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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눌프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6.8.19

1994년 전후로는 이렇게 신문의 한쪽 면을 이용해서 영화 광고가 게재되곤 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1994년 동아일보를 검색해보니 토요일에 발매되는 신문 지상(紙上)에 영화 홍보포스터가 배치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이라면 목요일이나 금요일 지면에 해당 신문 문화부 기자의 글솜씨로, 어떤 영화가 요즘 화제이고 관객이 볼만한 영화는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주는 영화관련 칼럼이 신문에 실리는 방식이 아닐까 싶은데 90년대의 신문은 신문 한쪽 면을 가득 할애해서, 무슨 극장에서 어떤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특정 극장이 특정 영화를 상영하는 방식이라서 요즘의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다른 풍경이었죠. 토요일 오전까지 일하고 점심 이후 퇴근해서 영화를 보라는 계산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요즘은 주로 목요일에 신작 개봉날짜가 맞춰지지만 90년대에는 토요일이 신작 개봉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봅니다.

성룡 주연의 영화들이나 주윤발 주연의 느와르물들, 유덕화 주연의 카지노무비의 인기도 지나가고 이즈음은 이연걸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어요. 영웅본색과 천녀유혼으로 한국의 영화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장국영은 이 즈음에는 첸 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에 출연해서 진정한 배우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퍼펙트 월드는 당시 영화팬들 사이에서 제법 큰 인기를 모았었습니다. 언터처블, 늑대와 춤을, 의적 로빈후드, JFK, 보디가드, 퍼펙트 월드까지는 케빈 코스트너의 필모그래피가 참 대단했었는데 워터월드와 포스트맨 두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톱스타 대열에서 밀려나고 말았었죠. 케빈 코스트너에 이어 톱스타 자리에 올라간 할리우드 대표배우는 톰 행크스가 아닐까 싶어요. 빅으로 한국의 영화팬들에게도 얼굴을 알렸던 톰 행크스는 필라델피아,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포레스트 검프, 아폴로 13, 유브 갓 메일,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린 마일, 캐스트어웨이, 로드 투 퍼디션, 터미널로 대표작품을 이어갔죠. 로맨틱 코미디에서 전쟁영화, 조난영화, 갱스터영화까지 톰 행크스의 필모그래피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본인이 메가폰을 잡고 연출을 해야 직성에 풀렸던 케빈 코스트너와 달리 톰 행크스는 좋은 감독, 좋은 제작자와 협업을 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죠.
패왕별희와 결혼피로연은 동성애를 소재로 다룬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들이 한국 극장에서 개봉되고 인기를 끌면서 동성애에 대한 시선들도 조금씩 바뀌어가게 됩니다. 유덕화 얼굴이 크게 인쇄된 영화 포스터는 천장지구란 작품으로, 천약유정이 원제였던 영화가 한국 극장에 내걸리는 과정에서 천장지구로 이름이 바껴져서 걸리는 통에 뒤늦게 만들어진 진짜 천장지구가 속 천장지구란 이름을 내걸고 상영하게 되었다나요. 그래서 나는 도끼부인과 결혼했다는 비디오매니아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줬던 영화이기도 하고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로빈 윌리엄스의 여장연기가 큰 인기를 끌었었죠. 스트라이킹 디스턴스는 다이하드 1,2편으로 톱스타가 되었던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액션영화인데 이 즈음의 브루스 윌리스는 허드슨 호크를 비롯한 출연작들의 흥행 참패로 상승세가 꺾였었죠. 이후 펄프픽션, 컬러 오브 나이트,12 몽키즈, 식스센스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변신을 시도합니다.

