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리뷰 코너

크눌프
- 작성일
- 2017.11.8
소오강호
- 감독
- 호금전
- 제작 / 장르
- 홍콩, 대만
- 개봉일
- 2015년 12월 3일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 즈음이었으려나요. 라디오를 듣다보면 무협소설 광고가 나오곤 했답니다. 김용 원작 소설을 국내에서 번역한 영웅문 시리즈가 큰 인기를 끌면서 한동안 무협소설 붐이 생겼고 그 영향으로 영웅문, 녹정기, 소오강호 같은 무협소설이 절찬리에 팔렸었죠. 심지어는 김용 원작 소설이 아님에도 김용 소설 속 등장인물과 세계관을 그럴싸하게 흉내낸 화산논검이란 책이 출판되기도 했었답니다. 와룡생(1930~1997)이라는 이름의 유명 무협소설 작가의 이름을 패러디해서 와룡강이라는 이름으로 펴낸 야한 내용의 무협지가 만화방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기도 했었답니다. 연세대 신학과 운동권 학생이자 무협소설 번역자였던 인물이 80년대 신군부를 무립 사파에 비유하고 유물변증법 얘기를 넣었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었으니 무협소설과 신군부 시절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인연이 깊었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열광적인 인기 속에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해졌던 무협소설은 서극 감독의 일련의 SFX 기술이 가미된 무협영화를 내놓으면서 더욱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장철, 호금전 두 감독의 이름으로 무협영화가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만 80년대로 접어들면서 허관걸 등이 출연한 최가박당 시리즈와 성룡의 취권, 프로젝트 A, 폴리스스토리 등의 인기에 잊혀지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할리우드에서 배운 특수효과를 촉산 등의 초기작에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서극 감독은 호금전 감독이 연출을 맡고 자신이 제작을 맡기로 하고 김용 작가의 인기 무협소설 소오강호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죠. 성룡이나 주성치, 왕가위가 그러하듯 자신만의 영화세계가 있는 영화인은 다른 사람의 간섭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호금전과 서극은 충돌했고 호금전은 촬영장을 떠났다고 해요. (사실 제작자 서극과의 갈등은 이후 영웅본색 1편과 2편을 연출했던 오우삼 감독 사이에서도 있었죠.)
일이 이렇게 되자 제작자이며 그 자신이 영화감독이었던 서극은 나머지 작업을 진두지휘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 서극에게는 홍콩의 스필버그라는 영광스런 별명이 있기도 했답니다. SFX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 흥행작을 많이 만들어냈다는 점, 자국 영화계의 트렌드를 바꿔 놓았다는 점 등의 공통점은 물론이요 자신이 아닌 동료 감독을 활용해 프로젝트 진행할 수 있는 인맥이 있다는 것 또한 비슷했죠.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로버트 저매키스, 로렌스 캐스단, 조 단테, 조지 루카스 등의 지인이 있었다면 서극에게는 정소동과 이혜민이라는 양 날개가 있었죠. 정소동, 이혜민과 서극은, 호금전이 떠난 빈 자리를 채웠고 소오강호는 그렇게 다소 어수선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참고로 정소동 감독은 진용과 천녀유혼, 동방불패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이며 이혜민은 신용문객잔이란 작품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합니다. 이들 작품의 제작자가 바로 서극이었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명나라 말 만력제 시기의 동창을 배경으로 한 소동이 묘사됩니다. 동창이란 이를테면 유신 말기 중앙정보부 같은 기관이었고 환관들이 그 동창을 장악하고 있었죠. 동창의 라이벌로 서창이란 기관도 있었으니 동창이 보관하고 있던 비밀스런 무술비급 규화보전이 사라지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동창의 지휘자 고금복(유순)은 서창에 알려지는 것을 경계하며 규화보전을 찾기 위해 군사들을 보내게 됩니다. 규화보전은 임청하와 이연걸이 출연했던 영화 동방불패를 통해 국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무술비급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영화 동방불패의 경우, 호금전을 내세워 영화를 만들려다 자신을 비롯한 이른바 서극 사단이 마무리를 하고 말았던 소오강호의 뒷 이야기이도 하며, 김용 원작 소설 속 캐릭터를 영화적으로 꽤 많이 변용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소오강호의 경우도 원작소설과 차이점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동방불패의 경우는 그보다 더 많이 바꼈으며 동방불패의 인기에 힘입어 만들어진 속편 동방불패 2 풍운재기의 경우 원작소설에 없는 내용을 영화로 만들고 만 작품이었죠.
아무튼 이렇게 규화보전 찾기에 혈안이 된 동창 요원들은 가장 의심이 가는 임진남이란 인물을 추적하게 되었습니다.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의 소행이란 생각에 이르러 때마침 황궁에서 사라진 인물 즉 임진남과 그 일가족을 쫒게 된 것이었죠. 임진남은 염포방이란 곳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요즘의 우리로 비유하면 국정원 제2차장 정도 위치였을까요? 나름의 세력을 가진 임진남은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로 동창의 무리를 막아보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중정요원들의 추적을 받게 된 김형욱의 입장이 이러했을까요? 아무튼 이 어려운 상황의 임진남에게 화산파의 영호충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속편인 동방불패에서는 소림사, 황비홍 등의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던 이연걸이 영호충 역을 맡았지만 이 작품 소오강호에서는 최가박당 시리즈로 인기를 모았던 배우이자 가수 허관걸이 영호충 역을 맡았었죠.
