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소설

책읽는베토벤
- 작성일
- 2018.5.24
삼귀
- 글쓴이
- 미야베 미유키 저
북스피어
기본적으로 괴담 같은 걸 즐기지 않는 나라고 여겼는데, 의외로 많이 접하게 되고 말았다. 이 작가의 영향이 크다. 재미있는 추리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그녀의 작품을 계속 읽다 보니 이 시리즈를 다 보게 되었고 이제는 괴담이라는 것을 기다리는 정도로 발전한 셈이다. 이게 발전이라고 한다면.
이미 읽었음에도 에도 시리즈의 개별 특징을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대로 나는 좋다. 내 기억에 없어서 새로 읽는 책에 나오는 인물이 낯설어도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여기에는 작가의 친절한 설명도 한몫 한다. 작가가 매번 같은 설명을 되풀이하거나 요약해 말해 주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작가가 한 건지 우리나라 번역가가 한 건지 잘 모르지만) 그래서 읽다가 앞 사건을 몰라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는 없었다.
이 책에 나오는 오치카도 앞선 책에 나왔던 인물이다. 그러나 나는 다 잊었다. 마치 이 책에서 처음 만난 것처럼 읽었다. 흑백의 방? 가물가물. 그래도 괜찮았다. 이대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으니까. 괴담을 들어 주는 아가씨? 그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내게는 전달자보다 귀신들이 더 인상 깊게 남았던가 보다.
딸의 말로는 일본에는 괴담만 올려서 나누는 사이트도 있다고 한다. 일본인들과 괴담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귀신의 개념과는 좀 차이가 난다. 귀신이라는 게 살아서 얻은 한을 풀지 못해 이승을 떠나지 못한 혼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비슷하겠는데 우리가 귀신을 두려워하면서 멀리하려는 것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좀 가깝게 때로는 친숙하게 느끼기도 하는 것 같다. 일본에 있는 수많은 신사들이나 신사참배 같은 풍습이 우리에게는 퍽 낯선 것마냥.
게다가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괴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라니. 종교적인 고해성사도 아니고 정신과 상담도 아니고 무속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과도 또다른 형식. 작가의 괴담 시리즈 연작을 위한 소설 장치로서는 절묘하다고 할 수 있겠다. 상황은 달라도 천일야화를 떠올릴 만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괴담을 들려줄 예정인지 모르겠으니까. 독자인 나로서는 더없이 고마운 설정이기도 하고.
사람은 말을 하기도 해야 하고, 들어주기도 해야 한다. 어떤 말은 하지 못해 병이 생기기도 하니 당연히 해야 할 것이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혼잣말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것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이 또한 한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복잡한 세상일수록 들어주는 사람의 몫이 더 중요해질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도 예사롭지 않아 듣기만 하는 데에도 힘이 빠진다고 하니 어쩌면 삶의 무게가 순간순간 음으로 양으로 작용해서 일어나는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시간, 가벼운 순간, 가벼운 생애, 가벼운 목숨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니까.
반갑게 맞아 재미있게 읽었다. 연달아 나올 것이라고 하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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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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