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다크타워
- 작성일
- 2007.11.2
외딴집 (상)
- 글쓴이
- 미야베 미유키 저
북스피어
아이가 있습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바보라는 뜻의 이름, 호가 지어졌습니다. 짐짝처럼 노인의 집에 맡겨졌고, 야비한 이유로 다시 불려가지만 결국 버려집니다. 의원 가문인 이노우에 가에 거둬져서 행복해지나 했는데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순진무구해서 바보처럼 보이는 아이는 그 깨끗한 눈으로 복잡하고 지저분한 어른들의 세계를 차분하게, 때로는 울먹이며 지켜봅니다.
어른이 있습니다.
그는 에도 시대 일본을 통치했던 쇼군의 최측근으로 요직에 중용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독살하고, 가신을 베어죽이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악령, 귀신으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악령을 무서워하는 쇼군은 그를 죽이지 못하고 가둬두기만 합니다. 결국 어른은 아이가 사는 마을, 마루미 번으로 유배가 됩니다.
살아 있는 악령인 가가 님을 떠맡아야 하는 마루미 번은 괴롭습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쇼군의 불호령이 떨어질 테고, 그렇다고 죄인인 그를 지극정성으로 모실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까요. 마루미 번은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여 가가 님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헌데 아직 그가 오지도 않았는데 살인이 일어나고, 불길한 징조들이 줄줄이 발생합니다. 그 파장은 가가 님과 아무 상관없는 호에게까지 밀려옵니다.
그리고 아이와 어른이 만납니다.
가가 님가 호는 외딴 섬 같습니다. 그들이 외딴집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 마루미 번은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집은 봉건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입니다. 글을 읽다보니 이 작품보다 훨씬 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가 생각났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근대와 전근대의 인습이 충돌해서 비극이 발생합니다. 외딴집은 봉건체제 때문에 비극이 발생하죠. 상황은 외딴집 쪽이 훨씬 더 심각해 보입니다. 긴다이치 쪽은 근대라는 희망이 있지만 외딴집은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끝의 안도감은 외딴집 쪽이 더 낫습니다. 긴다이치는 진즉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 같은 뻘소리를 해대지만 외딴집은 존재로서 희망을 보여주니까 말입니다.
전 글을 읽을 때 누군가를 응원하면서 읽습니다. 그런 식으로 읽으면 글이 훨씬 재밌어지거든요. 외딴집에서도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마조마 했습니다.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서 말이죠.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외딴집의 사건은 비극적이고 현실은 서글픕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안고 살아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사는 게 이기는 겁니다.
외딴집의 저자 미야베 미유키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계속 쓸 테니 외딴집을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말은 할 수 있습니다. 호와 같이 마루미 번을 여행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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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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