참고로 1948년생 허관걸과 1963년생 이연걸 사이에는 제법 많은 나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허관걸은 1950년생인 서극 감독보다 더 나이가 많았죠. 호금전 감독은 1931년생이고 허관걸은 1948년생이며 서극은 1950년생, 정소동은 1953년생이었으니 이후에 만들어진 동방불패는 1954년생 임청하와 1963년생 이연걸, 1962년생 관지림 등을 캐스팅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캐스팅이 죄다 바뀐 상황 속에도 소오강호와 그 속편 격인 동방불패 두 편 모두 출연한 배우도 있으니 바로 원결영(袁潔瑩)과 유순이란 배우랍니다. 원결형은 두 편 모두 남봉황 캐릭터를 맡아 열연을 펼쳤죠. 흥미로운 것은 유순이란 이름의 배우입니다. 소오강호에서는 악역 고금복 역을 맡았었고 동방불패 1편에선 일월신교의 향좌사란 캐릭터를 연기했습니다. 그리고 동방불패 2 풍운재기에서는 죽은 것으로 가장하고 있던 동방불패(임청하)가 정체를 숨기고 있을 때의 노인 모습으로 영화 초반에 등장했답니다.
고금복 밑에는 강호의 고수였으나 동창의 고금복 밑으로 들어간 좌냉선이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살인청부업자라고나 할까요. 권력의 개처럼 활동하고 있었습니다만 무공이며 성깔머리가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라서 좌냉선(원화)의 추격에 임진남 일가는 몰살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임진남의 아들 임평지에 관한 이야기가 제법 많이 다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동창 부하들에게 잡혀 고문받다가 살해당했다는 것으로 생략해버리고 말았으며 임평지로 가장한 구양전(장학우)가 자신을 임평지라고 소개하며 화산파 및 일월신교 세력에 접근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답니다. 구양전(장학우)은 고금복(유순)의 유능한 부하인 동시에 야심만만한 인물이었죠. 규화보전을 훔쳐 도망친 임진남이 김형욱이라면 이 구양전은 이후락 쯤에 해당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 구양전은 좌냉선과 마주쳤을 때 눈싸움을 하는가 하면 상관인 고금복으로부터 견제와 위협을 받기도 하는 인물로 묘사가 된답니다.
고금복과 구양전의 동창 세력과 좌냉선이 이끄는 일련의 살수(殺手) 무리가 임진남 일가를 추적하며 사라진 규화보전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했으며 그 와중에 화산파의 영호충 일행과도 칼을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좌냉선의 공격을 받은 임진남은 죽음을 앞두고 영호충(허관걸)에게 규화보전이 숨겨진 위치를 알려주었고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게 된 영호충은 임진남의 아들을 찾아가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 유정풍(오마)과 곡양(임정영)이란 인물을 만나게 되었답니다. 순풍당 당주 유정풍과 일월신교 인물인 곡양은 강호에서의 이념적 위치가 다른 인물이었지만 친구가 된 인물들로, 두 사람은 소오강호란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부르게 되었죠.
웃으며 강호를 노닐다라는 뜻을 가진 소오강호란 제목의 노래를 부르던 두 사람은 좌냉선 일당의 공격 속에 치명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임진남이 그러하듯 이 두 사람 역시도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 즉 소오강호 악보를 영호충에게 전해주게 되었고 졸지에 영호충은 규화보전의 위치와 소오강호의 악보를 동시에 지닌 인물이 되었죠. 강호의 온갖 욕심이 몰려드는 무공비급 규화보전과 강호를 떠나 자연을 벗하며 노니는 내용의 가사가 실린 소오강호 악보는 상당히 대조적인 아이템인 셈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어쩌면 이미 죽음이 도착한 유정풍과 곡양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에 불을 붙이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 없이 훌훌 삶을 떠난 이 두 사람과 달리 규화보전을 노리는 악당들은 그야말로 야망과 욕심으로 가득차 있는 인물들이었죠.
