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

march
- 작성일
- 2023.8.22
호퍼의 빛과 바흐의 사막
- 글쓴이
- 김희경 저
한경arte
저자의 전작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을 재미있게 읽었기에 출간 소식을 듣고 주저없이 읽게 되었다. 전작을 읽었음에도 구성 방식은 잊은채 화가들의 작품과 음악을 연결시켜두었을 거라고 착각했다. 17명의 음악가, 22명의 미술가, 총 39명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들려주는데, 그들 사이에 연관성은 없고 독자적인 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미술이나 클래식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많이 접한 예술가들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내가 모르고 있던 새로운 사실,새로운 관점등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
몇 년 전 자코메티 전시회에서 <걸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위태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러지지 않을까? 자코메티의 그러한 작품은 '인간의 실존은 연약한 것이며, 죽음에 의해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라는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사상이 표현된 것이라고 한다. 삶이라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나는 걸어야만 한다'라는 자코메티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한 삶이지만 우린 멈출 수 없다는 것, 그의 작품은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작품이 위태롭게 보이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당당함으로 보였고, 저자의 바램대로 자코메티의 말은 작은 위로로 다가왔다.
<자코메티,가리키는 남자,1947,뉴욕 현대미술관>
바흐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고 유명한 곡들도 많지만, 그다지 그의 곡을 들어보고 싶다거나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라고 알려져 있다는 글렌굴드가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여생을 보내야 하는데 단 한 작곡가만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해야 한다면 , 틀림없이 바흐를 선택하겠다. '고 했다는 말을 들으니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바흐의 음악이 너무 너무 궁금해졌다. 브람스는 '바흐를 공부하라.거기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라고 했고, '평균율', '대위법'과 같은 바흐에 의해 발전된 기교들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에 문외한인 나조차도 왜 바흐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목만 알고 있던 <무반주 첼로 모음곡>,<G 선상의 아리아>,<골드베르크 변주곡>를 들으면서 바흐에 대해 좀 더 알아가보고싶다.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의 작곡가인 로시니는 어릴 때부터 게으르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른 성공으로 빨리 은퇴하고 음식을 좋아해서 직접 요리를 배워 요리책까지 썼다고 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시대의 흐름과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알았기때문이라고 했다. 시대를 읽어내는 것이 성공으로 다가가는 지름길임은 현대도 마찬가지 아닐까?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 죽다]를 읽으려는 시점에 구스타프 말러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5번4악장 아다지에토>가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 사용되었다고 했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책을 읽은 후 들은 곡은 책의 분위기에 너무 잘 어울렸다. 아내의 불륜으로 고통 받았던 말러의 마음이 느껴기도 했고,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어려운 사랑.
말러는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과 사랑, 죽음, 자연까지 여러 주제를 교향곡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 안의 개별 악장에도 일종의 소우주를 담아냈던 것 같습니다. <교향곡 5번 4악장>엔 사랑이라는 하나의 단어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였죠.-P 292
레너드 번스타인은 지휘자로서만 알고 있었는데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자임을, 장 미셸 바스키아와 앤디워홀이 돈독한 사이였음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난해했지만 소꿉친구와 결혼해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주 접하는 예술가들이지만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즐거운 시간이었다. 39명의 예술가를 다루다보니 깊이있게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 단점일 수도 있지만, 평소에 관심은 가는데 막상 접근하려니 어렵게 느껴졌던 독자에게는 좋은 입문서가 될듯했다. 예술가들의 삶을 볼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무언가를 이루어 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 그렇게 이루어 낸 것이기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게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맘에 들어오는 것은 또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그것이 예술의 힘이 아닐까싶다.
<마그리트, 인간의 아들, 1964,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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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