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심한 리뷰

크눌프
- 작성일
- 2016.6.26
모빌 슈트 건담 디 오리진 18
- 글쓴이
- 야다테 하지메,토미노 요시유키 원저/야스히코 요시카즈 글,그림
대원

8페이지까지 컬러로 인쇄된 그러나 일본 원서에서는 적어도 20 페이지 이상 컬러 페이지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책은 텍사스 콜로니에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라라아와 아무로, 샤아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온군의 뉴타입 샤리아 블과 뉴타입의 세계를 추구하는 샤아 아즈나블, 두 사람의 대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텍사스 콜로니에 도착한 라라아 슨과 샤아 아즈나블은 샤리아 블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지온군의 장교인 샤리아 블은 뉴타입으로서의 능력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출생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지온군에 잠입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샤아 아즈나블과 달리 지온공국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군인이었습니다. 뉴타입의 능력을 실험하기 위한 전투에서 샤리아 블은 연방군의 양산형 모빌슈트들을 상대로 용맹히 싸우지만 아무로 레이가 탑승한 건담의 위력 앞에 목숨을 잃고 맙니다.
새로운 인류 즉 뉴타입이면서 참된 군인이기도 했던 샤리아 블은, 그 자신을 뉴타입 테스트용 전투에 몰아넣은 상관(上官) 기렌 자비를 떠올리며 '하지만, 각하! 어째서 저에게 이런 임무를 부여한 것입니까! 이런 실험동물 같은 짓을 안 했어도 저 샤리아 블은 충분히 공국(公國)에 기여했을 텐데!'라며 절규하며 죽어갑니다. 스스로의 손으로, 헬멧에 연결되어 있던 케이블을 뽑으며 말이죠. 그렇게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샤아 아즈나블은 지온군의 샤리아 블이 일 대 다수의 전투 끝에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신형 모빌슈트 겔구그에 탑승한 샤아 아즈나블은, 샤리아 블의 전투를 지켜보며 '샤리아 블, 결국 너도 그 정도 밖에 안되었나'라는 말을 남깁니다. 이 장면에서의 연출은, 샤리아 블이 원망한 기렌 자비의 위치에 이 샤아 아즈나블이랑 인물을 오버랩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샤리아 블과의 혈전(血戰)이 끝난 뒤 지친 아무로 레이에게 지온군의 신형 모빌슈트 겔구그에 탑승한 샤아 아즈나블이 기습을 가합니다. 지쳐 있는 상태에서 습격을 당한 아무로 레이, 그리하여 급기야 건담의 한쪽 팔이 손상당하게 되었죠.
샤아 아즈나블은 신형 모빌슈트 겔구그를 이용해 거세게 건담을 몰아붙입니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 라라아가 끼어들면서 전투는 중단 됩니다. 훗날의 비극적인 숙명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전투불능 상태에 가까워진 건담을 내버려두고 샤아는 비무장 상태로 위험한 지역에 나타난 라라아 슨을 챙기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전장(戰場)을 벗어난 샤아 아즈나블은 작별을 고해야 할 과거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지온군 군영(軍營)에서 사라집니다. 미국 서부의 텍사스가 연상되는, 소떼와 말떼가 등장하는 가운데 샤아는 말 한 마리의 등 위에 올라타서 과거 속 저택으로 향합니다.
앞 부분의 8 페이지를 제외하곤, 일본 원서에선 컬러 페이지였을 분량이 흑백의 페이지로 전환되다보니 샤아가 말 위에 올라 저택으로 향하는 과정에서의 그림들이 생동감을 잃고 만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러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 책은 후반부의 극적인 사건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연방군의 전함 화이트베이스에서 이탈한 세이라 마스와 지온군의 군영(軍營)을 벗어난 샤아 아즈나블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죠.
세이라 마스의 발걸음이 머문 곳은 에드와우 마스의 묘지가 있는 장소입니다. 지온군의 붉은 혜성이자 우주세기 건담 시리즈의 영원한 안티히어로 샤아 아즈나블의 본명은 카스발 렘 다이쿤이었으며 격변의 혼란기 속에 에드와우 마스란 이름으로 생활을 했었다는 것을 건담 시리즈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르네 클레망 감독이 연출했던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 속 리플리(알랭 드롱)처럼 이후 에드와우 마스는 샤아 아즈나블이란 인물로 자신을 위장하며 지냈던 것이죠.
