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코너

크눌프
- 작성일
- 2015.3.3
빌리 배스게이트
- 감독
- 로버트 벤튼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1992년 9월 26일
비디오대여점이 인기를 끌었던 90년대 초반, 집 근처 비디오대여점의 단골이었던 나의 눈에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한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바로 빌리 배스케이트!
미드 블루문 특급으로 얼굴을 알린 뒤 영화 다이하드의 성공으로 스타덤에 올랐던 배우 브루스 윌리스는 그 여세를 몰아 허드슨 호크, 마지막 보이스카웃, 죽어야 사는 여자,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컬러 오브 나이트, 12 몽키즈, 라스트맨 스탠딩, 펄프픽션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실베스타 스텔론이나 아놀드 왈제네거처럼 엄청난 근육질 몸을 가지지 않은 브루스 윌리스는 특유의 능청스러우면서도 시니컬한 말투로 인기를 모았지만 내심 액션 스타로서의 자기 한계를 느꼈었는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도 출연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했었다. 제인 마치와 함께 출연했던 컬러 오브 나이트와 SF 시간여행물인 12 몽키즈, 퀜틴 타란티노의 이름을 빛내준 펄프 픽션 같은 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영화적 이미지가 다이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 캐릭터 속에 갇히지 않도록 나름 발버둥을 쳤더랬다.
이렇게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 영역을 확장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가운데 그의 그런 노력이 제법 성공을 거둔 영화도 있지만 흥행에 실패하며 쓴소리를 듣거나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영화도 있다. 앤디 맥도웰과 함께 출연했던 허드슨 호크 같은 영화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았지만 그 즈음 브루스 윌리스의 팬들 사이에선 제법 재미있게 즐길 수 있던 영화였지 않나 싶다. 마지막 보이스카웃도 다이하드 시리즈만큼은 못하더라도 꽤 재미있게 봤던 영화라고 생각되고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요짐보를 리메이크한 라스트맨 스탠딩 역시도 단 돈 몇 백원의 비디오 대여료가 아깝지 않은 재미를 줬달까. 문제는 바로 그 빌리 배스케이트였다. 명배우 더스틴 호프만과 당시 상종가를 달리던 브루스 윌리스가 마피아 보스 더치 슐츠의 흥망사를 그린 영화에 출연했으니 액션스타 브루스 윌리스가 맡은 역할은 필시 상대 조직의 보스이거나 더치 슐츠를 잡으려는 형사, 이도저도 아니면 살인청부업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비디오테이프를 빌렸는데 아뿔사, 영화는 초반부터 브루스 윌리스에게 수모를 겪게 만든다. 한국영화 신세계 오프닝에서 이름모를 배우가 연기한 캐릭터가 겪은 것처럼 꽁꽁 묶인 채 죽음의 고통 앞에 직면하게 된다.
브루스 윌리스가 맡은 캐릭터니까 죽지 않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영화의 후반부에 불쑥 나타나 건재함을 과시하리라 믿었건만 그 캐릭터는 그것이 끝이었고 더치 슐츠의 희생자 중 한 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브루스 윌리스의 액션 연기를 보기 위해서 영화를 봤던 나같은 이들에겐 필시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일임이 분명했지만 그 아쉬움은 니콜 키드먼의 열연이 금세 달래주었다. 당시만 해도 존재감이 없던, 호주 출신 이방인 여배우에 불과했던 니콜 키드먼은 이 연기에서 전라 누드 연기를 과감하게 펼쳤고 그 놀라운 과감함 때문이었는지 미국 영화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더랬다. 프랑스 쪽 여배우들이라면 영화를 위해서라면 전라(全裸) 연기 정도는 쉽게 응하는 것이지만 할리우드 영화는 분위기가 달라 음모(陰毛) 노출은 기피하는 분위기였었는데 영화 속 니콜 키드먼은 대형 거울 앞에서 자신의 전라를 훌훌 드러낸다. 그리고는 우리네 영화 초록물고기에서 심혜진이 연기한 미애 캐릭터가 그러하듯 보스의 여인인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보스의 심복이자 조직의 막내인 빌리(로렌 딘)와 어울렸다.
