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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5.6.21
러브 모노레일
- 글쓴이
- 윤여경 저
황금가지
출판사 황금가지는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하기도 하거니와 한국 판타지의 거장인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등을 출간한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민음사의 계열사이기도 한 황금가지는 이렇듯 외국 장르 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고, 이영도 작가의 작품과 같이 한국 판타지를 출간하기도 한 장르 문학의 모태라고도 말해 볼 수 있을 겁니다.
소설 플랫폼 브릿G는 황금가지가 장르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서 운영하는 플랫폼입니다. 브릿지에서는 매년 다양한 주제로 공모전을 엽니다. 로맨스 소설, 신체 강탈자, 좀비 등 다양한 주제의 공모전을 개최하면서 장르 문학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올해로 7회를 맞이한 공모전이 바로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입니다.
『러브 모노레일』은 타임 리프 소설 공모전의 1,2회 수상작 모음집입니다. 윤여경, 지현상, 김용준, 차태훈, 조예은, 윤태식의 여섯 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윤여경의 「러브 모노레일」은 엇갈렸던 사랑을 나눈 과거의 연인들과 타는 모노레일이 등장합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모인 옛 연인들은 인종도, 나이도, 직업도, 외모도 다르지만 단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 달달한 상태라는 점입니다. 자신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하면서 소동이 벌어집니다. 이 애틋하지만 동시에 혼돈으로 가득한 모노레일의 종착역은 과연 어디일까요?
지현상의 「그날의 꿈」은 루프물입니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애인이 목숨을 잃은 사고가 일어난 날의 꿈을 반복적으로 꾸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꿈을 통해 현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타임리프와 루프를 심도 깊게 다룬 애니메이션 <슈타인즈 게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이 흥미진진한 스토리의 결과는 사뭇 진지합니다. 선택과 결과,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훌륭하게 서사로 빚어낸 작품입니다.
김용준의 「세이브」는 게임 속 기능인 ‘세이브’, 즉 ‘저장하기’와 ‘불러오기’를 차용한 독특한 타임리프 물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은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수능을 망친 수험생이라면 오늘 아침으로 돌아가 수능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이런 바람을 갖게 되는 것이죠. 물론 내년에 수능을 볼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1년이라는 시간을 더 쏟아부어야겠죠. ‘세이브’ 능력은 바로 시행착오의 기회를 무한정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대가도 없이 말이죠. 하지만 그게 정말 행운일까요?
차태훈의 「어느 시대의 초상」은 이 환상성 가득한 앤솔로지 작품집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시간 이주’라는 탁월한 발상을 통해 전개되는 작품은 어째서인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파고드는 것만 같습니다. 미래를 위해 현재에 빚을 지고, 그 빚을 갚기 위해 과거로 이주하는 이들의 여정은 어쩐지 우리의 인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칵테일, 러브, 좀비』로 이미 대세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예은의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하나의 시간 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가정 폭력에서 비롯된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현재의 고통을 막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타임슬립, 타임리프, 루프 등 다양한 용어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시간여행은 단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소설은 <도라에몽>의 ‘하나의 시간선’ 설정을 채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설정의 관건은 현재의 인물이 과거로 돌아가 주는 영향을 설정 구멍 없이 이야기 속에 녹여낼 수 있느냐입니다. 조예은 작가는 훌륭한 솜씨로 구멍이 없는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후에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윤태식의 「별일 없이 산다」는 주사위를 사용해 ‘점괘’를 보고 자신에게 이로운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또한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아 ‘후회’를 하게 되면, 시간 자체를 되돌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내용인 것 같지만, 후반부에 드러나는 요소들은 기존의 타임리프물들이 보여준 내용과는 다소 결을 달리하는 신선함을 줍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다양한 색깔을 지닌 작품들을 읽고 나면 하나의 생각이 가지런히 떠오르게 됩니다.
인생은 단 한 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선택에 신중을 기합니다. 하지만 선택의 결과는 언제나 미래에 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과거에 내린 선택에 미련과 후회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그날 이런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보편적이고도 원초적인 욕망 때문에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는 오랜 세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게 아닐까요?
이 소설집을 다 읽고 종착역에 다다르면,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 종착역은 어쩌면 이런 이름을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Tenet)>의 주제의식이기도 한 문장이죠. 이 뒤에 다음 문장을 달고 싶습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현재를 살아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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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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