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소설

책읽는베토벤
- 작성일
- 2024.8.19
피라네시
- 글쓴이
- 수재나 클라크 저
흐름출판
환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환상문학, 환상영화, 환상 어쩌고저쩌고.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빠져서 헛된 짓이나 하는 일이라고 여겨 왔다. 내가 이렇게 여기기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종사하고 있어서 좀 많이 쑥스러운 기분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이랬던 내 취향을 바꿔 놓는다. 그렇다면 이전에 내가 본 작품들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 혹은 내가 바뀌었거나.
이 사이트에서 필사 이벤트를 열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정하여 참여했고, 필사할 10군데를 집중해서 찾고 적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요즘 필사라는 작업은 일부러라도 하지 않으면 하지 않게 되는, 꼭 해야 할 때만 하게 되는 일이라 내게도 흥미로웠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창작이 아니라 단순히 보고 쓰고 그리는 일마저도 아무 때나 하지 않는다. 좋은 현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지만...
오로지 상상 속 공간을 마련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곳을 만들어 낼까? 나는 어떤 공간을 꾸며 낼 수 있을까?(지금 상태의 의식으로는 아무 공간도 만들어 내지 못할 듯하지만) 상상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산다. 상상도 창조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직접적인 경험이든 간접적인 경험이든 보고 겪은 바가 있어야 확장되고 심화된다. 거기에 결핍까지 느껴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난 결핍은 충분하게 가진 듯한데 뭐가 모자라나? 무엇이 모자라서 상상이 잘 안 되는 것일까?)
피라네시는 작가의 상상 속 공간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다. 상상이든 다른 차원이든 내가 또 다른 나로 살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멋지겠다. 두 공간을 왔다갔다, 오가는 것까지 인식할 수 있다면 더더욱. 지금 이곳의 현실이 고달프고 힘겨울수록 상상 속 내가 사는 곳은 현실과 반대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야 해보는 생각인데 공간이 달라진다고 해도, 상상 속이라고 해도, 그곳이 낙원이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거기도 거기대로 살기에 마냥 쉽지만은 않은 곳이지 않을까.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러하니까. 삶이 만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많은 방과 문과 벽들, 많은 조각상들, 계속 날아오는 새들, 넘쳤다가 빠졌다가 하는 바닷물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 글을 읽은 것만으로 내가 세운 공간이 작가가 그려 보이고자 한 공간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굳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을 테고, 내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피라네시를 사귀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만큼 제대로 세웠다면 좋겠다. 나로서는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색다른 공간은 아니고, 이런 공간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조각상들을 이제는 어떻게 마주하나 약간 긴장이 된다. 딱딱한 조각상이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 떨리는 기분이다.
#사락독서챌린지 #피라네시
이 사이트에서 필사 이벤트를 열고 있다. 나는 이 책으로 정하여 참여했고, 필사할 10군데를 집중해서 찾고 적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요즘 필사라는 작업은 일부러라도 하지 않으면 하지 않게 되는, 꼭 해야 할 때만 하게 되는 일이라 내게도 흥미로웠다. 손으로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 창작이 아니라 단순히 보고 쓰고 그리는 일마저도 아무 때나 하지 않는다. 좋은 현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지만...
오로지 상상 속 공간을 마련해 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곳을 만들어 낼까? 나는 어떤 공간을 꾸며 낼 수 있을까?(지금 상태의 의식으로는 아무 공간도 만들어 내지 못할 듯하지만) 상상이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주 잊고 산다. 상상도 창조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직접적인 경험이든 간접적인 경험이든 보고 겪은 바가 있어야 확장되고 심화된다. 거기에 결핍까지 느껴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잘 할 수 있지 않을까?(난 결핍은 충분하게 가진 듯한데 뭐가 모자라나? 무엇이 모자라서 상상이 잘 안 되는 것일까?)
피라네시는 작가의 상상 속 공간에 사는 사람의 이름이다. 상상이든 다른 차원이든 내가 또 다른 나로 살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일은 멋지겠다. 두 공간을 왔다갔다, 오가는 것까지 인식할 수 있다면 더더욱. 지금 이곳의 현실이 고달프고 힘겨울수록 상상 속 내가 사는 곳은 현실과 반대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제야 해보는 생각인데 공간이 달라진다고 해도, 상상 속이라고 해도, 그곳이 낙원이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어쩌면 거기도 거기대로 살기에 마냥 쉽지만은 않은 곳이지 않을까. 산다는 것 자체가 그러하니까. 삶이 만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많은 방과 문과 벽들, 많은 조각상들, 계속 날아오는 새들, 넘쳤다가 빠졌다가 하는 바닷물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생물들. 글을 읽은 것만으로 내가 세운 공간이 작가가 그려 보이고자 한 공간과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겠다. 굳이 같아야 할 필요는 없을 테고, 내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에, 피라네시를 사귀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만큼 제대로 세웠다면 좋겠다. 나로서는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색다른 공간은 아니고, 이런 공간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조각상들을 이제는 어떻게 마주하나 약간 긴장이 된다. 딱딱한 조각상이 우리 자신의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만으로 떨리는 기분이다.
#사락독서챌린지 #피라네시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