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코너

크눌프
- 작성일
- 2017.4.19
도성
- 감독
- 원규
- 제작 / 장르
- 홍콩
- 개봉일
- 1990년 11월 17일
비디오테이프 전성기 시절에 이 영화 도성을 비디오대여점에서 빌려왔던 기억이 저에겐 있습니다. 주윤발이 출연했던 정전자(도신)와 비슷한 내용의 영화겠지 하는 생각에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왔는데 영화의 분위기가 이상한 거에요. 주윤발과는 다른 이미지의 배우(주성치)가 멀끔한 얼굴을 찌그려뜨려가며 이상한 코미디 연기를 하고 주윤발, 유덕화가 나오는 영화에서 악당 역을 종종 맡았던 배우(오맹달)이 주인공의 친척 역으로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현실적인 초능력을 이용해서 카드게임을 하기도 했죠. 제가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란 생각은 들었지만 주윤발을 보기위해 꾹 참고 화면을 주시했죠. 주윤발은 언제 나오나 기다리던 중에 주윤발이 영화에 나오긴 나오는데 정전자 속 장면이 마치 자료화면처럼 잠시 등장했었고 그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졌던 저는 영화를 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하고 말았답니다. 주윤발 유덕화 왕조현이 출연했던 영화 정전자의 인기를 이용해 만든 아류작이라는 생각을 했죠.
이와 비슷하게 비디오테이프를 반납했던 경우가 또 하나 있으니 그 영화가 바로 동성서취에요. 한때 주윤발 주연의 정전자를 좋아했던 것만큼이나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을 좋아했던 저는 김용의 무협소설이란 같은 소재에 동사서독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거의 그대로 출연한 동성서취란 영화를 비디오대여점에서 대여해왔었답니다. 그러곤 몇 분이나 봤을까... 장국영, 임청하, 양조위, 왕조현, 장학우 등등의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끝까지 못 보겠다는 생각에 그냥 반납을 해버렸죠. 도성과 동성서취... 그렇죠. 이 두 영화의 연출에 참여를 했던 이가 바로 유진위 감독입니다. 도성의 경우 원규 감독과 연출을 같이 하면서 각본까지 담당을 했었고 동성서취의 경우 동사서독 제작이 지연되자 제작자이기도 했던 유진위 감독이 동사서독 출연배우들을 이끌고 만들었던 영화였다고 해요.
유진위 감독은 아비정전의 각본에 참여하고 중경삼림, 동사서독, 타락천사을 제작하며 왕가위 감독을 지원하는가 하면 주성치 주연의 코미디 영화들을 각본, 연출, 제작을 맡기도 했습니다. 신정무문, 도성, 도성 2, 서유기 월광보합, 소유기 선리기연, 홍콩 레옹은 유진위의 지휘 아래 제작된 영화들이었고 동성서취의 경우 왕가위 영화 동사서독의 제작자이면서 주성치 영화의 연출자이기도 했던 유진위 감독의 특징이 잘 나타난 영화였습니다. 동성서취는 주성치가 없지만 주성치 영화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영화였었죠. 서유기 월광보합과 서유기 선리기연의 경우 동사서독 속 대사가 들어가 있기도 해서 주성치 대표작임에도 왕가위 영화의 느낌이 나는 영화가 되었구요.
십 여 년도 훌쩍 지난 뒤 다시 관람한 도성은 예전에 봤던 때과는 다른 느낌을 줬습니다. 주성치 영화에 이제 익숙해져서인지 주성치식 코미디가 반갑기까지 하더라구요. 영화가 시작되면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청년 싱(星)은 자본주의 사회인 홍콩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과 북한처럼 아예 단절되어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그때 그 시절 중국에서 홍콩으로 건너와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에요. 이연걸처럼 홍콩에 정착했다가 홍콩 여배우와 결혼까지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공리처럼 홍콩 영화인들과 작업을 같이 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여전히 남아있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이연걸, 공리와 달리 성향기병 시리즈나 이 영화 도성에서처럼 홍콩의 밑바닥에서부터 새 삶을 시작해야 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성공의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유로운 홍콩에 왔지만 홍콩에서의 삶은 만만치 않았죠. 기술도 지식도 없는 이 새로운 이주자들 중 일부는 암흑가로 흘러들어가기도 하고 도박판에 끼여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주윤발과 왕조현이 출연했던 장단각지연 속 탈중(脫中) 가족은 어렵게나마 마트를 경영해서 홍콩에서의 새 삶을 꾸리게 되고 장만옥과 여명이 출연했던 영화 첨밀밀 속 주인공들은 영어를 배우고 장사도 하며 홍콩에서 살아가게 되었죠.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갓 건너온 주인공 싱(주성치)은 홍콩에 정착했던 삼촌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 삼촌(오맹달)은 갓 이주한 싱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삼촌이 마중나와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삼촌은 없었고, 목이 말랐던 싱은 음료수 자판기 앞에서 생고생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본 홍콩 경찰은 중국 동전을 넣고 음료를 뽑으려는 싱에게 무안을 줍니다. 자판기 기계에게 빌면 음료수가 나올 것이라는 경찰의 말에 싱(주성치)은 자판기 기계에 두 손을 대고 초능력을 사용해서 음료수를 뽑아냅니다. 이렇게 영화의 처음이 시작되면서부터 초능력을 선보인 싱은 삼촌을 찾아 삼촌의 거주지를 찾아갔죠. 하지만 도박중독자에 가까운 삼촌(오맹달)은 싱의 존재를 귀찮게 여깁니다. 홍콩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아주 복잡한 주택단지에 도착한 싱, 하지만 잠겨진 출입문을 통과하기가 어려웠죠. 인터폰으로 사랑해(워 아이 니)!를 외치던 청년을 보고는 워 아니 니가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암호겠지 생각한 싱은 우여곡절 끝에 주택단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만 이방인을 낯설게 여기는 주민들의 오해와 외면 속에 밖으로 쫒겨나게 됩니다.
