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사진
나날이
  1. 일반 서적

이미지

도서명 표기
조선 왕실 로맨스
글쓴이
박영규 저
옥당북스
평균
별점9 (20)
나날이

조선 왕실 로맨스를 자세히 읽다 보니 각 왕들의 사랑이 못내 가슴에 와 닿았다. 그것이 역사가 되었고, 그것이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되어 있는 것을 만났다. 그래서 비교적 소상하게 그들의 여인들을 만나 보았다. 그것은 나에게도 조선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여 기록하여 남긴다.

 

제안대군은 기구한 운명의 대군이다. 그는 예종의 원자로 태어났으면서 예종이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우여곡절을 겪는 인물이다. 예종이 죽을 때 그의 나이 4살이다. 그래서 왕은 의경세자의 둘째인 성종에게로 넘어 간다. 그리고 제안대군은 성종의 왕권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평원대군의 양손이 된다. 그것은 아마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게 하기 휘한 고육지책이었으리라 생각된다. 제안대군은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두 번 이혼하고 한 사람과 두 번 결혼하기도 한다. 두 번 결혼한 사람은 첫 번째 아내인 김씨다. 김씨와 결혼해 살고 있는 가운데 후손과 관련되어 김씨가 아프다는 근거를 대면서 궁중에서 내보내게 된다. 그리고 박씨는 또 아내로 들인다. 하지만 제안대군은 첫 번째 아내인 김씨를 지우지 못하고 사가에서 만나는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그런 와중에 박씨가 동성애를 한다는 것이 알려진다. 그리고 퇴출된다. 그 후 성종은 다시 제안대군의 비를 들이고자 하나, 그는 반발하여 김씨가 아니면 여인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세우고 있다. 성종도 어쩔 수 없이 재결합을 허락한다. 참 이례적인 예이고,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성종13살에 왕위에 올라 25년간 용상에 있었다. 재임 기간이 거의 젊은 시절이었기에 여인들 문제도 많았다. 왕비가 3, 후궁도 14명이나 되었다. 한명회의 4째 딸이 성종의 아내였다. 공혜왕후 한씨다. 성종이 자을산군으로 있을 때 열한 살의 나이로 12살의 공혜왕후와 결혼했다. 그는 결혼 당시에는 왕이 될 가능성이 희박했다. 예종이 젊었고, 예종비가 공혜왕후의 언니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예종이 죽고, 자을산군에게 기회가 왔다. 그것은 바로 국구를 바라는 실권자 한명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왕이 되었고 공혜왕후는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왕비는 1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왕비의 죽음은 성종이 여성 편력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공혜왕후가 병석에 있게 되자 후궁들을 들이게 되고 후궁들의 암투가 시작된다. 왕비가 되기 위한 암투다. 그런 가운데 연산군의 어미인 윤씨가 두드러진다. 그녀는 연산을 잉태함으로 유리한 조건이 되고 결국 왕비가 된다. 하지만 왕이 후궁들에게 드나들고 하는 과정에 윤씨는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런 가운데 후궁들이 합세해서 왕비를 공격하게 되고 왕비도 대응한다. 과정 속에 비상과 방술서가 방에 있는 것이 성종에게 발견되고 성종은 윤씨를 내칠 것을 결정한다. 결국 내치는데, 신하들의 주청에 의해 사약을 내린다. 그것이 나중에 연산이 분노하게 되는 결과를 만든다. 책엔 호색한인 성종이 안달해 후궁을 만들기 원했던 소춘풍이란 기생이 그 청을 거부하는 얘기도 들어 있다. 무척 흥미로운 부분이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왕가에 시집간 박어울우동, 그녀는 색녀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그 이유가 뭘까? 어을우동은 태강수 이동에게 시집간다. 하지만 이동은 아내를 두고 기생 연경비와 어울린다. 그리고 기생을 첩으로 들이면서 아내를 쫓아낸다. 그것이 연유가 되었는지 어을우동도 맞바람을 피운다. 그것이 태강수의 친족들이다. 그리고 그것이 소문이 나게 되고 결국 조정에 까지 알려진다. 성종이 알고 어을우동의 행적을 조사하라고 하니 갈수록 태산이다. 어울우동과 어울린 사람은 왕족, 고관, 양반과 중인, 평민과 천인을 가리지 않고 다양했다. 그래서 그 음란의 파급효과가 대단하고, 온 조정을 들썩이게 했다. 성종도 이대로 두면 풍기가 문란해 져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일벌백계을 하겠다는 생각도 한다. 당시 성종도 폐비 윤씨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였고, 뇌두면 관계를 했던 많은 인물들이 곤경에 처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결국 교수형 처한다. 어을우동이 음란한 구석이 있었으나 당대의 흐름으로 보아 남편이 그녀를 내치지 않았으면 색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연산군은 월산대군의 부인인 승평부대부인 박씨의 슬하에서 많이 자랐다. 자식이 없는 부인이 어미를 잃은 연산을 아끼며 키웠기 때문이다. 융이 성장하면서 많이 아프고 했을 때 박씨의 보살핌으로 이겨나가곤 했다. 그래서 왕이 되어서도 박씨의 집을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많이 찾곤 했다. 그것이 이상한 소문으로 번질 정도로. 융은 13살 때 동갑인 신씨와 결혼했다. 금슬이 좋았다. 그래서 많은 자녀들도 두었다. 하지만 자녀 복은 없어 태어나자 거의 죽었다. 이것을 신씨가 슬퍼하자 안쓰럽게 여겨 위로까지 하는 융이었다. 또한 이 때에는 명민한 왕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오사화가 발생하면서 그의 폭력성과 색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초 때문에 사림들을 일거에 없앤 사화다. 이 때 유명한 조의제문’ ‘부관참시등이 나온다. 이극돈, 유자광 등이 김일손을 공격하는 가운데 김종직 이하 사람들을 몰아세운 것이다. 융은 이 무오사화를 기점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다. 그리고 주위에 아첨하는 무리로 채운다. 전국에 채홍사를 파견하여 여인들을 뽑아 오게 하고, 그들과 즐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장녹수다. 연산이 장녹수에게 마음이 완전히 빼앗긴다. 그래서 장녹수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장녹수에게 질투를 드러낸 2궁녀를 능지처참시킬 정도로 그의 폭력성은 대단했다. 결국 반정으로 인해 그의 애정 행각도 끝이 난다.

