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코너

크눌프
- 작성일
- 2015.1.28
대상해
- 감독
- 왕정
- 제작 / 장르
- 개봉일
- 2013년 3월 21일
굿다운로드를 통해 처음 이 영화를 보게 되었을 때만 해도 저는 이 영화가 주윤발을 스타로 만든 드라마이자 장국영, 유덕화, 정우성이 함께 출연했던 영화로도 만들어진 상해탄의 아류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상해와 일본군, 그리고 갱단의 흥망은 이미 상해탄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여러 번 만들어졌던 것이죠. 무명의 가난한 배우였던 주윤발은 홍콩 TVB에서 만든 드라마 상해탄(1980)으로 일약 스타가 됩니다. 그리고 이 상해탄 이야기는 90년대 중반 상해탄(新上海灘)이란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지죠. TVB 드라마 버전에서 주윤발이 맡았던 허문강 캐릭터를 장국영이 맡았고 허문강과 같으나 다른 길을 걷는 정력 캐릭터를 유덕화가 맡았었는데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정우성 출연작으로 기억되기도 하는 작품입니다. 장국영, 유덕화에 한국배우 정우성까지 출연한 영화판 상해탄의 경우 홍콩 느와르의 끝자락에 만들어졌는데 新자를 붙여 별도로 표기하곤 합니다. 주윤발이 출연한 TVB 드라마 버전 상해탄은 2006년에 또 한 번 드라마화 되는데 떠오르는 중국 스타배우 황효명이, 예전에 주윤발이 연기했던 허문강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쳤었지요. 상해탄 그리고 허문강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주윤발과 황효명은 이 영화 대상해에 나란히 출연합니다. 그것도 한 캐릭터의 청년 시절과 중년 시절로 나눠서 말이죠.
상해탄의 경우 일제 후반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이 영화 대상해는 그보다 이른 시기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작은 유위강이지만 감독이 왕정이라서 상해탄을 적당히 베껴서(!) 만든 그저 그런 아류작은 아닐까 하는, 영화적으로 불안한 부분이 있었는데 무간도 시리즈를 연출하기도 했던 유위강의 영향 탓인지 왕정 감독의 조악한(!) 감각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면의 색감이라든지 이야기의 진행으로 봐서는 유위강이 직접 연출한 것 같은 느낌마저도 드는 영화에요. 각설하고, 영화는 북경이 아닌 북평(北平)으로 불리던 시절의 이야기를 유장하게 늘어놓습니다. 강소성의 청년 성대기(황효명)는 경극을 연습하는 아리따운 아가씨 예지추를 흠모하고 있었지요. 영화 패왕별희를 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경극은 남자가 여장을 하고 여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전통이었는데 예지추란 이름의 이 아가씨는 여인의 몸으로 경극을 연습하다가 어르신들에게 혼쭐이 나곤 합니다. 그런 예지추를 다정다감하게 위로하는 것이 바로 연인 성대기(황효명)였죠.
예지추는 북평으로 올라가 경극을 더 배우려고 합니다. 성대기는 그런 그녀의 꿈을 지켜주려고 했죠. 하지만 그렇게 사랑하는 예지추와 사랑을 속삭이던 성대기가 모함에 빠져 감옥에 갇히는 일이 생깁니다. 바람난 아내와 정부(情夫)를 혼내주는데 동행하자고 해서 지인을 따라갔는데 그 정부(情夫)가 높으신 분이었죠. 권력을 움켜쥔 자의 음모에 빠져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던 성대기(황효명)는 같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모재(오진우)의 탈옥으로 인해 덩달아 감옥에서 도망치게 됩니다. 군인인 모재는 성대기로 하여금 자신들을 감옥에 갇히게 했던 권력자를 사살하도록 합니다. 자신의 권총을 성대기의 손에 쥐어주면서 살인을 권하던 모재는, 머뭇거리는 성대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잔혹한 세상의 법칙을 알려줍니다. 성대기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면서 첫번째 살인을 성사시키자 모재는 살인한 기분이 어떠냐고 성대기에게 물어본 뒤 상해로 떠날 것을 권하죠.
예지추는 경극을 공부하기 위해 북쪽에 있는 북평으로 떠났고 감옥에서 탈출한 성대기는 남쪽 상해로 향합니다. 상해에 도착한 성대기는 대상해(大上海)란 이름의 나이트 클럽, 프랑스로 비유하면 예전 물랑루즈 같은 화려한 건물을 바라보며 청운의 꿈을 키웁니다. 성대기가 뚱보 친구와 함께 상해와 도착한 것이 1913년으로, 이때의 상해는 조계지란 이름으로 치안이 나뉘어져 있었는데, 치안이 나뉘어져 있었던만큼 상대적으로 주먹들의 힘이 커졌죠. 성대기는 상해 암흑가의 우두머리 홍수정(홍금보)의 밑으로 들어가 그의 총애를 받던 끝에 후계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여자 문제로 트러블이 생긴 군벌 우두머리에게 끌려가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을 맞이한 홍수정을 구하기 위해 성대기는 용감하고도 영리하게 행동을 했고 이런 성대기의 활약으로 인해 목숨을 구한 홍수정은 성대기에게 조직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기고 뒷전으로 물러나 쾌락을 즐깁니다.