이연걸 주연의 의천도룡기, 소림오조와 성룡의 취권 2가 눈에 띄네요. 이 시절의 이연걸은 황비홍 시리즈는 물론이요 태극권, 방세옥 등의 히트작에 출연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작품을 내놓다가 홍콩이 반환되기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리썰웨폰 4 등의 영화에 출연했었죠. 성룡은 자신의 출세작 취권을 중년이 되어서 다시 한 번 만들었는데 그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했던 저는 재미없게 봤었답니다. (성룡 얼굴의 주름살이 눈에 확 띄더라구요.) 안성기 박중훈 콤비의 성공작 중 하나인 투캅스 시리즈 역시 1994년에 등장했나 봅니다. 경찰이란 존재를 재미있게 비틀어서 만들었던 영화였는데 문민정부이기에 공권력을 보다 자유롭게 풍자할 수 있었겠죠. 기득권은 부패한 집단으로 묘사하고 공권력은 무능한 존재로 그려내는 강우석식 설정은 이후 그의 영화적 사제 김상진 감독의 작품에서도 이어집니다.
서극 감독의 청사의 경우 장만옥과 왕조현이란 두 여배우가 맡은 두 캐릭터를 일종의 레즈비언적 동지애로 묶어 이야기를 전개해나갑니다. 남자들만의 우정, 의리, 갈등을 중시하는 오우삼 감독과 달리 서극 감독은 여성적인 캐릭터도 중시하는, 더 나아가 동성애적인 면모마저 드러내는 영화적 특징이 있었습니다. 서극 사단이 만든 영화 동방불패에서도 동방불패를 사모하는 시녀가 있고, 임영영(관지림)에게는 주종관계를 뛰어넘는 애정을 보이는 남봉황(원결영)이 등장하니다. 이후 만들어진 동방불패2 풍운재기에선 여성화가 된 동방불패(임청하)와 그런 동방불패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설화(왕조현)의 만남을 다루고 있었죠.

90년대의 정서는 80년대의 그것보다 훨씬 개방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오락영화 대신에 카프카, 그 섬에 가고 싶다, 세 가지 색 블루 같은 영화들이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은 최진실씨가 출연했던 영화였는데 마누라 죽이기의 흥행에 비해 흥행성적은 주춤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남녀 주인공이었던 최진실씨, 임성민씨 모두 고인이 되었네요. 가둔 여자와 갇힌 남자라는 영화 카피가 인상적입니다.
펠리칸 브리프는 존 그리샴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으로 이 즈음에 존 그리샴 소설 원작의 법조계 영화와 로빈 쿡 소설 원작의 의료계 영화가 인기를 끌었었죠. 영화 쥬라기 공원의 원작 소설을 써냈던 마이클 크라이튼 역시도 이 즈음의 할리우드 영화계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작가였답니다. 경제대국 일본이 냉전 이후의 미국을 위협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이 즈음에 유행이기도 했었죠. 마이클 클라이튼 원작 소설을 필립 카우프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스크린에 옮겨낸 떠오르는 태양 역시 이 즈음의 영화였습니다. 다이하드 1편의 배경인 나카토미 빌딩 역시 경제대국 일본의 등장을 견제하는 미국인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는 영화적 장치였었죠.

하몽하몽 같은 영화는 꽤 에로틱한 영화였죠.
무릎과 무릎 사이, 산딸기, 고금소총, 매춘, 원 플러스 식스, 보디히트, 원초적 본능, 슬리버 같은 영화들의 포스터가 신문에 실리면 사춘기 남학생들은 혹시 뭐(?)라도 보일까봐 고개를 숙이고 연신 영화 포스터 구석구석을 들여다보곤 했었죠.

