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소설

책읽는베토벤
- 작성일
- 2023.4.28
노랜드
- 글쓴이
- 천선란 저
한겨레출판
모두 10편의 글들. 무겁고 불편한 상상력. 그러나 상상해 보아야 할 미래. 거북함을 느끼면서도 읽는다. 읽고 또 불편을 느낀다. 불편하다고 여기면서 이러는 나를 격려한다. 잘 읽고 있는 것이라고, 읽어야 하는 일이라고, 읽고서 잊지 말아야 할 경계선 하나를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어떤 일이 생겨서 지금의 인류가 지구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상황 설정. 낯선 건 아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이럴 일이 있겠나, 후손에게 이런 일이 생기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대체로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일 테지. 누구보다 내가 이러하고. 혹시라도 그래야 하는 상황이 빠르게 닥친다면, 나는 지구랑 운명을 같이 하겠다, 누가 나를 데려가 줄 리도 없고 데려간다고 해도 가지 않으련다, 따라간다고 우아한 세상이 나를 맞이해 줄 것도 아니고, 순 개척자 같은 처지로 헤쳐 나가야만 할 텐데, 생각만 해도 고단하고 싫다, 뭐 이런 생각을 해 보는 중이라.
소설가는 나처럼 지극히 나태한 독자와는 다른 입장인 것이다. 현실이든 상상이든, 어두워도 힘들어도 막막해도, 끝내 지구를 떠나야만 한다 해도, 지구 밖 우주 공간에 인류에게 괜찮은 서식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고 해도, 살아갈 방도를 구해야 하는 모양이다. 이게 소설가의 숙명이고 사명인 게지. 현실의 고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주는 일, 글 속 세상에 그친다고 해도. 아니다, 이번 작품집의 글 가운데 한 편에서 보니 소설 속 인물이 현실로 나오기도 하던데, 진정 놀랍고 두려운 느낌이었다. 어떤 환상은 맑고 밝기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글의 소재와 상상력과 전개 방식은 참 멋지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한 편씩 읽기를 끝낼 때마다 무너지는 세상으로 인한 두려움으로 나는 떨었다. 읽어서 좋은 느낌보다 안 읽고 모른 채로 살아가는 평온함의 무게가 더 그리웠기 때문이다. 비겁하고 옹졸하고 소심한 내 본성을 때리는 주제 의식이 벅차기만 했다. 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스스럼없이 끌어안지 못하는 내 거리감의 근원이다.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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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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