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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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인기로 인해 80년대에 대한 향수가 짙어진 요즘, 80년대 후반 그때 그 무렵의 극장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90년대 후반 정확히 따지면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 이전까지만 해도 홍콩 영화가 한국의 극장가를 꽉 쥐고 있었죠. 한국 영화는 방화라는 이름으로 구수한 이름으로 영화팬들에게 천대받던 시절이었고 영화팬들의 선택은 촌스런 방화가 아닌 할리우드 영화나 콩 영화가 되곤 했더랬습니다. 물론 특정 부위로의 혈액순환(?) 개선을 위한 용도에서였는지 애마부인, 산딸기, 뽕, 무릎과 무릎 사이 같은 한국 영화를 찾는 관객들도 있긴 했지만 전체 영화 관객의 비율로 따져볼 때 그리 많진 않았겠죠.


 


한석규, 강제규, 강우석, 차승재 등 한국영화를 상업적 성공으로 이끈 굵직굵직한 영화계 인물들이 등장하고 영화를 통해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믿게 된 대자본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드는 90년대 후반 이르러서야 방화라는 이름의 딱지를 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자주 쓰이는 단어가 아닌 충무로란 용어 역시 그때 그 시절 주먹구구식으로 알음알음 인맥과 지연으로 운영되던 영화계 풍토가 만든 이름이겠죠. 영화계를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이 최근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승만, 박정희 시절을 보낸 원로 영화인들과, 전두환 정권 때의 3S 정책으로 이런저런 영화를 만들었던 상업영화 감독들, 대학 시절 노동자와 농민, 전교조를 위한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영화 연출을 배운 386 영화인들, 그것이 좌이든 우이든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권위에 대한 불만을 맘껏 표현하며 자란 요즘의 영화인들이 한 곳에 있으니 세대별 트러블이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88년은 어떤 영화가 등장을 했었냐고 하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다이하드 시리즈의 1편이 바로 그 해 겨울에 개봉했던 영화였답니다. 다이하드 1,2편은 한동안 나홀로 집에 더불어 크리스마스 시즌을 대표하는 영화로 꼽히기도 햇었는데 요즘은 러브 액츄얼리 등의 달달한 영화에 밀리고 말았죠. 빌딩과 공항이란 제한된 공간과 크리스마스 시즌, 가족애를 소재로 다뤘던 다이하드 시리즈 역시 속편이 거듭되면서 1편과 2편이 가졌던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이젠 스케일이 너무 커지다 못해 숫제 다른 영화 같은 느낌이 들게 되었답니다. 아무튼 이때의 브루스 윌리스 한국 방영 당시 제목이 블루문 특급이란 미드의 주인공이었다가 다이하드 시리즈가 크게 성공하면서 할리우드 톱스타가 되었죠.


 


이 시절의 할리우드 영화로는, 브루스 윌리스를 깜짝스타로 만든 다이하드 1편과 더불어 톰 크루즈의 영화들을 소개해야 될 것 같아요. 브렛팩 군단으로 불리는 일군(一群)의 젊은 배우들 중 한 명이던 톰 크루즈 1986년 토니 스콧 감독이 연출한 영화 탑 건의 주인공을 맡음으로서 할리우드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흥행배우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연기파란 명예도 같이 얻고 싶었는지 이후 톰 크루즈의 영화적 행보는 흥행과 연기력 둘 다 고려하곤 했죠. 대배우와 같이 작업을 하거나 명감독과 같이 영화를 찍거나 하면서 자신의 스타성을 굳히는데 주력했고 그 결과 탑 건(1986), 레인맨(1988), 칵테일, 7월 4일생, 폭풍의 질주, 파 앤 더웨이, 어 퓨 굿맨, 야망의 함정,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미션 임파서블, 제리 맥과이어까지 쭉쭉 달리게 되죠.


 


이후에 출연한 매그놀리아아이즈 와이드 셧, 바닐라 스카이의 경우 솔직히 흥행적인 면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만들어 보고 싶어서 만든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미션 임파서블 2의 경우도 자기가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영화 감독을 데려다 놓고 자기 식으로 미션 임파서블을 변조해놓은 영화였었죠. 이후엔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영화도 만들어보고 악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독일 장교 역할을 맡아보기도 합니다. 막역한 관계인 카메론 디아즈와 함께 첩보 로맨스물 나잇 앤 데이 출연하거나 록스타로 열연하는 락 오브 에이지에 출연하기도 했었죠. 싸이언톨로지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곤 하는 톰 크루즈 출연 SF 영화들도 이즈음부터 많아졌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톰 크루즈표 흥행영화들의 시작점은 바로 이 80년대 후반이었고 스크린, 로드쇼 등의 영화잡지를 통해 젊고 핫한 배우 톰 크루즈에 관한 얘기들이 영화팬들 사이에 널리 오갔을 것입니다. 지금이야 영화잡지로 씨네21을 꼽거나 폐간된 월간 키노를 꼽곤 하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만 해도 스크린로드쇼가 영화팬들의 대세 영화잡지였었답니다.


