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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kr84
- 작성일
- 2015.11.10
설국
- 글쓴이
- 가와바타 야스나리 저
민음사
장면 하나하나를 손으로 더듬듯 읽게 된다. 아름다운 영상을 넋놓고 보듯이. 이런저런 설명없이도 주인공들의 느릿하고 소소한 손짓 하나, 작은 변화만으로도 그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고즈넉한 설국을 묘사한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현실의 창 밖도 소설의 배경처럼 느껴져 환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시마무라가 허무한 애수에 젖어 있을 때, 따스한 불빛이 켜지듯 고마코가 들어왔다. (55p)
눈 속에서 실을 만들어 눈 속에서 짜고 눈으로 씻어 눈 위에서 바랜다.
......깊게 쌓인 눈 위에서 바래는 흰 모시 가득 아침 해가 비쳐 눈도 천도 모두 다홍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여름의 때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듯했고, 제 몸을 바래기하는 양 기분이 상쾌해졌다. (131p)
털보다 가느다란 삼실은 천연 눈의 습기가 없으면 다루기 어려워 찬 계절이 좋으며, 추울 때 짠 모시가 더울 때 입어 피부에 시원한 것은 음양의 이치 때문이라고 옛사람들의 이야기했다. 시마무라에게 휘감겨오는 고마코에게도 뭔가 서늘한 핵이 숨어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한층 고마코의 몸 안 뜨거운 한 곳이 시마무라에게는 애틋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이런 애착은 지지미 한 장만큼의 뚜렷한 형태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133p)
이를테면 자신의 쓸쓸함을 지커보며 그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뿐이었다. 고마코가 자신에게 빠져드는 것이 시마무라는 이해가 안 되었다. 고마코의 전부가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오는데도 불구하고, 고마코에게는 시마무라의 그 무엇도 전해지는 것이 없어 보였다. 시마무라는 공허한 벽에 부딪히는 메아리와도 같은 고마코의 소리를, 자신의 가슴 밑바닥으로 눈이 내려 쌓이듯 듣고 있었다. (1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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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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