사실 주윤발이 연기한 성대기 캐릭터는 모델라고 할만한 실제 인물이 있습니다. 성대기는 상해 암흑가의 황제로 불렸던 두월생(杜月笙)과 어느 정도 인생의 궤를 같이 하는데,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상해 암흑가의 실질적인 두목이 된 두월생은 장개석으로 대표되는 군벌 세력들과 손을 잡고 상해를 지배합니다. 마약을 밀매하며 밤거리를 지배하는 한편 장개석의 군대를 지원하고 무기를 사들이고 금융업에도 손을 대었다고 하죠. 담대하고도 지모가 뛰어났던 실존인물 두월생은 장개석과 가까이 지내며 반공주의자로서의 길을 걷다가 장개석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이후 두월생은 모택동이 점령한 중국 본토와 장개석이 점령한 대만 대신 제3 지역인 홍콩을 택하게 되었으며 1951년에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죠.
영화 속 성대기는 반공주의자로서의 두월생의 활동은 죄다 삭제시켜 놓은 모습입니다. 장개석이란 이름도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도 않죠. 다만 경극배우와의 애정행각은 일정부분 살려놓아 영화의 큰 틀을 유지시킵니다. 실제 두월생은 살아 생전 여러 명의 아내를 뒀던 인물이며 그들 중 몇몇은 유명 경극배우였다고 합니다. 그 부인 중 한 사람인 맹소동은 전국적으로 이름난 경극배우로, 한때 매란방의 연인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 영화 대상해에서 예지추란 인물이 맹소동이란 여인에게서 영향을 받은 캐릭터가 아닌가 싶어요. 영화 속 성대기(주윤발)에겐 부인이 딱 한 명 있는 상태이지만 과거의 연인이었던 예지추의 등장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게 되는데 실존인물 두월생에겐 여자문제로 인한 갈등 같은 것은 딱히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알려진 아내만 다섯 명이었다고 하니 말이죠. 실존인물 두월생의 행적이 성대기란 이름으로 재창작되면서 반공주의자로서의 활동과 여러 명의 여인과의 사랑이 대거 삭제 수정된 것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겠죠.
홍수정(홍금보)의 신임을 얻으며 상해 암흑가의 실질적인 1인자가 된 성대기(황효명/주윤발)는 상해에 나타난 옛 연인 예지추의 모습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상해 암흑가에 어느 정도 자리잡기 시작했던 청년 시절, 오매불망 잊지 못했던 예지추에게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며 정식으로 청혼하려고는 했으나 그때 마침 들이닥친 괴한들과의 총격전이 일어났고 그것을 본 예지추가 피비린내나는 암흑가의 유혈극을 견디다 못해 성대기의 곁을 떠나갔었죠. 성대기는 신문을 통해 자신의 연인이었으며 유명 경극배우인 예지추의 결혼소식을 듣습니다. 연인을 잃은 성대기는 자신이 도와주었던 어린 여인과의 결혼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다수를 상대로 한 성당에서의 총격전이라든지 주인공이 신문을 보고 충격에 빠지는 장면은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과 영웅본색 속 특정 장면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다른 영화가 생각나게 만드는 장면은 또 하나 있습니다. 뒤늦게 상해에서 만난 예지추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오른팔 임배(林輩)를 시켜 보호하도록 했었는데 그 임배란 인물이 괴한들과 빗속에서 일대 다수로 싸우는 장면은 왕가위 감독 일대종사의 오프닝 장면과 비슷하게도 보입니다.
상해 암흑가의 실질적인 1인자인 성대기, 외간남자의 아내가 된 옛 연인 예지추,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예지추의 금융인 남편의 삼각관계가 위태롭게 이어집니다. 예지추의 남편은 금융인인 동시에 반일 민족주의자였기에 그와 그의 아내 예지추를 노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성대기는 그런 그들을 알게 모르게 보호해줬었죠. 하지만 남편 입장에선 아내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성대기가 못마땅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일제의 공격으로 인해 상해가 대규모 폭격을 당하던 날, 예지추와 성대기는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며 뜨겁게 끌어안습니다. 그때 마침 나타난, 예지추의 남편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 두 남녀를 바라봅니다.
한편, 군벌들에게 협조하며 암흑가를 지배하고 있던 성대기(주윤발)는 과거 자신을 구해줬던 모재(오진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군부의 실력자가 된 모재는 성대기와의 인연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깁니다. 오진우가 연기한 모재는, 이 영화에서 나쁜 쪽으로 큰 역할을 하는데 그런 그의 영화 속 모습은 명청 교체기의 오삼계의 행적이 생각난다고나 할까요. 반일이란 명분으로 군대를 모으고 돈을 짜내던 모재 일당은 일제의 대규모 폭격으로 인해 상해가 일본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그 정치적 태도를 바꿉니다. 일제에 맞서 싸운다던 모재 일당의 구호는,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기 위함에 불과했던 것이었죠.