빌리 앞에서 훌훌 옷을 벗어던진 그녀는 빌리와 함께 간 계곡에서도 전라 상태로 물놀이를 즐긴다. 이제 막 성인의 세계에 뛰어든 어린 빌리에겐, 보스인 더치 슐츠(더스틴 호프만)가 보여주는 폭력의 세계도 낯선 것이지만 알몸을 환히 보여주는 여인의 행동 역시 낯선 것이었으리라. 우리네 영화 초록물고기 속 막동이(한셕규)는 보스 배태곤(문성근)의 여인 미애(심혜진)와 순수하고도 은밀한 사랑을 나누지만 물 건너 미국의 남녀가 보여주는 사랑은 조금 더 노골적이고 육감적이었다. 모자이크 처리 등으로 인해 여인의 음모 구경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시의 한국에서 벌어지던 영화 검열 상황이었건만 지루한 스토리 전개에 검열관이 잠시 졸았었는지 90년대 초반에 출시된 이 영화의 비디오테이프에는 니콜 키드먼의 전라 연기가 빠짐없이 나와있었더랬다. 인터넷이 없던 90년대 초반, 소녀진경인지 옥녀심경인지 제목도 헷갈리는 어느 영화의 비디오테이프에 음모 노출이 살짝 있었는데 노출이 문제되어 이후 수정된 버전으로 재출시가 되었다나 뭐라나 아무튼 음모 노출이 있다는 풍문 하나에도 남학생들의 얄팍한 귀가 들썩거렸던 시절이었으니 빌리 배스케이트에서 모자이크 하나 없이 그대로 드러난 니콜 키드먼의 전라 연기는 우리네 영화 검열 역사상 큰 화제가 될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덜 알려져서인지 이 영화의 노출에 대해선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이 영화를 보기 전 영화 속 모습을 가장 기대했던 배우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브루스 윌리스였으나 그는 허무할 정도로 빨리 퇴장한다. 유덕화의 이름을 내세웠으나 유덕화는 카메오에 가까운 비중으로 출연하던 그 시절 홍콩영화를 보는듯한 씁쓸한 기분까지 들었다면 과언일까. 하지만 그런 씁쓸한 기분을 참고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해준 것은 고등학교 시절 영어 공부를 위해 봤던 영문 독해 교재에서 봤던 더치 슐츠란 캐릭터였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에서 방황하는 청춘 벤 역을 맡기도 했고 빠삐용에선 우유부단한 루이 역을 맡았으며 레인맨에선 지적장애인, 그리고 투씨에서 여장을 하기도 했던 더스틴 호프만은, 남성미 넘치는 마초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지 이 영화 빌리 베스케이트에선 마피아 보스 중에서도 난폭한 것으로 악명을 떨쳤던 더치 슐츠 역할을 맡았다. 리딩튜터였었나 리더스뱅크였었나 내 중고등학생 시절 자습 시간에 공부했던 영문독해교재에선 더치 슐츠의 별명이 the Butcher(도살자)였었다고 설명을 했던 것 같은데 더치 슐츠란 인물이 그만큼 사람 죽이는데 망설임이 없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한국의 어느 재기발랄(?)한 영화 평론가(?)가 할리우드 어느 화장실에서 더스틴 호프만을 만났는데 옆에서 소변을 보는 더스틴 호프만을 보곤 '생각보다 작지 않다'고 영어로 농짓거리를 했더니 (생각보다 작지 않다였나 생각보다 크다였나 둘 중 어느 것인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일면식도 없는 동양인의 뜬금없는 발언을 들은) 더스틴 호프만이 버럭 화를 내었다나 뭐라나 하는 일화도, 어느 케이블 방송에서 봤던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하시는 이가 있는가 모르겠다. 각설하고, 키 작은 배우이기 때문에 겪는 신체적 콤플렉스를 더치 슐츠라는 마초적인 캐릭터를 맡아서 벗어나보고자 했던 모양인데 그런 그의 생각은 영화의 흥행 실패로 물거품이 되고 만 셈이다. 더스틴 호프만이, 잭 니콜슨 같이 인상 무서운 배우거나 톰 크루즈 같은 핫한 스타배우라면 생각보다 크니 작니 하는 농짓거리를 함부로 하긴 어려웠겠지만 더스틴 호프만이란 배우의 이미지가 왠지 좀 순둥이(?) 같은 분위기가 있다보니 160cm대의 작은 키와 소변 보는 거시기를 소재로 '생각보다 작지 않다'는 농담을 걸어보는 일도 겪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그전까지의 더스틴 호프만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마피아 보스 더치 슐츠 역은 그에게 맞지 않는 큰 옷 같다고나 할까. 잔인하고 다혈질적인 보스 더치 슐츠(더스틴 호프만)는 시대의 흐름 속에 몰락하고 말았고 그런 그의 곁에 있던 소년 빌리 배스케이트(로렌 딘)는 조직 보스의 여인(니콜 키드먼)과 사랑을 나누는 위험한 사랑, 그리고 조직의 보스의 행동을 지켜보며 겪는 여러가지 일들 속에 조직원으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더치 슐츠의 곁을 떠난다. 조직 보스의 여인을 사랑하게 된 풋내기 조직원의 이야기라는 점에선 우리네 영화 초록물고기와 비슷하지만 그 결말은 사뭇 다른 것이다. 초록물고기 속 막동이(한석규)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주인공 빌리가 맞이했다면 좀 덜 지루한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주인공 빌리 역을 맡았던 로렌 딘은 브루스 윌리스와 더스틴 호프만이라는 좋은 배우들이 출연한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 역을 맡았음에도 배우로서 큰 성장을 하지 못하고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마 초록물고기의 막동이 역을 맡은 한석규처럼 인상 깊은 명연기를 펼쳤다면 그의 배우 인생도 달라졌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 영화 속에서 기존의 자신의 이미지와 다른, 마초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했던 더스틴 호프만은 이 영화 출연 직후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후크에서 후크 선장을 맡아 열연을 하더니 다음 작품 리틀 빅 히어로란 영화에서 작지만 큰 캐릭터를 연기한다. 빌리 배스케이트에서 전라 열연을 펼쳤던 키 큰 호주 여배우 니콜 키드먼은 이 영화의 개봉을 전후해서 톰 크루즈와 영화 폭풍의 질주, 파 앤 어웨이를 같이 한 뒤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니콜과 톰의 결혼 생활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에 함께 출연할 때까지 이어진다. 톰 크루즈와의 결혼으로 인해 니콜 키드먼도 매스컴의 화제가 되긴 했지만, 호주 여배우 니콜 키드먼이 할리우드에서 연기파로 인정받게 되는데는 이 영화 빌리 베스케이트에서의 몸 사리지 않는 과감한 열연이 바탕이 되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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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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