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 잘 봤어요~

저기요..
- 작성일
- 2010.8.18
허클베리 핀의 모험
- 글쓴이
- 마크 트웨인 저
펭귄클래식코리아
나는 분명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알고 있는 줄 알았다.
분명 그렇게 믿었다.
그렇게 믿고 머리를 식힐겸, 표지 속의 아이도 오랜만에 만날 겸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모르고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톰소여, 빨강머리 앤과 더불어 우리의 친구였던 허클베리 핀.
그의 모험기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으로 교묘히 19세기 후반의 미국사회에 대한 모습에 대한 풍자와
노예제도에 대한 격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결코 머리를 식히기 위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얼마 전의 미시시피 강 유역의 작은 마을.
허크 핀은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몰래 빠져나가 혼자 모험을 할 계획을 짜고
멋지게 성공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만난 도망노예 검둥이 짐.
허크와 짐은 결국 함께 뗏목을 타고 모험을 떠나게 된다.
이 여행은 짐으로서는 자유를 찾아 떠난 목숨을 건 여행이었다.
언제든 백인들의 손에 잡히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이 여행길의 허크와 짐은 그런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천하태평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일 것이다.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 아직 진지하게 세상의 무서움을 겪어보지 않은.
그래서 그런지 허크는 상당히 쿨하다.
여과없이 세상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세상에 온 몸과 온 마음으로 반응한다.
허크의 눈을 통해서 재해석되는, 어른들의 눈으로는 당연했던 것들에 대한 비틀기가 더욱 와닿는다.
또한 소년이 주인공이기에 이 소설은 상당히 진지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음에도
그 진지함을 교묘하게 소년들의 장난기 속에 감추어둘 수 있다.
그 장난기 속에 가장 진득하게 감추어져 있는 것은 바로 노예제도이다.
사람이 같은 사람을, 특히 프랑스어도 아닌 같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당연히 사람취급하지 않는 사회.
그것에 대한 거리낌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회.
부리는 사람이나 부림당하는 사람조차 그것을 너무 당연시 하는 사회.
특히 이 소설에서는 나쁜 어른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 노예제도에 대한 비판을 더욱 극으로 몰아넣는다.
이 소설의 어른들은 모두 착하다.(사기꾼들은 제외하자)
모두 길을 헤매는 낯선 허크 핀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고 노예를 학대하는 어른 또한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른들은 노예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의구심도 가지지 않는다.
노예들을 괴롭히지는 않을지언정, 메리 제인처럼 노예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가슴아파할지언정
그들을 자유의 몸으로 풀어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그런 생각은 가져본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쁘기 때문에 노예제도가 존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번도 노예제도의 당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결심을 허크 핀은 맞이하게 된다.
자신이 하는 일이 나쁘고, 지옥에 가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숨을 멈추고는 잠시 곰곰이 생각한 끝에 결심했어.
'그래 좋아. 그렇다면 난 지옥으로 가야지.' 그리고 편지를 박박 찢어버렸어. p327
그리고 그런 노예제도와 비슷한 관계는
허크 핀과 그의 아버지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허크 핀의 아버지에게 허크 또한 노예와 다를 바가 없다.
허크는 6000불의 거금을 가지고 있으며 어쨌거나 허크 핀은 아버지의 소유다.
마크 트웨인은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며 폭력만을 일삼는 아버지에게서 탈출하는 허크 핀의 모습을 모험의 시작으로 삼으면서
어쩌면 이 노예제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미리 말하고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그 외에도 다양한 19세기 중엽과 후반 미국사회의 재미난 모습들을 보여준다.
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가문과 가문간의 결투와 살인. 그리고 그것의 당연함.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던 미신과 마녀들에 대한 이야기.
미시시피 강을 따라 다니는 증기선들.
마을을 떠돌며 설교, 공연 등의 사기를 치는 '왕'과 '공작' 같은 사기꾼들까지.
허크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다.
그 당시 미국사회의 모습들을 허크의 눈으로 담아내며 재기발랄하게 토해낸다.
이 소설만으로도 당시 미국 남부 지방의 삶이 어떠했는지가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 점 또한 이 소설이 소년이 떠나는 모험담으로 가질 수 있는 좋은 점이다.
그런데 반대로.
소년이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점들이
결말로 치달을수록 단점으로 다가온다.
소년 소설의 명명백백함이라고 해야할까?
이 소설의 결말로 치달을수록 짐의 안위는
분명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해야하거늘
그런 긴박함은 찾아볼수가 없다.
오히려 짐의 안위는 톰과 허크의 장난기로 더욱 위기를 맞는다.
'왕'과 '공작'은 분명 극악무도한 사기꾼이지만
거짓말도 제대로 못하는 허크에게 잘도 속아넘어갈만큼 순진하다.
검둥이 짐을 가둔 샐리이모네 식구들은 짐을 가두기만 했을 뿐
손님으로 접대하는 것인지 모를만큼 그 대접이 후하다.
악당이 악당이 아닌 모습은 소설 초반 톰과 허크가 친구들과 모여
갱을 만들자고 하고 소꿉놀이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사실상 이 소설은 허크 핀이 검둥이 짐을 구하고자 마음먹은 순간 절정에 도달하여
허크 핀이 찾아간 집이 톰소여의 이모네 집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 (허크 핀의 둘도 없는 친구 톰소여의 친척들인데 악당일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또한 결국 짐을 풀어주게 되는 것은 허크 핀에 의해서가 아니다.
짐은 이미 그의 주인이었던 왓슨 아줌마에 의해서 해방을 맞는다.
허크와 짐의 눈물겨운 투쟁은 부질없는 것이었으며 짐의 자유는 그의 주인이 하사한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너무도 당연한 것에 대한 위험한 도발에 대한 아주 좋은 마무리이자
노예제도와 미국의 모습을 풍자하기 위해서는
소년이 주인공인 것이 더 없이 좋은 선택이 되었지만
그것이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 소설의 발목을 잡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점이
너무나도 좋게 읽은 이 소설의 결말로서는 살짝 아쉽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오랜만에 가벼운 책 좀 보면서 머리좀 식히자는 나의 어줍잖은 생각은
이미 허크 핀이 짐을 만나면서부터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대체 왜 헤밍웨이는 이런 소년의 모험담 이야기를 가지고 미국현대문학을 탄생시켰다고 했을까.
이제는 그 이유를 너무도 잘 알 것 같다.
너무나 익숙해서 몰라도 아는 것만 같은, 결말까지도 명랑한 허크 핀의 이야기 속에서
그 명랑함을 간직한 채 하고 싶은 얘기를 은근슬쩍, 그러나 우직하게 꺼내는.
아직도 허크베리 핀의 모험은 이미 어릴 때 봤다고, 다 알고 있다며
굳이 나이 먹고 그런 아이들 얘기를 봐야하냐는 사람이 있다면.
넌 아직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모른다고
얼른 다시 그들의 여행을 따라가보라고 등을 떠밀,
아니 나와 같이 가보자고 함께 오르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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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