배트맨 역으로 유명했던 마이클 키튼이 출연한 마이 라이프도 좋은 영화이지만 마이 라이프와 동시기에 상영하는 경쟁작들이 정말 대단하네요. 라이온킹, 스피드,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같은 작품은 요즘 재개봉해도 관객들이 찾아볼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백사의 전설, 모리스, 쇼팽의 연인, 비터 문 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휴 그랜트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센스 앤 센서빌리티, 나인 먼스 등에 출연하며 로맨틱 코미디의 왕좌에 오릅니다. 문제는 요 시기에 미국에 갔다가 매춘부와 잠자리를 한 것이 경찰에 적발되어 망신을 사게 되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부쩍 성적(性的) 구설수에 오르는 한류스타들의 모습이 몇몇 생각나네요. 미녀스타 엘리자베스 헐리와 연인관계인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기에 대중들의 충격은 더 컸었죠. 하지만 이후에도 노팅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어바웃 어 보이,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같은 영화를 통해 흔들림 없는 인기를 누렸답니다.
압솔롬 탈출이란 영화는 남자배우들만 출연하는 영화로도 알려져 있더라구요, 뒤늦게 비디오테이프로 봤던 기억이 나는데 영화 볼 때는 남자들만 나온다는 것은 모르고 봤었답니다. 1999년을 몇 년 앞두고 있는 90년대 중반이라서 노스트라다무스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도 꽤 인기를 누렸었죠. 한국은 1999년 세계종말에 앞서 1997년 외환위기라는 지옥을 먼저 맞보게 됩니다. 1992년 휴거가 발생한다, 1999년 노스타다무스의 예언대로 세계가 종말을 맞이한다 등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지곤 했었는데 진짜 끔찍했던 것은 1997년 외환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TV 켜고 뉴스만 틀면 기업 하나씩 부도가 나는데 그것이야말로 국가경제적 휴거요, 한국의 종말 같았습니다.

키아누 리브스를 액션스타로 자리잡게 했던 스피드와 휴 그랜트 주연의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그리고 존 굿맨이 출연했던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다저스 몽키, 쉰들러 리스트, 브링크 등이 보이네요. 고인돌은 그 시절 가정용 PC를 구입하는 이들에게 마치 번들 프로그램처럼 깔아주곤 하던 게임을 통해 익숙해져 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페르시아 왕자, 둠, 버츄얼 파이터 등의 게임들은 영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임 초보인 저도 고인돌 게임만큼은 종종 즐기곤 했었죠.
각각 포스터에 적혀있는 극장으로 찾아가야지 다른 극장에 찾아가면 해당 영화를 볼 수 없는 시스템이었죠. 유명 극장의 개봉작이면 해당 영화의 신뢰도가 부쩍 올라가곤 했었답니다. 비디오대여점 등의 2차 시장에서도 OO 극장 개봉작이라는 것을 내세워 홍보하기도 했었구요. 부산의 경우 제대로 된 극장 개봉작을 보려면 부산극장, 대영극장 등이 있는 남포동까지 가야만 했었답니다. 운좋으면 서면 은아극장에 볼만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기도 했었구요. 온천장 근처 온천극장, 스파극장 등은 틈새 극장이라고 해야할지 남포동의 메이저 극장보다 약간 늦게 영화를 상영했던 것 같아요. 이들보다 수준 낮은 극장이 동성극장이라고 2편 동시개봉 극장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구미호는 상영을 앞두고 이런 홍보를 하기도 했었네요.
미녀배우 고소영씨가 구미호 역을 맡았었는데 지금도 연기파 배우로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당시는 신인이던 시절이라 연기가 엄청 뻣뻣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함께 출연했던 정우성씨도 당시 신인배우라서 남녀 주인공 둘 다 뻣뻣한 발연기를 펼쳤었죠.

한국에 정우성, 고소영의 구미호가 있다면 할리우드에는 잭 니콜슨과 미셀 파이퍼가 출연하는 울프가 있는 셈이랄까요. 아이 러브 트러블과 베이비 데이 아웃은 극장 개봉작이 아닌 비디오테이프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었답니다. 아이 러브 트러블은 닉 놀테와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영화로 제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물론 비디오테이프로 말이죠. 최민수씨가 열연을 펼쳤던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도 이 시기 참 볼만한 한국영화로 꼽을 수 있답니다.