쫒겨난 싱(주성치)은, 삼촌(오맹달)의 사진을 경찰에게 보여주며 연쇄살인마라고 말해버렸죠. 우루루 몰려든 경찰들과 함께 삼촌 앞에 도착한 싱, 여기서 좌충우돌 주성치, 오맹달 콤비의 코미디가 선보여집니다. 주성치 영화에 종종 볼 수 있는 배우들의 코미디 연기도 재미를 더해줬구요. 큰 꿈을 꾸고 홍콩에 와봤더니 삼촌은 도박중독자에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 싱을 만난 삼촌은 싱의 초능력을 알게 되자 자신의 도박판에 싱을 끌어들입니다. MBC 드라마 서울의 달 홍식이(한석규)라면 제비짓을 해서 돈 많은 귀부인들을 유혹한 뒤 큰 돈을 벌어 라스팔마스로 떠날 생각을 했을텐데 이 영화 속 주인공 싱(주성치)와 그 삼촌(오맹달)은 도박으로 큰 돈을 벌 생각을 했던 것이죠.
돈 있는 자의 천국 홍콩에 도착한 돈 없는 루저들은 승승장구하는 도신의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일확천금의 꿈을 가지게 됩니다. 영화 도신(정전자)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 고진(주윤발)은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해서 뒷모습을 찍힌 것이 유일한 사진이었고 그 뒷모습 사진을 보고 반한 여인(오천련)이 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이 영화 도성 속 도신(주윤발)의 설정은 이와 달라서, 영화 후반부 배 안에서의 도박 장면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일반인 신분인 싱(주성치)과 그 삼촌(오맹달)이 볼 수 있었죠. 이후 영화가 진행되면서 도박판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 싱은 도신(주윤발)의 도박판 입장 모습을 아주 재미있게 패러디합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로 기억될 이 장면은 유진위 주성치 콤비의 재치가 발휘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신(주윤발)의 도박판 입장 장면을 비디오테이프로 지켜보며 자신들도 저렇게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도신의 세계관이라기보다는 홍콩 영화계 스타의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속 모습을 흉내내고 있던 당시 홍콩영화팬들의 모습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듭니다. 문방구에서 비비탄 권총을 구입하고 어머니 선글라스와 아버지 롱코트를 거치며 주윤발 흉내를 냈던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고나 할까요. 저는 영웅본색과 첩혈쌍웅 속 주윤발을 흉내냈지만 이 영화 속 주성치는 도신(정전자) 속 주윤발의 모습을 흉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면, 초능력을 가진 상태로 도박의 세계에 입문한 싱(주성치)는 도박판에서 갖가지 일을 겪게 됩니다. 부산의 조직으로 얘기하자면 20세기파와 칠성파 정도의 라이벌 관계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쪽 도박판에는 무시무시한 두 라이벌 조직이 있었고 그들의 도박판에 싱과 그의 삼촌이 끼여들게 됩니다. 싱의 초능력이면 그 어느 조직이 되었던 도박판의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이었겠죠. 범서방파 조직이 동남아시아에 정킷방을 설치하고 그 정킷방에 거물 사업가와 유명한 운동선수가 참여했던 도박판을 생각해본다면 이들 조직의 도박판 구상이 대략이나마 상상이 갈 것 같기도 합니다.
도박 중독자에 가까운 삼촌(오맹달)은 경마장, 마작판, 카지노에 싱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렇게 도박판을 다니며 승리를 거두던 싱(주성치)은 아리따운 아가씨를 만나게 됩니다. 아리따운 여인(장민)이 수 십 명의 악당들에게 쫒기는 상황이 되었을 때 싱(주성치)은 용기를 내어 악당들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이소룡에 빙의한 듯 싱(주성치)이 나름 주먹을 휘두르려는 찰나, 아가씨가 악당들을 때리고 있고 뒤늦게 나타난 낯선 남자가 악당들을 연이어 두들겨 팹니다. 그렇게 악당들을 물리친 뒤 낯선 남자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사라지는 이 여인(장민)은 한 손을 들어 싱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아몽이라는 이름을 남긴 이 여인의 스카프가 날려 싱에게 도착했고 싱은 그 스카프를 소중히 간직하게 되었죠.