텍사스 콜로니 거주민의 대표 로저 아즈나블과 그의 아들 샤아 아즈나블은 에드와우 마스와 세이라 마스 남매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에드와우 마스, 즉 카스발 렘 다이쿤은 그 자신의 안녕을 위해 이 친절한 가족을 위험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바로 그 아즈나블 가족의 저택에 도착한 세이라 마스는 그 추억 속 장소에서 오빠인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카스발 렘 다이쿤)을 만나게 됩니다. 대의(大義)를 위해, 새로운 세계를 위해 행동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샤아, 하지만 동생 세이라 마스는, 자비 가문을 위한 복수를 하겠다던 오빠가 자비 가문의 군인이 되어 나타난 것을 따져 묻습니다.
세이라 마스는 말합니다. (카스발, 즉 지금의 샤아 아즈나블은) 증오의 대상을 자비 가(家), 연방, 올드타입으로 바꾸고 있을 뿐, (그 모든 대의는) 독선적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이죠. 뉴타입의 세상을 만들겠노라는 샤아 아즈나블에게 세이라 마스는 따져 묻습니다. 만약 뉴타입이 존재한다고 해도 모두가 오빠(샤아 아즈나블)와 똑같이 생각할까요? 라고 샤아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앞서 등장했던 뉴타입 파일럿 샤리아 블이 처절한 싸움 끝에 죽어갈 때 멀리서 구경만 했던 야심가 샤아 아즈나블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이 만화의 독자들은 샤아가 외치는 뉴타입의 세상이 그야말로 독선적인 궤변임을 새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친동생 세이라 마스와의 이야기 도중에 건담의 파일럿 아무로 레이의 뉴타입으로서의 존재감을 깨닫게 된 샤아, 그렇게 친동생을 만난 카스발/에드와우 마스/샤아는 그 자신은 과거를 버린 남자이며 자신의 이름은 샤아 아즈나블이란 말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아무로 레이인가 하는 파일럿에게 전해라. 뉴타입이 뉴타입으로 태어나는 길을 내가 만들겠다고! 라는 말을 남기고 샤아는 말에 올라탄 상태로 사라집니다. 샤아가 사라진 뒤 혼자 남은 세이라 마스는 페허가 된 저택 그리고 에드와우 마스의 묘비를 뒤로 한 채 눈물을 흘리게 되죠.
아니 혼자는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남매의 대화는 세이라 마스의 뒤를 쫒아온 카이 시덴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세이라 마스가 지구연방군의 적(敵)인 지온공국의 원주(原主) 지온 줌 다이쿤의 딸 아르테시아 솜 다이쿤이며 그 오빠가 붉은 혜성 샤아 아즈나블(카스발 렘 다이쿤)이라는 사실이, 화이트베이스의 함장 브라이트 노아의 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세이라 마스는 독방에 구금되고, 역시나 컬러로 인쇄되어 있어야만 했던 부분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어두운 톤의 흑백 인쇄 속에 디 오리진 18편은 끝나게 됩니다.
이번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온의 뉴타입 파일럿 샤리아 블의 존재감입니다. 종종 생략되거나 아주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샤리아 블 캐릭터는 이번 만화에서는 꽤 젊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젊은 모습은 아니고 젊은 시절 지온 줌 다이쿤의 모습에 가깝게 그려진다고나 할까요. 지오니즘의 창시자 지온 줌 다이쿤 같기도 한 얼굴로 람바 랄처럼 전투를 치르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에선 샤아가 가지지 못했던 근원적이고도 순수한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에서 태어난 이들의 자유로운 권리, 즉 스페이스노이드들의 해방을 꿈꿨던 혁명가 지온 줌 다이쿤의 지오니즘은 자비 가문의 야심가들에 의해 변질되어 갔습니다. 또한 지온군 최초의 뉴타입 파일럿 샤리아 블이 생각했던 순수했던 이상(理想)은 기렌 자비, 그리고 샤아 아즈나블 같은 야심가들에 의해 이용당한 끝에 실험용 모르모트처럼 버려졌습니다.
샤리아 블 최후의 전투를 통해 기렌 자비와 샤아 아즈나블의 행태를 오버랩시키며 야심가의 위험함을 그려낸 야스히코 요시카즈 화백은 만화의 후반부, 여성 캐릭터 세이라 마스의 입을 통해 이러한 야심가들의 행보를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왕도의 개, 하늘의 혈맥, 무지갯빛 트로츠키 등 역사만화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야스히코 요시카즈 화백다운 일갈(一喝)이 아닌가 싶습니다.

- 좋아요
- 6
- 댓글
- 2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