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코너

크눌프
- 작성일
- 2014.2.25
로보캅(디지털)
- 감독
- 호세 파딜라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2014년 2월 13일
사실 이 영화를 관람한 날짜는 지금으로부터 꽤 지난, 국내 개봉 첫 날이었습니다. 여태 리뷰 쓰기를 미루고 있었던 것은 어떻게 평점을 해야될지 고민이 많아서였답니다. 두 시간 가까이 나름 재미있게 영화를 감상하긴 했지만 원작의 묵직한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사실 로보캅은 틴틴 파이브 등의 인기 개그맨등이 흉내낸 음~ 치키~ 음~ 치키~ 기계음으로 또렷히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죠. 이번 영화에선, 묵직한 쇳덩어리 느낌 가득한 그때 그 로보캅은 어디 가고 날렵한 몸뚱아리로 오토바이 위에 올라타서 마치 배트맨이라도 된 듯 쌩쌩 도심을 오갑니다. 아이언맨과 배트맨을 섞어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아닌게 아니라 조연으로 사무엘 잭슨이 출연하는데 사무엘 잭슨은 아이언맨, 정확히 말하면 어벤저스에 등장하는 배우이며 로봇을 만들어 내는 회사의 사장님 역할은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배트맨 즉 브루스 웨인 역을 맡았던 마이클 키튼이 맡았답니다. 여기에 더해, 로보캅을 만들어 내는 박사님 역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시리즈에서 고든 경감 역할을 맡았던 게리 올드먼이, 로보캅을 은근 괴롭히는 매덕스 역할은 영화 왓치맨에서 로어셰크 역할을 맡았던 잭키 얼 헤일리(Jackie Earle Haley)가 담당했으니 조연들의 존재감을 보는 것만으로도 표값은 웬만큼 한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 실망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은 다름 아닌, 폴 버호벤 감독이 만들어낸 원작 로보캅의 묵직한 주제의식이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인간과 로봇 사이의 경계에 서있던 머피 형사의 고뇌를 다뤘던 철학적 논의는 사라져버렸습니다. 아니 그동안 로보캅 이후 만들어진 많은 SF 영화들이 폴 버호벤 감독이 연출한 로보캅이 이뤄낸 존재론적 고뇌를 확장, 변주시켜왔던 까닭에 이제 와서 같은 얘기를 영화화해봤자 그때와 같은 감동을 이끌어내기는 힘들었겠죠. 그리고 그렇게 헐거워진 주제의식의 빈 공간을 보다 빠르고 보다 가벼워진 액션 연출로 메꾸려고 합니다. 에어울프와 키트, A 특공대, 제5전선 등을 보며 자란 세대라면 검은 독수리라는 제목의 미드도 기억하실 텐데 검은 색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질주하는 로보캅의 모습은 그때 그 검은 독수리가 연상된다고나 할까요.
주인공인 알렉스 머피 형사 역할은 조엘 키나만(Joel Kinnaman)이라는 배우가 맡았는데, 최근 몇 년 간 할리우드 SF 영화를 즐겨 봐왔던 저로서는, 로보캅 역에 아바타와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타이탄 시리즈에 출연했던 샘 워싱턴이 머피 역할을 맡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답니다. 나비족과 인간 사이에서 고민하고, 로봇과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고, 신과 인간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캐릭터를 맡았던 배우가 바로 샘 워싱턴이기 때문에 로보캅/알렉스 머피 역할을 맡아도 그럴듯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긴 너무 비슷비슷한 역할을 맡는 것도 배우 생명을 단축시키는 일일테니 쉬어가는 것도 좋을 테죠. 아무튼 이번 로보캅은 조연진의 화려함에 비해 주인공을 맡은 조엘 키나만의 무게감이 떨어집니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로보캅의 쇳덩이 겉모습만이 아니었던 것이죠.
신들린듯 방송을 통해 사자후를 토해내는 사무엘 잭슨의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펫 노박(사무엘 잭슨)은 로봇을 통한 치안 유지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중동의 위험지역으로 파견된 로봇 치안유지단의 모습을 보여주죠. 살벌하게까지 느껴지는 로봇 치안유지단의 활동 장면이 실시간 방송을 통해 미국 내에 전해지고 펫 노박은 그 과정을 통해 로봇을 이용한 치안 유지가 미국 내에서도 조속히 이뤄져야 함을 주장합니다. 영화 속에서 로봇 치안유지단은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에서 이용되고 있었는데 정작 미국 내에서는 로봇 경찰의 활동에 대해 반대하는 원칙파 국회의원 때문에 로봇을 이용한 치안 유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러자 로봇을 만들어 파는 옴니코프 사의 사장 레이몬드 셀라스(마이클 키튼)은 묘수를 생각해냅니다.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형사 알렉스 머피를 로봇 경찰, 즉 로보캅으로 만들어 여론을 바꾸려고 했고 그 결과 중국의 비밀스런 공장에서 로보캅이 탄생하게 됩니다.
감정을 가진 로봇, 로보캅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게 되고 로보캅을 만들어낸 박사 데넷 노튼(게리 올드먼) 일행은 인간의 감정을 최소한으로 줄인, 아니 아예 인간적인 감정을 없애는 단계로 로보캅을 바꿔버립니다. 죽어가는 알렉스 머피를 로보캅으로 재탄생시키도록 수술 동의서에 도장을 찍은 머피의 아내는 그런 로보캅을 보며 당혹스러워합니다. 아내와 아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던 머피는 그 스스로 인간적인 감정을 되찾고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들의 배후조직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사실 원작인 폴 버호벤의 로보캅을 보셨던 분들이라면, 그리고 그 뒤로 만들어진 속편들까지 보셨던 분들이라면 이 뒤의 내용들이야 사실 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로보캅은 인간적인 감정을 찾고 악당들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삽니다. 흥미로운 것은 사무엘 잭슨이 연기한 펫 노박 캐릭터입니다. 로보캅이 모든 일을 해결하고 악당들을 체포한 상황에도 그는 기존의 주장을 되새김질 합니다. 그는 여론이 바뀐 상황에서도 오히려 더욱 더 목소리에 힘을 줘서 열변을 토하며 로봇을 통한 치안 유지를 주장하는데, 펫 노박이 보여주는 장면 장면들이 역설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원작의 묵직한 느낌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가볍고 빠르게 진행되는 액션 장면에서는 살짝 취향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사무엘 잭슨이 연기하는 장면에서의 풍자만큼은 독특한 매력을 발휘합니다. 주연보다는 조연이 더 빛나는 영화라고 하면 과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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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