허관걸과 엽동이 연기하는 영호충, 악령산 캐릭터는 이후 만들어진 동방불패에선 이연걸과 이가흔이란 두 배우가 맡게 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최가박당 때의 모습과 달리 이 영화에선 상당히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의 허관걸이라서 캐스팅이 살짝 아쉽달까요. 아무튼 이렇게 절대반지급 희귀 아이템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고 있는 영호충은 그 위치를 임진남의 아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강호의 뭇 인물이 그러하듯 본인이 규화보전을 찾아 절대무공을 익힐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영호충이란 인물을 그야말로 반지의 제왕 속 프로도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달까요. 남장(男裝)을 하고 영호충과 동행하고 있는 악영산(엽동) 역시도 욕심 없기는 마찬가지인 인물입니다. 그녀 자신의 아버지가 화산파 내의 실세 악불군임을 생각해본다면 아버지와는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좌냉선의 추격 때문에 임진남의 일가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뒤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던 유정풍과 곡양마저도 살해당한 뒤 임진남의 유언을 받은 영호충 일행은 살수(殺手)들의 추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라진 화산파 제자 두 명, 즉 영호충과 악영산이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이 동창 세력에 알려지게 되었고 영호충 일행은 아주 위험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도주 중이던 영호충 일행은 산길에서 허름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굶주린 행려병자가 아닐까 싶은 이 노인에게 영호충 일행은 부족하나마 음식을 나눠주게 되었죠. 그때 마침 영호충을 쫒아온 악당들이 있었으니 이 노인은 감추고 있던 검술 실력을 선보이며 위기에 처한 영호충 일행을 구해주게 되었습니다.
이 허름한 노인의 정체는 풍청양으로, 과거 화산판의 내분 때 튕겨나와 은둔 중이던 인물이었죠. 독고구검을 선보인 풍청양은 영호충에게 사부 악불군을 조심하란 얘기를 남겨주며 떠나게 되었습니다. 영호충은 풍청양에게 배운 독고구검은 이후에 벌어지는 일전(一戰)에 잘 활용하게 되는 것을 더 말할 필요는 없을 테죠. 한편 당시의 강호에 군자검(君子劍)이란 멋드러진 별호로 알려진 악불군은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동창 무리에 접근해서 이야기를 엿들으려고 합니다. 고금복의 경계로 인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악불군이란 인물이 얼마나 규화보전에 욕심을 내고 있는지 잘 알려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이 영화 소오강호에는 동방불패 캐릭터가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일월신교 내부의 인물로 단주 임영영(장민)과 묘족 남봉황(원결영) 등이 나오며 임영영은 이후 만들어진 영화 동방불패에선 장민이 아닌 관지림으로 바꿔 캐스팅되게 되었죠. 일월신교의 객잔에 영호충(허관걸)과 악영산(엽동)은 물론이요 임진남의 아들 임평지 흉내를 내는 구양전(장학우)과 구양전을 앞세운 고금복의 동창 세력까지 모이게 되었습니다. 객잔 안에 여러 세력이 모이게 되어 서로 칼을 들이대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이후에 만들어진 신용문객잔(이혜민 연출)에 다시 한 번 선보여지게 되었죠. 신용문객잔에 객잔의 여주인 장만옥이 있다면 이 영화 소오강호에는 일월신교 단주 장민이 있는 셈이고 신용문객잔에 양가휘가 있다면 소오강호에는 허관걸이 있는 셈이죠. 신용문객잔에서 임청하가 연기한 캐릭터 역시도 남장(男裝)을 하고 소오강호 속 악영산 캐릭터 역시도 남장(男裝)을 하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동방불패에서 관지림이 보여준 모습보다 훨씬 더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민 버전 임영영은 우리로 비유하면 중앙정보부 요원들 즉 동창의 환관 세력과 악불군이 거느리는 화산파 세력, 여기에 살인청부업자 역할을 하고 있는 좌냉선까지 끼어든 객잔 안의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나름 잘 잡아나간다고나 할까요. 아버지 임진남의 유언을 듣겠노라고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아내려 영호충(허관걸)에게 접근한 구양전(장학우)은 물론이요 화산파 내에서의 권위를 앞세워 영호충에게서 규화보전의 위치를 알아내려고 하는 악불군과 달리 임영영(장민)이 영호충으로부터 알아낸 것은 곡양의 최후 즉 소오강호 악보에 관한 것이었죠. 독 때문의 의식이 잃은 영호충을 되살리려고 임영영과 남봉황은 애를 씁니다. 그리고 그 결과 영호충은 다시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앞서 풍청양에게서 배운 독고구검까지 선보이며 되었습니다.
동창의 우두머리였던 고금복은 압도적인 무공실력으로 자신에게 저항하던 인물들을 제압하지만 그 자신의 부하이면서 야심만만했던 구양전(장학우)의 갑작스런 기습으로 인해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고 눈 앞에 나타난 규화보전 때문에 숨겨왔던 야심을 드러낸 악불군은 자신을 받들던 화산파 제자들 앞에서 추한 모습을 선보이고 말았답니다. 소오강호 악보를 규화보전으로 착각해서 강호의 1인자가 된 것인양 의기양양했던 악불군은 자신이 가진 것이 소오강호 악보임을 알자 분통을 터뜨리게 되었죠. 이런 류의 무술영화는 종종 주인공과 그를 따르는 여인들이 함께 저 멀리 먼 곳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끝맺게 되는데 이 영화 소오강호 역시 저 멀리 어디론가로 떠나는 장면으로 끝나게 된답니다. 모택동과 장개석 두 세력의 영토가 아닌 제3지대인 홍콩에 자리잡았던 사람들이었기에, 영화 속 주인공이 강호의 피비린내를 벗어던지고 저 멀리 어디론가로 훌훌 떠나는 모습이 일종의 영화적 클리세로 자리잡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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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