아놀드 형님의 트루 라이즈와 짐 캐리의 마스크가 맞붙는 가운데 이연걸 주연의 보디가드가 등장했습니다. 이 즈음은 이연걸 출연영화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었죠. 이후 왕가위 감독의 히트작 중경삼림과 김용 소설을 왕가위 스타일로 그려낸 동사서독, 중경삼림의 속편이라고도 볼 수 있는 타락천사가 한국 극장가에 상륙하면서 왕가위 열풍이 불게 됩니다.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들도 홍콩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했었구요.

한국영화 중에서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게임의 법칙이 눈에 띄는군요.
중화권 영화 중에서는 패왕별희, 할리우드 영화 중에서는 포레스트 검프, 컬러 오브 나이트가 눈에 띕니다. 브루스 윌리스와 제인 마치가 출연했던 에로틱 스릴러 컬러 오브 나이트는 OST 주제곡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죠.

97년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홍콩영화계에선 예전 같은 초대형 흥행작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대륙의 첸 카이거가 만든 패왕별희, 대륙 중국의 여배우 공리가 출연한 작품들이 속속 우리에게 알려지는 가운데 대만의 이안 감독이 음식남녀란 작품으로 영화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이안 감독이 지금과 같은 위치의 세계적인 감독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던 것 같아요.
한국영화계는 거액을 들여서 성인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내놓았습니다. 이병헌, 김혜수 같은 유명배우들에게 더빙을 맡겨 홍보를 하기도 했었는데 흥행은 처참했답니다. 그 작품의 이름이 바로 블루시걸이에요. 블루시걸 외에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 아마게돈(이현세 원작), 철인사천왕 등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죠.

여러가지 영화 중에서 기존의 영화문법에 변혁을 가져왔던 퀜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포스터가 눈에 띈달까요. 프랑스왕정사를 다룬 여왕마고와 프랑스대혁명. 대만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음식남녀,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해적 등 이 시기의 영화들은 참 다양한 국적, 다양한 소재로 관객들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해적은 소설이 먼저 나왔고 소설을 발판삼아 영화가 만들어졌었는데 흥행에 실패하고 잊혀진 영화가 되었습니다. 캐러비안의 해적 같은 영화가 아니라 항구를 중심으로 하층민 청년의 생존 투쟁과 조폭과의 갈등 등을 그려낸 작품이었죠.

마스크에 이어 짐 캐리 주연의 덤 앤 더머가 등장했습니다. 최진실 박중훈 최종원 주연의 마누라 죽이기 역시도 웃음을 관객들에게 줬던 영화였었죠. 데미지의 경우 제레미 아이언스의 중후한 매력 때문에 영화를 반복해서 관람한 여성 관객들이 있기도 했었죠. 요즘 인터넷 용어로 말하자면 꽃중년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영화입니다. 젊은 남자의 경우 배창호 감독이 연출했던 영화인데 이정재의 이미지와 참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꼬방동네 사람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황진이, 안녕하세요 하나님,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의 작품으로 영화적 명성을 알렸던 배창호 감독이지만 90년대 들어서는 흥행에 있어 다소 주춤하게 됩니다.
안성기, 장미희, 이미숙, 강수연, 황신혜 등 검증된 배우들과 주로 작업했던 배창호 감독은 신인 여배우 이아로를 과감히 캐스팅해서 천국의 계단이란 영화를 만들어 1991년에 개봉시켰고 X새대 탤런트 이정재를 캐스팅해서 영화 젊은 남자(1994)를 만들었습니다. 80년대 충무로의 기린아 배창호 감독은, 비운의 걸작 최후의 증인을 리메이크했었으나 흥행에 실패한 흑수선(2안성기, 이미연, 이정재, 정준호 출연)을 제외하곤 러브스토리, 정, 길 같은 소규모 자본의 영화를 연출하게 됩니다. 흑수선에 출연했던 배우 정준호는 신상옥 감독이 연출하고 신영균 등이 출연했던 천년호의 리메이크 작품에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영화 역시도 흥행에 참패하고 말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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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