 

중종은 성종의 셋째 아들이다. 연산군보다 12살 정도 어리다. 연산이 폭력적인 왕이 됨으로 박원종 등이 중심이 되어 반정이 일어났다. 그들은 이역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반정에 성공한다. 그리고 왕위에 오른다. 중중의 비는 신수근의 딸 신씨다. 신수근은 연산군의 처남으로 실권자였다. 그래서 반정이 일어났을 때 척결되었다. 그 딸이 왕비가 되니 반정공신들이 일어났다. 그냥 둘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중종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신씨를 내친다. 내치고도 그리워하곤 한다. 단경왕후 신씨가 쫓겨난 후 왕비가 된 이는 장경왕후 윤씨였다. 그런데 원자 호를 낳고 산욕으로 죽는다. 박원종의 위세에 그의 조카와 결혼은 했으나 둘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 듯하다. 자식이 둘 뿐인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중종이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은 경빈 박씨다. 그런데 그녀에게 사약을 내린다. ‘작서의 변때문이다. 즉 원손을 저주했다는 이유다. 중종은 장경황후 3년 상이 끝나고 셋째 부인을 맞이한다. 그녀가 문정왕후다. 그녀는 원손을 잘 보살필 것이라는 기대로 궁궐 어른들이 추천하여 된 왕비다. 그녀는 자신이 자식을 놓을 때까진 원손을 잘 돌보았다. 하지만 명종을 낳고는 태도가 바뀐다. 원손 인종에 대한 노골적인 미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중종은 이중적인 모습이 있었다. 여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경빈처럼 사랑하다가도 갑자기 죽여 버리는 모습도 보인다. 누구에게도 연연하지 않은 여인 관계를 보여준다. 아마 결정을 쉽게 하지 못하는 환경적 특성이 그렇게 하지 않았나 여겨지기도 한다.

 