군벌의 위협 속에서도 주먹패로서의 자존심만큼은 지켜내려고 했던 성대기 일행은 잔인하고도 교활한 모재의 협박 때문에 위기에 처합니다. 군자금은 물론 시민 동원까지 종용하는 모재 앞에 성대기는 당당한 자세로 대안을 내놓지요. 비행기 두 대를 기부하며 위기를 모면한 성대기, 하지만 모재의 야심은 끝이 없습니다. 전세가 기울자 모재는 일본군 편에 붙었고 그 재빠른 정치적 변신으로 인해 상해의 권력자로서의 자리를 유지하게 되었죠.
일본군의 공습 때 예지추를 찾아 폭격 중인 상해 거리를 돌아다니던 성대기는 예지추, 그리고 그녀의 남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상해를 떠날 방도를 찾던 성대기에게 모재는 상해를 떠날 수 있는 비행기에 딱 두 자리가 남았으니 예지추를 태우고 떠나라고 말해주죠. 아내를 버리고 옛 연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아내와 자신이 비행기에 탈 것인가, 성대기의 고민이 깊어집니다. 성대기의 고민을 아는 아내는 성대기에게 자신을 놓아두고 가라고 말해주죠. 그런 아내를 보니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더해져서 더욱 고민하게 되는 성대기입니다.
고민을 계속하던 성대기(주윤발)는 자신과 아내 대신 예지추와 그녀의 남편을 비행기에 태워 상해 밖으로 보냅니다. 주윤발이란 배우의 이미지에 걸맞는 신사다운 선택이라고 밖에 볼 수 없겠죠. 상해의 모든 것이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갔을 때 모재와 그가 이끄는 군벌 세력은 일본군과 손을 잡습니다. 성대기에게 실권을 넘겨주고 아편과 여색을 즐기며 은퇴 상태였던 홍수정(홍금보)은 일제와 손잡은 모재 일행의 괴롭힘 끝에 뇌출혈을 일으키고 그 충격으로 폐인이 되어버렸으며 홍수정의 아내는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된 끝에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상해를 빠져가지 못했던, 성대기의 아내는 모재의 첩이 되다시피 하여 성대기가 상해 암흑가에 일구었던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나버렸죠.
상해를 지배하게 된 일본군과 그런 일본군과 손을 잡은 모재 일당이지만 상해를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해선 상해에서 그동안 명성을 쌓아올린 성대기(주윤발)의 인망이 필요했었고 성대기로선 큰 형님인 홍수정과 홍수정의 아내, 그리고 자신의 아내의 신변 보호가 필요했습니다. 홍콩으로 몸을 피해있다가 상해로 다시 돌아온 성대기(주윤발)는 자신의 옛 세력을 모읍니다. 하지만 상황은 어려웠고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는 힘들었습니다.
상해탄 시리즈가 상해 암흑가의 갈등에 치중하고 있다면 이 영화 대상해는 일제, 그리고 일제에 협력한 친일 군벌들에게 저항하는 인물의 활약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퀜틴 타란티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래드 피트, 멜라니 로랑, 다이앤 크루거 등이 출연한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나치 핵심인물들이 가득 모인 극장에서 벌여지는 복수극으로 영화가 전개되듯 대상해는 경극 무대가 벌어지는 공연장에 일제 장교와 친일 군벌이 모여드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경우는 타란티노의 독특한 감성에 기반을 두고 가상의 역사를 다뤄서 나치를 향한 복수를 완성시켰지만 대상해는 그렇게까지 역사를 바꿔놓진 않습니다. 물론, 두월생의 실제 삶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실제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고 느끼겠지만 말이죠.
의리의 풍운아 성대기가 상해 땅을 다시 밟자 친일군벌의 군홧발 아래 숨죽이며 살았던 인물들이 투혼을 발휘하며 다시 모입니다. 예지추가 직접 출연한 경극이 진행되고 있던 대상해 클럽 공연장엔 상해를 점령한 일본군 장교들과 모재를 비롯한 친일 군인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경극과 항일 투사, 일본군을 다룬 작품이라면 임청하, 엽천문, 종초홍이 출연했던 도마단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해피엔딩으로 끝났던 도마단과 달리 이 영화 대상해는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내지 정무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비극적이고도 의혈감 넘치는 장면으로 영화를 끝맺습니다. 갑작스런 체중감량으로 인해 얼굴에 노화가 와버린 주윤발의 주름진 얼굴에 일견 당혹스럽긴 하지만 유위강 특유의 세련된 영상 속에 90년대 우리가 좋아했던 홍콩 느와르 특유의 비장미 혼란기의 상해를 배경으로 이어집니다. 주윤발로 대표되는 홍콩 느와르적인 요소와 상해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의 분위기, 여기에 비극적인 로맨스까지 두루 갖춘 이 영화, 홍콩영화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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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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