랑을 받아들여질 때 즈음해서 폐가에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온다.
전편에서도 영화의 뒷부분에 SFX를 이용한 전투 장면을 잔뜩 넣어놓았던 서극 사단은 이번에도 영화의 후반부에 SFX를 이용한 전투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그 시절 홍콩영화를 즐겨봤던 사람이라면 이름은 몰라도 얼굴만은 익숙한 배우가 도교 교주 복장을 하고 폐가에 등장한다. 그 배우의 이름은 유순(劉洵). 가공한 마력(魔力)을 가진 악귀(유순)의 등장에 폐가에 모였던 일행들이 모두들 흩어지게 되는데 우연히도 장국영과 왕조현이 함께 도망치게 된다. 왕조현을 살리느라 기력이 쇠해진 영채신(장국영)은 추위가 겹쳐 혼수상태가 되고 이때 오한으로 떨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그를 살리려고 우리의 아름다운 왕조현이 옷을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아무튼 이 장면도 명장면이다.
기력을 잃고 쓰러졌던 영채신은, 섭소천을 닮은 아가씨(왕조현)의 정성 깃든 노력으로 인해 의식을 되찾는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영채신은 섭소천과 그녀가 다른 사람임을 뒤늦게 깨닫고 그녀를 향한 사랑에 대해 담담해지려고 하지만 자신을 향한 영채신의 사랑에 감복한 아가씨(왕조현)는 섭소천이 그려진 그림을 보며 남자의 순애보에 감탄한다. 둘은,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객잔의 주인이 독살과 살인을 일삼는 무리임을 깨닫게 되고 서둘러 객잔을 빠져나온다. 객잔을 나와 어두운 산 속으로 도망친 이들은 늑대떼를 만나게 되는데 둘 다 늑대밥이 되려는 이때 영채신은 자신이 먼저 늑대밥이 되겠노라고 얘기한다. 자신을 먹으며 늑대 배가 채워지는 동안 한 사람, 즉 여인은 도망칠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으로 자신을 또 한 번 희생하려는 영채신의 마음 씀씀이 앞에 그를 바라보는 여인(왕조현)의 사랑 역시 깊어짐을 더 말해 무엇하랴.
늑대가 나타났던 그곳이 1편의 주무대였던 난약사였음이 드러나고 영채신은 1편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노련한 퇴마사 연적하를 만나게 된다. 영채신에 연적하에, 섭소천을 빼닮은 아가씨(왕조현), 자매의 아버지였던 죄수(유조명)까지 전편의 주요 배우들이 나란히 재등장한 가운데 연적하의 도력(道力)에 힘입어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마귀(魔鬼)와의 재대결이 이뤄진다. 몇몇의 희생자가 나오긴 했지만 반야바라밀을 외치며 힘겹게 싸운 끝에 마귀를 물리쳤고 사투 끝에 살아남은 일행은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된다. 왕조현이 연기한 언니 캐릭터는, 1편의 섭소천이 그러하듯 혼처가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녀는 정해진 혼처 대신 새로운 먼 길을 떠나려고 한다. 물론 그 길에 함께 하는 남자는, 사랑을 알게 해준 남자 영채신이었더랬다.
신부 복장을 하고 가마를 타고 가던 새 신부(왕조현)이 영채신(장국영)의 목소리를 듣고 울먹거리는 것도 이 영화 속에서 잊지 못할 장면이다. 그리고 영화는, 신부 복장의 왕조현이 장국영과 함께 말을 타고 석양 저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섭소천을 못 잊던 영채신이 그동안 섭소천의 환생으로 여겼던 여인과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슬며시 웃음짓고 있는 섭소천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비디오테이프로 이 영화를 감상했던 90년대 초중반 그때만 해도 1편에서 사라진 섭소천이 환생을 한 것인데 전생의 기억을 못 찾고 저런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20년 쯤 지난 지금 다시 감상을 해보니 환생이 아닌, 외모만 닮은 여인이 영채신의 순애보에 감탄하여 순정남 영채신과 사랑에 빠진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맞다 싶다. 혹시 모를 일이다. 20년 쯤 더 지나서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하게 되면 섭소천이 환생하여 나타난 것으로 해석하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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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