조선에서 부마는 어려운 자리였다. 관직에도 나갈 수 없고 아내인 공주나 옹주를 상전 모시듯 해야 했기 때문이다. 첩을 들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만일 부인을 어렵게 하는 일이 왕궁에 알려지면 부마는 어려운 일을 당한다. 그런데 2 여인을 사랑한 부마가 있다. 중종의 부마가 된 조의정이란 사람이다. 조의정의 부인은 효정옹주였는데 옹주가 시집갈 때 시녀로 풍가이를 데리고 갔다. 둘이 나이가 같고 친구처럼 지냈기 때문에 데리고 간 것이다. 이것이 비극의 씨앗이 되었다. 조의정이 풍가이를 사랑하고 옹주도 친자매처럼 여긴 풍가이를 남편에게 첩으로 들일 것을 권유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의좋게 지내는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이 궁에 알려졌다. 중종은 효정에게 애처로운 특심이 있었다. 어미도 모르고 자란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런 중종에게 효정이 홀대받고 있다는 소리는 격노케 하는 요인이 되었고 결국 중종은 노발대발했다. 그로인해 풍가이는 매질을 당하게 되고, 조의정도 유배를 가게 된다. 그 후 풍가이를 옹주의 묵인아래 빼돌렸지만 옹주가 아기를 낳으면서 산후증으로 사망하자 결국 다시 유배를 가게 된다. 효정의 이모인 궁중에 있었던 이은대는 풍가이 때문에 효정이 죽었다는 생각에 풍가이를 잡아 매질하여 죽게 만든다. 결국 사랑 때문에 죽음을 당한 풍가이고 유배를 당한 부마가 된다. 조선조의 부마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명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문정왕후의 노력에 의한 것이다. 문정왕후는 갖은 노력을 다해 자신의 유일한 아들 환을 왕위에 올린다. 그 과정에서 이복형인 인종의 죽음이 있다. 뭔가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명종이 왕위에 12살 때 오르고 문정왕후는 섭정을 한다. 그것이 시간이 길어진다. 그리고 섭정이 끝나고도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명종이 무엇 하나 제대로 자신의 의지로 했을 리가 없다. 여인 관계도 마찬가지다. 어머니 문정왕후가 지어준 짝을 배필로 둔다. 청성 심씨다. 하지만 너무 어려 결혼을 했고, 15세가 되면서도 아기를 가지지 못한다. 문정왕후는 빨리 자식을 보길 원한다. 그래서 후궁을 들인다. 그들과도 모두 사랑을 나눴으나 잉태가 안 된다. 문정왕후의 위세 앞에 모든 것이 유약해져 버린 명종이었던 모양이다. 몇 명의 후궁을 더 들이나 잉태가 되지 않고 문정왕후는 아들을 향한 노골적인 시선을 보낸다. 후손을 가지라고. 그런 가운데 심씨가 7년 만에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는다. 순회세자다. 그런데 순회세자가 열세 살 때 급작스럽게 죽는다. 결국 명종은 대를 이을 자식을 가지지 못하고 선조에게로 넘어간다. 아마 어미의 등쌀에 명종은 모든 면에서 심약한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후손에게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선조는 명종의 배다른 형으로 4살이 많은 덕흥 대원군의 아들이다. 즉 명종의 조카인 셈이다. 명종이 이른 나이에 후사가 없이 죽자 왕위를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런 선조는 당시로 보면 늦게 장가를 든다. 18살에 장가를 드는데,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장가를 들 기간에 상을 당해 아버지, 어머니를 잃게 되면서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상을 마치고 그에겐 갑자기 왕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명종이 후사가 없이 병약한 몸을 지탱해나가는 와중에 후계자로 그를 점찍은 것이다. 명종의 3년 상이 끝난 후 박씨를 왕비로 맞는다. 의인왕후다. 하지만 그녀는 선조가 좋아할 타입이 아니었다. 선조의 마음을 사로잡는 여인이 나타나는데 공빈 김씨다. 임해, 광해를 낳은 분이다. 그런데 광해를 낳고 산후병으로 죽게 된다. 선조는 공빈을 보내면서 다른 궁녀들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질투로 공빈이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다른 여인이 있었다. 바로 인빈 김씨였다. 선조가 박절하게 굴어도 따뜻하게 감싸준 이 여인이 나중에 선조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선조와 사이에 45녀를 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조는 이 여인으로 인해 오히려 죽은 공빈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된다. 하여 선조에게 저자는 순애보 형 집착남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

 

광해를 명민한 혁신 군주라고 흔히 말한다. 중립외교 노선를 통해 조선의 살길을 도모했던 정책은 당시엔 현명한 처사였다. 하지만 여인들에 휘둘린 모습을 보이고, 폐위된 상황을 보면 그렇지 만도 아닌 듯하다. 이 글에선 광해의 3여인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광해가 십여 명의 후궁들이 있었으나 그 중 특히 총애한 여인은 3명이다. 김개시로 잘 알려진 광해의 대표적인 여인 김상궁이 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광해를 알았다. 하지만 광해의 집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특별한 능력이 있어 그렇지 않았겠나 말한다. 그것은 방중술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김상궁은 광해의 전폭적인 지지로 큰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조정 대신들이 그녀에게 놀아났다. 나라를 망치게 만든 장본인으로 표현된다. 광해가 쫓겨나고 만들었고 결국은 처형되었다. 인물 좋고 애교 많은 소용 임씨가 있다. 반정에 참여한 이귀, 김자점 등을 살려준 인연으로 반정 후 죽음을 당하지 않고 광해 곁에 유일하게 머물 수 있었던 여인이다. 말 잘하고 업무처리에 뛰어났던 소용 정씨가 있다. 대전의 문서를 관리하고 왕을 대신하여 교서를 내리는 일까지 했다. 그녀는 반정이 일어나고 유일하게 목매어 자살한 여인으로 나온다. 외에도 후궁들이 더러 있었으나 폐위된 왕이라 그렇게 자잘하게 드러나진 않고 있다.

 

왕실의 사랑은 특별한 것이 많다. 그런데 절대 권력을 지니고 있기에 여인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가운데 어떤 이는 후덕한 모습으로 내조만 하고, 어떤 이는 왕의 마음을 녹여 자신의 뜻대로 권세를 가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왕의 사랑을 얻고, 어떤 이는 물리쳐 지기도 하면서 역사를 이루어 왔다. 왕의 여인들을 살펴보면 역사의 한 모습을 알 수가 있다. 좋은 경험이 되는 조선왕실 로맨스 읽기였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나날이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025.5.6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6
  2. 작성일
    2025.4.29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4.29
  3. 작성일
    2025.4.2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4.25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59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18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