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다가

march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3.4.23
다만 무언가를 먹는 일이 그것을 잘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사인
시인의 시 [먹는다는 것] ( 어린 당나귀 곁에서, 창비, 2015 ) 에 이런 구절이 있다. -p65
(굴을 사랑해서 벌어진 일 · 굴 중에서 )
선물 받았던 [어린 당나귀 곁에서]가 생각나서 오랜만에 꺼냈다. 전문을 읽어보고 싶어서.
먹는다는 것
김사인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
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
는 의욕.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그러므로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 모든 구애가 그렇듯이
밥이건 고기건 사람이건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 죽음처럼 아찔한 것 길고 황
홀한 키스 먹는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 새 자동차를 장
화를 장미를 새끼 고양이를 향해 눈이 빛나는 것 같이 있고
싶다는 것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
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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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