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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r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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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설국
글쓴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
민음사
평균
별점8.2 (417)
jkr84

장면 하나하나를 손으로 더듬듯 읽게 된다. 아름다운 영상을 넋놓고 보듯이. 이런저런 설명없이도 주인공들의 느릿하고 소소한 손짓 하나, 작은 변화만으로도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즈넉한 설국을 묘사한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현실의 창 밖도 소설의 배경처럼 느껴져 환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내용이라고는 눈의 고장으로 여행간 시마무라와 그곳 게이샤인 고마코의 일상과 간혹 나오는 요코와의 대화가 대부분이지만 그래서 더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게 되고 그들을 이해하고 빠져들게 된다. 고마코에게 시마무라는 그저 관조적이었다. 고마코는 인정하는듯 받아들이는듯 자신의 삶을 산다. 요코 역시 고마코만큼 고요하게 정열적이다. 남자들은 그런듯 아닌듯 자신도 알지못하게 어린애처럼 여자에게 위로받고싶어 하는것 같다. 영화를 본 것처럼 눈과 은하수와 기모노와 다다미방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좀 지난 뒤 지금의 여운이 사라질때쯤 마음과 머리를 비우고 천천히 다시 읽고 싶다.


사방의 눈 얼어붙는 소리가 땅속 깊숙이 울릴 듯한 매서운 밤 풍경이었다. 달은 없었다. 거짓말처럼 많은 별은, 올려다보노라니 허무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있다고 생각될만큼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별무리가 바로 눈앞에 가득 차면서 하늘은 마침내 머언 밤의 색깔로 깊어졌다. 서로 중첩된 국경의 산들은 이제 거의 분간할 수가 없게 되고 대신 저마다의 두께를 잿빛으로 그리며 별 가득한 하늘 한 자락에 무게를 드리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맑고 차분한 조화를 이루었다. (40p)

걸음이 빨라졌다. 도톰하고 흰 발이긴 해도 등산을 즐기는 시마무라는 산을 바라보며 걸으니 방심 상태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어느 때건 쉽게 방심 상태에 빠지기 쉬운 그이고 보면, 그때 해질녘의 거울이나 아침 눈의 거울이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자연의 것이었다. 그리고 먼 세계였다. (51p)

시마무라가 허무한 애수에 젖어 있을 때, 따스한 불빛이 켜지듯 고마코가 들어왔다. (55p)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95p)


눈 속에서 실을 만들어 눈 속에서 짜고 눈으로 씻어 눈 위에서 바랜다.
......깊게 쌓인 눈 위에서 바래는 흰 모시 가득 아침 해가 비쳐 눈도 천도 모두 다홍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여름의 때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했고,  제 몸을 바래기하는 양 기분이 상쾌해졌다. (131p)

털보다 가느다란 삼실은 천연 눈의 습기가 없으면 다루기 어려워 찬 계절이 좋으며, 추울 때 짠 모시가 더울 때 입어 피부에 시원한 것은 음양의 이치 때문이라고 옛사람들의 이야기했다. 시마무라에게 휘감겨오는 고마코에게도 뭔가 서늘한 핵이 숨어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한층 고마코의 몸 안 뜨거운 한 곳이 시마무라에게는 애틋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애착은 지지미 한 장만큼의 뚜렷한 형태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133p)

이를테면 자신의 쓸쓸함을 지커보며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뿐이었다. 고마코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 시마무라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마코의 전부가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코에게는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히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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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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