 


예전에는 정말 최고의 흥행 보증수표였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구설수에 오른 스타배우가 톰 크루즈 말고도 또 한 명 있죠. 바로 홍콩의 톱스타 성룡입니다. 70년대 후반 취권사형도수 등의 성공으로 이소룡의 뒤를 잇는 액션스타로 자리잡은 성룡은 그 자신의 영화적 재능을 한껏 발휘하여 프로젝트 A, 폴리스 스토리, 용형호제 등의 영화를 내놓습니다. 1988년은 폴리스 스토리 2편인 구룡의 눈 개봉했던 해로 이즈음의 성룡 영화는 정말 최고였었죠. '명절은 성룡 영화와 함께!'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성룡 영화의 인기는 높았었고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명절에 친척들과 TV 앞에 모여 성룡 영화를 보거나 친구들과 성룡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갔던 추억이 있답니다. 


 


 



 



 



 


 


성룡 영화의 경우 유쾌하고 호쾌한 맛에 보는 영화이지만 이와 다르게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오는 영화들도 그때 그 무렵에 있었습니다. 조디 포스터가 출연한 피고인 같은 경우가 그런 영화겠죠. 벅시 말론, 택시 드라이버 등으로 영화적 재능을 인정받았던 여배우 조디 포스터 영화 피고인에서의 열연을 통해 또 한 번 주목받게 됩니다. 피고인과 비슷한 느낌의 한국영화라면 어쩌면 원미경 주연의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1990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두 청년에게 성폭행당하던 여인이 남자의 혀를 깨물어 상처를 입혔다가 고소를 당해 구속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녀에게 가해지는 불합리한 조건들과 그것을 법정에서 극복해나가려는 여주인공의 노력은 7,80년대에서 90년대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여성인권을 보는 시각의 변화를 잘 나타낸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5공화국 시절 화끈하게 열어젖힌 3S 정책 아래 변강쇠, 사노, 반노 등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여배우 원미경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시작된 새로운 시대에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1988)이란 영화로 연기변신을 시도합니다. 본인이 보통 사람임을 강조하며 자신을 코미디 소재로 사용해도 줬다고 했다던 노태우 정권 때는 정치풍자 코미디가 유난히 큰인기를 끌었었죠. 옹녀로 대표되는 캐릭터로 80년대 남정네들의 혈액순환(?)을 보다 가열차게 도왔던 여배우 원미경은 이사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회장님(김형곤)을 쩔쩔매게 만드는 마나님 역할을 맡아 독특한 존재감을 발휘했었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그로 인해 촉발된 629 선언 이후 다소나마 표현의 자유가 열린 1988년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등장하게 된 해였었는데 3S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듯한 영화 매춘, 뽕2, 가루지기, 맷돌, 이조춘화도, 떡, 보릿고개, 합궁, 파리애마 등은 물론 야하면서도 독특한 정치풍자 정신을 갖고 있었던 사방지와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 박철수 감독의 접시꽃 당신 같은 영화들이 화제를 만들기도 했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이름하여 성소재림의 흥행 실패와 그 과정에서 불거진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인해 장선우 감독의 이름이 마치 충무로의 재앙이었던 것처럼 불리곤 있지만 사실 장선우 감독의 영화적 리즈 시절은 굉장히 화려했었답니다.


 


영화 성공시대를 통해 천재적인 재능을 선보인 장선우 감독이 충무로에 있었다면, 바다 건너 홍콩영화계에는 왕가위 감독이 있었으니, 한국에는 열혈남아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그의 첫번째 연출작 몽콕하문(旺角卡門이) 개봉된 해가 바로 1988년입니다. 한국에서는 뒤늦게 해를 넘겨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홍콩에서는 그 전 해인 1988년에 개봉했었다고 하네요. 1988년에 개봉된 왕가위의  첫 작품 열혈남아의 경우 제작자 등광영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작품으로, 따지고 보면 이후 만들어진 왕가위의 영화들보다 등광영이 제작자로 참여했거나 직접 출연했던 홍콩 느와르 영화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90년대 홍콩 영화계의 기린아 왕가위의 영화적 명성은 이후 1990년에 개봉된, 일명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에서 시작됩니다. 흥행참패의 고배를 마신 아비정전 이후 홍콩영화계의 거물 등광영과 결별하고 제작자 겸 감독이자 친구인 유진위와 손을 잡고 동사서독을 만들다가 제작이 지연되어 고생하던 중 중경삼림(왕가위 연출)과 동성서취(유진위 연출)가 탄생하게 되었죠. 중경삼림, 타락천사, 동사서독,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2046, 일대종사 등으로 이어지는 왕가위 영화들은, 홍콩영화에 대한 인기가 예전과 현저히 달라진 지금에도 영화팬들 사이에 종종 회자되곤 합니다. 최진실, 장동건, 김민종, 이경영 진희경, 차승원 등의 배우를 데랴다가 왕가위 작품 비슷한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다가 국내 영화팬들과 평론가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모 한국영화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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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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