싱은 아몽(장민)을 잊지 못하지만 사실 아몽은 비밀을 간직한 조직의 여인이었습니다. 순수한 마음이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싱의 초능력은 도박판을 불나비처럼 떠돌기 시작하고 이런저런 유혹에 흔들리면서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합니다. 낯선 여인의 스카프를 쥐고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은 한국영화 초록물고기 속 미애(심혜진)의 스카프를 손에 쥔 막동(한석규)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보스의 여인이었던 미애가 그랬듯이 아몽 역시 조직에 소속된 여인이었고 순수한 청년이 사랑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존재였었죠.
그 시절 홍콩 느와르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이 영화 도성에도 몇 차례의 총격전이 나옵니다. 비밀을 가진 여성 스파이 아몽의 등장과 배신과 복수, 조직 간의 총격전 끝에 최종적인 도박판이 열리게 됩니다. 대단한 힘(!)을 가졌던 청년이 환락과 유흥으로 가득 찬 서울에 올라와 점차 그 힘을 잃어가는 내용을 그렸던 장사의 꿈이란 소설/영화가 생각나는 상황이 환락과 유흥이라면 서울 못지 않은 홍콩에 도착한 싱(주성치)에게도 생겼죠. 싱의 초능력은 그야말로 발기부전의 상태가 되었으며 대만 조직과 홍콩 조직의 운명을 건 도박판은, (영화 속) 도박의 신 도신(주윤발)을 꿈꾸던 청년 싱에게 자칫 단두대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답니다.
007 영화 속 악당을 연상케 하는 상대 조직의 보스(진패)와 도박을 하게 되는 주인공 싱, 하지만 초능력이 약해진 그와 갖은 꼼수를 사용하는 보스의 게임은 승패가 뻔했죠. 기계장치를 이용해서 목소리를 내는 보스는 그 쉰 목소리가 동반되어 더더욱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선보입니다. 보스는 부하들을 이용해서 카드를 파악하는 술수를 부립니다. 관객들은 그동안 싱의 점차 초능력이 불완전하게 이뤄지는 모습을 봐왔었기에 더더욱 불안해지죠. 하지만 이 위태로운 순간, 아몽이 등장합니다. 싱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손바닥을 비비고 이때 관객은 그 속의 카드가 엄청 멋진 패로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싱이 열심히 비빈 카드는 그가 그동안 보여줬던 초능력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허술한(?) 숫자의 카드였죠. 당황하는 싱과 불안해하는 관객들을 뒤로 하고 맞은 편의 보스(진패)가 한껏 여유를 부리며 자신의 카드를 펴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유진위, 주성치 콤비의 멋진 반전에 의한 것이었고 예상치 못했던 반전을 보이며 게임을 승리로 마감한 싱은, 도박판에 직접 나타난 아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갑니다. 두 팔을 펼치고 그토록 찾던 아몽을 안을 것 같았지만 싱은 아몽 뒤쪽에 있던 지인들을 먼저 포옹했죠. 그리고 나서야 아몽과 재회하는 싱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끝에서 싱(주성치)과 그 삼촌(오맹달)은 더 큰 도박판을 찾아 해외로 나갑니다.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건너와서 영화를 통한 일확천금의 꿈을 꾸고 성공을 거둔 이후 더 큰 세계인 할리우드로 건너갔던 홍콩 영화인들이 생각나게 먄드는 엔딩이라고 생각하면 지나친 상상일까요. 아무튼 이렇게 도성 1편이 끝난 뒤 싱과 그 삼촌은 초능력을 이용해 도박을 하다가 과거, 즉 우리네 역사로 비유하면 김두한과 하야시, 시라소니와 이정재가 있던 암흑가의 옛 세계로 떨어지게 됩니다. 즉 상해 폭력조직을 다룬 인기 드라마 상해탄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죠. 도성 1편이 도신(정전자)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라면 그 속편에선 주윤발의 출세작이기도 했던 드라마 상해탄의 세계관 속에 도성 싱(주성치)이랄까요.
이 시리즈의 또다른 속편 도패(도성연속편 도패)에선 싱(주성치)에게 누나(매염방)가 있었으며,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떠난 철부지 동생 싱을 찾아 누나가 홍콩에 오게 되었다며 얘기가 진행되기도 합니다. 도신 1편에 출연했던 유덕화가 도신의 제자로 유명해진 상태에서 도성에 출연했던 주성치, 오맹달과 손을 잡았던 도협, 임신 중이던 아내(장민)가 악당들에게 살해당한 뒤 한동안 도박의 신이란 정체를 숨기기로 다짐한 고진(주윤발)이 중국 대륙에서 악당들을 만나게 되어 죽을 뻔 하기도 하고 중국 공안에 잡혀 혼쭐이 나기도 했으나 아슬아슬하게 탈출하여 도박판에서 또 한 번 실력을 발휘하는 내용을 그린 도신 2 등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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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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