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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oohyun
- 작성일
- 2000.3.19
오래된 미래
- 글쓴이
-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저
녹색평론사
책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시 해야겠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 년 전 시작했었던 시골에서의 생활은 실패로 돌아갔다. 우선 시골에는 각종 농산물, 즉 먹거리가 풍부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은 자신이 재배하지 않는 대부분의 곡물과 야채들은 시장에서 구입해서 먹고 있었으며 가격은 대도시의 대형 마트 혹은 백화점 식품점 보다 비쌌다. 더구나 장이라도 한번 보기 위해 멀리 읍내까지 나가려면 하루에 몇 대 안 되는 버스를 기다려서 나가야 했고 그것도 낮시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주파수도 잘 잡히지 않았고, 근처에는 비디오 대여점도 없었던 바 문화생활(?)은 불가능했다. 결국 전화선으로 연결한 인터넷에만 매달려서 살던 나는 일 년 만에 시골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다. 목가적인 낭만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시골공동체를 경험해보고 싶었던 내 희망사항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미 도회지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골생활을 정리할 즈음 어느 신문에서 서점주인들이 권하는 책 중 하나로 꼽힌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단순한 호기심에 구해서 읽게 되었다. 꾀죄죄한 겉포장(아마 재생용지로 만들어서 그러하리라 생각한다.)에 비해 내용은 실팍했다. 첫 느낌은 놀라움과 부끄러움이었다. 내 시골생활에 대한 투정은 글자 그대로 투정에 불과했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시각으로 시골공동체를 바라보았던가. 경쟁주의와 개인주의에 매료되어 있는 채로는 결코 과거의 라다크 사람들처럼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명확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티벳의 라다크 지방에서 십육 년간 생활한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라-호지가 쓴 생생한 보고서인 이 책의 핵심메세지는 '반개발'이다. 즉 지역적 다원주의의 인정과 공동체적 가치관의 회복 그와 함께 환경의 보존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분쟁을 모르고 살던 라다크 지방 사람들, 항상 웃고 여유로우며 가족 안에서 남녀노소가 평등한 삶을 누리던 사회, 자신들이 처한 자연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급자족하며 살던 사회는 막대한 서구 자본의 유입과 서구식 개발에 휩쓸리며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과거의 라다크는 좋은 것이고 현재는 나쁜 것이라고 매도하지만은 않는다. 과거에 비해서 분명히 편리해진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얻는 것에 비해 잃은 것이 많고 그 잃은 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들이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것으로서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을 들고 있다. '자연과 하나인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회복시키자는 것! 말이다.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만 보고 초조하게 달려가는 사람들로서는 이 책 저자의 주장을 접하게 되면 크게 뒷통수를 맞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딜레마에 빠졌다. 이미 서구적 개발의 논리에 식민화되어버린 내 의식으로는 과연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백여 년 전 라다크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을 겪었다. 우리가 서구화되는 과정에서, 또한 자본의 논리에 침식당해가는 과정에서 얻은 것과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이미 붕괴되고 흔적만 남아있는 우리의 농촌에서 마땅히 보존시켜야 했을 전통적 가치들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나는 일년동안 오지 마을에 살면서 생활의 불편함 이외에도 시골사람들의 간섭이나 무례함이 더 견디기 힘들었었다. '정'이나 '관심'이 참견 혹은 사생활 침해로만 여겨졌었다. 도시에서 살면서 실패해왔었던 인간관계에 대한 피해의식은 내 안에 단단한 방어막을 만들고 있었고 이미 그 속에서 공동체적 가치관은 붕괴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얼마남지 않은 내 시골생활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는 도시에서 바쁘게 맞벌이해서 살면서 두 아이의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누이에게 선물로 주어야겠다.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인 양육관은 오늘날 한국의 젊은 어머니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임을 확신한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아직 하늘에 닿아보려고 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다시 내려오고 있다. "그 위는 텅 비어있어." 라고 말하면서.
- 게롱 팔단, 마을의 모임에서, 1990년
텔레비젼이나 라디오 주파수도 잘 잡히지 않았고, 근처에는 비디오 대여점도 없었던 바 문화생활(?)은 불가능했다. 결국 전화선으로 연결한 인터넷에만 매달려서 살던 나는 일 년 만에 시골생활을 청산하기로 결심했다. 목가적인 낭만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시골공동체를 경험해보고 싶었던 내 희망사항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이미 도회지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던 나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골생활을 정리할 즈음 어느 신문에서 서점주인들이 권하는 책 중 하나로 꼽힌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를 단순한 호기심에 구해서 읽게 되었다. 꾀죄죄한 겉포장(아마 재생용지로 만들어서 그러하리라 생각한다.)에 비해 내용은 실팍했다. 첫 느낌은 놀라움과 부끄러움이었다. 내 시골생활에 대한 투정은 글자 그대로 투정에 불과했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시각으로 시골공동체를 바라보았던가. 경쟁주의와 개인주의에 매료되어 있는 채로는 결코 과거의 라다크 사람들처럼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명확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티벳의 라다크 지방에서 십육 년간 생활한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라-호지가 쓴 생생한 보고서인 이 책의 핵심메세지는 '반개발'이다. 즉 지역적 다원주의의 인정과 공동체적 가치관의 회복 그와 함께 환경의 보존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분쟁을 모르고 살던 라다크 지방 사람들, 항상 웃고 여유로우며 가족 안에서 남녀노소가 평등한 삶을 누리던 사회, 자신들이 처한 자연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급자족하며 살던 사회는 막대한 서구 자본의 유입과 서구식 개발에 휩쓸리며 위기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과거의 라다크는 좋은 것이고 현재는 나쁜 것이라고 매도하지만은 않는다. 과거에 비해서 분명히 편리해진 것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얻는 것에 비해 잃은 것이 많고 그 잃은 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더 중요한 것들이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것으로서 '더불어 행복해지는 것'을 들고 있다. '자연과 하나인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회복시키자는 것! 말이다.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만 보고 초조하게 달려가는 사람들로서는 이 책 저자의 주장을 접하게 되면 크게 뒷통수를 맞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딜레마에 빠졌다. 이미 서구적 개발의 논리에 식민화되어버린 내 의식으로는 과연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시 백여 년 전 라다크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을 겪었다. 우리가 서구화되는 과정에서, 또한 자본의 논리에 침식당해가는 과정에서 얻은 것과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이미 붕괴되고 흔적만 남아있는 우리의 농촌에서 마땅히 보존시켜야 했을 전통적 가치들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나는 일년동안 오지 마을에 살면서 생활의 불편함 이외에도 시골사람들의 간섭이나 무례함이 더 견디기 힘들었었다. '정'이나 '관심'이 참견 혹은 사생활 침해로만 여겨졌었다. 도시에서 살면서 실패해왔었던 인간관계에 대한 피해의식은 내 안에 단단한 방어막을 만들고 있었고 이미 그 속에서 공동체적 가치관은 붕괴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얼마남지 않은 내 시골생활은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는 것으로 채워나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 는 도시에서 바쁘게 맞벌이해서 살면서 두 아이의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누이에게 선물로 주어야겠다. 라다크 사람들의 전통적인 양육관은 오늘날 한국의 젊은 어머니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것임을 확신한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아직 하늘에 닿아보려고 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다시 내려오고 있다. "그 위는 텅 비어있어." 라고 말하면서.
- 게롱 팔단, 마을의 모임에서,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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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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