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소설

책읽는베토벤
- 작성일
- 2023.11.30
파견자들
- 글쓴이
- 김초엽 저
퍼블리온
1부 - 궁금했다
SF 소설의 초반은 궁금해야 한다. 내 생각이다. 내용이든 사건이든 작가의 의도든 하다못해 새롭게 보이는 낱말 뜻에 이르기까지 무언가가 궁금해서 알고 싶어지는 게 하나씩 늘어나야 하는데 이게 또 비슷한 속도로 하나씩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읽고 싶어진다. 이 균형이 맞지 않으면 시시해지거나 따분해진다. 채 읽지 않았는데 다 알아 버렸다 싶어도 안 되고 읽을수록 더 모르겠는 걸 싶어도 곤란한, 그래서 읽기를 그만두게 되고 마니까.
적절한 분량과 속도로 궁금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지도 궁금했고 이들이 장차 하려는 일들이 무슨 일인지도 궁금했다. 막연하게나마 인물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퍽 고달프고 힘들어 보였는데 이 상황을 좀 더 낫게 바꾸려고 한다는 의지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어떤 쪽으로 향하는 것인지 서서히 알아 나가는 게 소설의 방향일 것이고.
2부 - 조마조마했다
1부 마지막에서 주요 인물인 태린의 행동이 소설의 분위기를 아주 큰 위기로 몰아넣었다. 2부에서는 태린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 행동 때문에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태린을 얼마나 큰 위험 속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결과는 모른 채 사건의 진행만 이어지고 있는 상황, 내가 참 견디기 힘들어 하는 대목이다. 소설을 읽다가 이런 조마조마한 상황을 못 참으면 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확인해 버린다. 결말을 알고서 과정을 읽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편한 마음으로 읽고 싶어서.
마일라와 네샤트와 함께 위험한 탐사 업무를 수행하러 떠나는 태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나, 각자 또 서로서로 어떻게 대응해 가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오로지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가상 세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한 문장 한 문장씩 읽는 동안 내내 두근거렸다. 조마조마했다. 주인공인 태린이가 죽지는 않겠지, 아니다, SF에서는 죽을 수도 있겠다, 아니다, SF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죽음과는 다른 차원이 나타나곤 했으니 태린이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가도 할 수 있겠지, 도대체 태린이가 업무를 처리하러 나선 이 지상은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범람체라니, 미생물이라니, 의식이 흐르는 세상이라니.
연구일지 - 놀라웠다
태린이가 왜, 어떻게 파견자가 되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와 과정이 담겨 있는 부분이다. 과학자들의 연구라는 게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고 싶지는 않지만(찾아내는 답이 대체로 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에) 이 글을 통해서도 이럭저럭 그들의 노고를 헤아릴 수는 있다. 누군가는 연구를 해야 할 테니까. 사람을, 생명을 살리는 연구이든 그렇지 못한 연구이든.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한 연구가 아주 명확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3부 - 신비했다
사람의 생각 또는 의식이라는 것. 개인이 스스로의 의식 세계에 대해 알고 느끼고 있는 범위와 한계를 짚어 본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 생각과 네 생각. 내가 읽는 내 안의 생각과 내가 읽었다고 여기는 네 안의 생각들. 입장을 바꿔 보기도 하면서. SF 소설이나 SF 영화에서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잘도 등장하던데. 이게 상상 밖에서 가능한 일인지. 작가는 참으로 세심하고 아름답게도 상상해 놓았다.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길 정도로.
그리고 이 모든 길에 사랑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그리워하는 마음, 그와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 살아서든 죽어서든 서로의 영혼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 상상으로 세상을 확대시키는 재주와 능력은 사랑하는 힘마저도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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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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