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march
- 작성일
- 2020.1.30
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 글쓴이
- 마리즈 콩데 저
은행나무
마녀 재판이라고 하면 중세시대에서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692년 미국의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에서 마녀 재판이 일어났다. 이 마녀재판은 영화로도 제작되어진 적이 있었고, 많이 알려져 있는듯 했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종교의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몰아 죽인 사건으로, 약 5개월 동안 25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세일럼 마녀재판은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흔치 않는 미국의 흑역사중 하나이자 미국 종교사 최악의 흑역사로 전해진다고 한다.
세일럼 마녀재판에서 재판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는 흑인 노예 티투바가 있었다.
그토록 많은 이에게 글 쓸 거리를 제공하고 미래 세대의 호기심과 동정을 자아내고 어리숙하고 야만스러운 시대를 가장 정확하게 증언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이 세일럼의 마녀 재판에서, 내 이름은 그저 별 볼 일 없는 하수인의 이름인 것처럼만 등장하리라. 이곳저곳에서 "앤틸리스 제도 출신이고 '후두'(아프리카에서 들어와 미국 남부에서 행해졌던 '액신'을 말한다.)를 진짜로 행한 노예"라고 언급하리라. 사람들은 내 나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심이 없으리라. 사람들은 나를 모르리라.-p 179
마녀 재판에 회부되었던 백인들에 관해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쏟아졌지만 흑인이었던 티투바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그녀에게 작가는 생명을 부여했다. 티투바의 삶은 어땠을까?
티투바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아베나의 딸로 태어났다. 영국 선원에게 강간을 당해 태어난 티투바는 아베나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양아버지 야오는 티투바를 사랑했다. 이후 엄마와 아빠를 모두 잃은 티투바는 만 야야라는 여인의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그녀로부터 많은 식물들의 사용법을 배웠고, 주술을 통해 그 효능을 증폭시긴 약제나 물약도 조제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살아 있음을, 모든 것에 영혼이 있고 숨결이 있음을 알려줬다. 그리고 모든 것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도. 인간을 말을 타고 자신의 왕국을 돌아보는 주인이 아니라는 것도. -p 22
만 야야는 티투바에게 실용적인 것들도 가르쳤지만 살면서 많이 힘들테지만 살아남을거라는 말로 꿋꿋이 살아나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고, 죽은 이후에도 엄마 아베나, 양아버지 야오와 함께 영혼의 모습으로 곁에서 힘이 되어 주었다. 엄마,아빠, 만 야야는 주위에 함께 있었기에 혼자가 아니었고, 자신들의 존재로 압박하지도 않았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티투바의 말을 듣다보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티투바가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살던 공간을 벗어나 노예들을 만났고, 병든 그들과 죽어가는 자들의 기력을 북돋아주었다. 자신의 능력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티투바는 절대로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고, 주체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존 인디언이라는 인디언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그가 노예로 있는 수재나 엔디콧이라는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병이 났는데 티투바가 마술을 써서 자신을 아프게 했다고 복수를 다짐하며 존 인디언과 티투바를 새뮤얼 패리스라는 목사에게 주어버렸다. 목사라고 하면 사람들을 위해 희생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입만 열면 질책과 훈계가 쏟아지는 광신도적인 모습,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새뮤얼 패리스의 아내와 딸 벳시는 다정다감했기에 그녀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어느 날 딸 뱃시와 패리스의 조카 애비게일은 티투바를 보고 발작을 일으켰고, 티투바의 주술 때문에 악령이 씌었다고 했다. 법정에 출두해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공범들을 고발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 티투바는 결국 법정에 서고, 감옥에 갇혔다. 마녀로 몰아가는 과정은 참으로 억지스러웠다. 그녀의 진심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단지 흑인 노예라는 이유로 더 심한 대접을 받아야했던 티투바였지만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 당당하게 느껴졌다. 비굴한 모습이 아니었다. 감옥에서 그녀는 간통죄로 잡혀온 헤스터라는 여인을 만났다. 티투바는 남자와의 사랑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편이지만 헤스터는 달랐다.
"책을 쓰고 싶어, 하지만 어쩌면 좋아! 여자는 글을 쓰지 않아! 남자만 글을 써서 우리 여자를 진력나게 만들지. 물론 어떤 시인들은 예외로 치겠어. 밀턴 읽어봤니, 티투바? 아, 잊어버렸다. 넌 글을 읽을 줄 모르지! <실낙원>, 티투바, 그건 정말이지 최고야······! 그래, 난 여자가 다스리고 통치하는 사회 모델을 제시하는 책을 쓰고 싶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이름을 줄 거고, 우리 애들은 우리끼리 키울 거야 ······."- p 165
티투바는 사랑을 너무 좋아해서 절대 페미니스트로 만들지 못하겠다며 유쾌하게 얘기했던 헤스터는 결국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 못한 채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사회적 약자로 아직도 많은 차별에 노출되어 있는 여자의 삶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헤스터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같았다.
후에 사면이 되어 살아남았고, 그런 그녀는 포르투칼 출신이었지만 종교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를 거쳐 아메리카에 정착한 유대인인 벤저민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행복한 생활을 유지하던 중 유대인을 저주하는 사람들로 인해 아이들을 모두 잃고 그녀에게 자유를 주고 유대인은 떠났다. 유대인의 역사를 보면 결코 평탄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 이 모든 일은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 사람들이 이문이 남는 앤틸리스제도와의 교역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고 싶어 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늘 그렇듯이 사람들은 우리의 재능을 두려워하고 증오하니까." -p 214
티투바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반란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사를 앞 둔 날에 티투바는 엄마 아베나, 야오, 만 야야를 불러내 대화를 나누었다. 계획하고 있는 반란에 대한 의견을 구했지만, "검둥이의 불행에는 끝이 없다."라는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미국에 사는 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작가의 생각이 이 문장에 담겨있는 것같았다. 배반한 사람이 있어 반란은 실패로 돌아가고 곁에 있던 자신도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녀의 이승에서의 삶은 이렇게 끝이 나버렸다. 하지만, 작가는 영혼의 모습으로 티투바를 살려냈다. 영혼으로 새 생명을 부여받은 티투바는 자유로웠을까?
세이럼의 마녀재판에 대한 정보들을 읽어보았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자신이 관련이 없는 일일때는 얼마나 무관심하며 방관자가 될 수 있는지 인간의 잔인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중세부터 마녀재판으로 목숨을 잃은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고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저자가 살려낸 티투바의 모습은 그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변화시킨 것은 하나도 없었고, 영혼의 모습으로 자신이 원하던 것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2018년 대안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로 [ 정확하고도 압도적인 문장, 파괴와 폭력을 그려내면서도 인간의 연대와 따뜻함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라고 밝히고 있었는데, 이 문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불합리한 일인만큼 잔인한 면들을 많이 만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잔인한 장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 장면조차 많은 동요없이 그 장면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티투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었는데, 티투바의 말과 생각이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담고 있는듯해서 소설이 전하는 바가 더 잘 다가왔던 것같다.
"티투바 이야기를 쓰는 것은 현재 미국 사회에 대한 나의 느낌을 표현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편협함, 위선, 인종주의에 있어서 청교도주의 시대 이후로 거의 변한 점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어디 미국 사회뿐일까? 글로벌한 시대인 지금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일 것이다. 티투바의 영혼이 지금 우리 세상을 보면 뭐라고 말할까?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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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