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리뷰

jean217
- 작성일
- 2023.2.9
번역의 말들
- 글쓴이
- 김택규 저
유유
한때 중국어 번역일을 하고 싶었다. 중국어 공부를 오래해왔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어를 잘해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게 어폐지만 막상 멋진 글, 남들이 읽어보면서 재미난 글이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말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 오래전에 영화 평을 좀 써본 적이 있었는데 누가 물었다. "왜 그렇게 영화 평을 많이 써요" 라고 물어 "한국어를 잘 써보고 싶어서요" 라고 답했다. 반응은 썩 좋지 못했다.
번역은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기도 하고 한국의 작품을 다른 나라 언어로 옮기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극히 예외적으로 두 나라의 언어에 능숙해 두 가지를 모두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틀림없이 한 분야에선 미숙함이 드러날 수 밖엔 없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번역일을 업으로 삼는 경우도 없다. 그만큼 척박하고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대학원 다닐때 알바 삼아 실용서 일부를 초벌 번역할 기회가 있었다. 동기가 받아온 건데 너무 많다고 해서 몇몇에게 나눠 주고 번역을 부탁했다. A5장 정도 분량이라 부담도 적었고 중간에 그림도 있어 쉽게 할 수 있었다 싶었는데 중간에 도무지 알 수 없는 전문용어들이 몇 개 있고 다 해놓고도 한국어로 읽어봐도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그걸 건네주고는 다시는 번역은 못하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생각지도 못한 약간의 보수를 받고는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집 한구석에 처박힌 중국 문학관련 서적들을 가끔 들추면서 이런 걸 왜 한국에선 번역하는 사람이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중국어 배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다들 말하는 거랑 가르치는 것으로 빠져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여전히 중국어권 작품이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라 그런가 싶기도 하다. 특히 요즘처럼 중국에 반감이 많은 시절이다 보니 당분간은 더 그래 보인다.
하지만 실용서나 실용문의 경우는 시장이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번역은 도착어로서의 한국어가 매끄럽게 표현되어야 한다. 한국어로 씌여있다고 다 한국어가 아닌게 가끔 메이드 인 차이나 전자제품을 사면 한국어로 된 사용 안내서를 볼때가 있는데 기계로 번역을 돌린 것인지 아니면 한국어를 배운 중국인이 대충 한국어 처럼 번역한 것인지 실소가 나올때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번역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대학과 시민강좌에서 강의도 하고 중한번역도 하고 윤문도 하는데 번역 작업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두 끄집어낸 매우 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잘 몰랐던 그들의 작업 뒷길에 이런 자갈발과 꽃길이 공존했구나 싶기도 하고 후학들에 대한 기대도 은근하게 읽힌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전망이 있을까? 그 질문이 맨 마지막 장에 나와 있다. 요즘 외국어 번역하면 기계의 힘을 빌리면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실제로 그런 사이트들이 있다. 하지만 좋은 번역은 기계의 단순 작업으로 100% 완성되지 않는다. 저자는 어떤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번역은 원저자의 작품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물리적 작업이 아니라 독자에게 어느 순간 외서의 번역본이라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유려하게 그 나라의 언어화 하는 창작물이라고 본다.
번역과 창작은 좀 애매한 관계이긴 하다. 창작이 없으면 번역도 존재하지 않고 번역이 없다고 창작이 가치를 훼손당할 일도 없다. 그러나 그 나라 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창작물이 제대로 소개되는 중간자 역할을 번역가들은 담당하고 있다. 개개인의 역량의 차이가 있기 하겠지만 번역이 있어 인류 문화의 교류와 확산이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돈황 막고굴에서 발견된 수많은 고서적들도 대개는 불경의 번역본이고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말할 것도 없는 정수다.
책을 읽으면서 나같은 사람은 번역을 안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에 집중도 잘 못하고 번역이 잘 안되면 책을 집어던질텐데 그래서야 번역가로서 자질이 안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어도 유려하게 풀어내지 못하는데 더 말해서 뭐하나. 암튼 좋은 책을 다 읽고 난 뒤끝이라 기분은 좋다.
번역은 궁극의 숙독이고 한 줄 한 줄 텍스트를 쫒는 것은 작가로서 귀중한 경험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p157
완벽한 언어가 없듯이 완벽한 번역도 없다. 인간이 앞으로도 존속한다면 불완전한 언어를 끝없이 갈고 닦는 불완전한 번역가의 모습에 매료될 것이다. /신견식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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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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