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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0.10.18
내려올 때 보았네
이윤기 저 | 비채 | 2007년 10월
1. 이윤기 하면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가 그 다음으로는 장미의 이름이 떠오른다. 이는 이윤기를 대표하는 저작들임과 동시에, 이윤기의 두 가지 직업을 대변해 준다. 하나는 (신화 저작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 소설가로써의 이윤이이고, 또 하나는 번역가로써의 이윤기이다. 소설가로써의 이윤기와 번역가로써의 이윤기, 양쪽 모두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올해 들려온 그의 부고는 아쉬웠다.
2. 일반적으로 에세이 하면 쉽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시나 소설에 비해서 손쉽게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글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을 봐도 그렇다.
에세이를 넓게 보면 내가 이렇게 책을 읽고 쓰는 글도, 여러분들이 인터넷에 올리는 글들도 에세이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는 에세이가 쓰는 사람도 비교적 쉽고 편하다는 뜻이다. 이는 작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편애하는 정이현 같은 경우에는 에세이 (그녀는 산문이란 표현을 썼지만.)를 쓰면서 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견뎌냈다고 말했다.
쓰는 사람도 편하게 쓰고, 읽는 사람도 편하게 읽는 에세이는 그렇기 때문에 높은 전달력을 갖는다. 쓰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쓰기를 원하며, 읽는 사람들도 그런 것을 원한다. 소위 말하는 평론가들은 싫어할지 모르지만, 그렇다. 에세이는 가벼우니깐 좋은 거다.
1+2. ‘내려올 때 보았네’는 이윤기의 산문집 (에세이 모음집)이다. 읽으며 느낀 것은 죄송스럽게도 산만함이었다. 이 책, 전체적인 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제가 중구난방으로 튄다. 일본과 베트남을 이야기 할 때는 그나마 일관성을 갖지만, 그 외의 챕터에서는 이런 저런 주제를 두서없이 늘어놓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좋았다. 주제는 중구난방으로 튈지언정 산문 하나하나의 완결성은 뛰어났으며, 때로는 생각하지 못한 통찰에 무릎이나 가슴을 칠 때도 상당히 많았다. 살아온 세월 고민한 세월이 많았기 때문에, 각을 잡고 하나의 주제를 주욱 풀어보는 것 보다는 생각나는 데로 다양하게 말해보는 게, 글을 읽으며 조언을 구하는 입장에서는 더욱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교훈 적인 내용만 가득한 것도 아니다. 이윤기는 이 책에서 자신의 지난 과오도 솔직하게 말하고, 재미있었던 일화도 소개한다. 가슴 훈훈한 이야기도 있다. 인상에 남은 것들을 몇 가지 꼽아보면, 동네 꼬마가 유명 작가인걸 알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러 가자고 이야기 (꼬마의 부탁이니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는 거절한다.), 손님이 오전에 방문하는 걸 거북해 할까봐 약속 시간 10분 전에 문을 열어놓았다는 이야기 (그런데 일찍 도착한 손님도 이른 시간에 도착하면 이윤기가 거북할 까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식적인 삶을 살아보라던 제논의 촌철살인 이야기 등을 꼽고 싶다.
너무 자주 쓰면 재미없으니 한 10년 뒤 쯤에 에세이 모음집을 하나 더 냈으면 어땠을까? 하긴 그렇게 생각해봐야 가슴만 아플 뿐이다.
그리고. 책의 들어가는 말의 제목은 ‘나의 노래를 부르면 되는 것이다.’이다. 그리고 5장의 제목은 ‘명창들 앞에서 노래 부르기.’이다. 두 글 모두 문자 그대로 잘 하는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즐겁게 즐겨보자는 취지의 글이다. 그런데 들어가는 글을 워낙 감동적으로 읽었는지 5장에 무척 큰 기대를 했다. 이 주제로 한 장이 이뤄졌을까 하고 말이다. 문제는 5장에서 이 주제의 글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앞에서 별 시덥지도 않게 주제가 중구난방으로 튄다고 트집 잡은 건 기대가 충족되지 않은 아쉬움에 나오는 꼬장이다.
그래도, 두 개의 글로도 얻은 것이 있다. 출판을 하는 작가는 물론이요, 인터넷 세상에만 봐도 글을 치고 넘치게 쓰는 사람이 많다. 그런 세상에서 나의 글은 얼마나 가치를 갖는 것인가?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의 글 솜씨를 온전히 보여준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도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내가 좋아서 쓰겠다는데 누가 무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글이란 계속 써야지 느는 법이 아니겠는가? 또 누가 알까. 어느 날 갑자기 제법 읽을 만한 글을 써내려 갈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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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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