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나누다
Joy
- 작성일
- 2019.2.17
[예스리커버] 오후도 서점 이야기
- 글쓴이
- 무라야마 사키 저
클
긴가도 서점의 문고본 서가 담당자인 잇세이는 어느날 책을 훔쳐 도망가는 소년을 쫓게 되는데, 쫓기던 중학생이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었고, 주변의 강압에 의해 책을 훔쳤던 소년과 부모는 서점에 사과를 하고 일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잇세이가 과하게 소년을 쫓아 사고가 났다는 사람들의 비난이 이어지기 시작하고 서점과 서점이 위치한 백화점에게까지 좋지 않은 소리가 이어지자 결국 잇세이는 자진해서 서점을 그만 둔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는 '4월의 물고기'라는, 잇세이가 관심을 가지고 자신이 손으로 서가에 진열하고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어했던 책과 서점을 떠난 그의 바램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는 긴가도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응? 제목은 ‘오후도 서점’ 아니었나? 이쯤 되고 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실제로 잇세이가 오후도 서점에 발을 들이기까지 2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지나간다). 하지만 일본 소설 특유의 섬세함이 묻어나 아, 그렇구나 이해가 되기도 한다. 다만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했던 인물들간의 관계라든가 벚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풍경 속 오후도 서점에서 잇세이가 새롭게 만난 공간과 익숙해져 가는 과정들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조금 아쉽기도 했다. 거기에 후반부가 조금은 과하게 감상적으로 흘러간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도 조금.
하지만 이런 작은 아쉬움과는 별개로 책을 읽는 동안 잇세이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글을 쓰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만나며 내게 있어 책은, 그리고 서점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았다.
‘성냥팔이 소녀처럼.’..(중략)..소녀에게 성냥이 있었다면 어린 잇세이에게는 책이 있었다..(중략)..만약 책이 없었다면 진작 마음이 얼어붙었을 것이다. p.46
잇세이에게 책은 외로운 마음을 지켜주는 존재였고, 그런 책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좋은 글을 찾아내려 노력한다.
‘나는 사금을 캐고 있는 건지도 몰라.’
소중한 사금이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눈에 띄지 못한 채 모래에 휩쓸려 강바닥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p.44
그 책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잇세이는 거센 물살을 견디며 정성스레 사금을 캐고 있는 것이다. p.45
내게 책은 휴식이자 도피이다. 지친 일상으로부터의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로움이기도 하고 동시에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은 독서에 체계가 잡혀 있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읽는 편이긴 하지만 그저 즐거우니(물론 가끔은 눈으로 들인 글을 머리로, 마음으로 보내느라 힘들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좋지 않은가 하는 다소 단순한 이유를 들어본다. 그리고 이런 책들이 가득 쌓여있는 서점이라니! 마치 맛있는 뷔페 레스토랑에 들어가 무엇을 먼저 먹어야 할지, 고민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잇세이와 서점인들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한 권의 책이 서점의 서가에 위치하기까지, 또는 인터넷 서점의 추천 도서로 뜨기까지 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고민들이 있겠구나, 여지껏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을 바라보게 보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책을 읽은 후 들른 서점에서 책들이 왜 이 자리에 놓였는지 추측해 보는 것도 나름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덧붙이는 글
하나. 너무 생생하게 설명을 해 두어, 책을 관통하는 도서 ‘4월의 물고기’라는 소설이 실제로 있는 것은 아닐지 검색해 본 것은 조금은 쑥쓰럽지만 안 비밀 : )
(실제로 동명의 소설이 있었다. 일본소설이 아닌 한국소설이었지만 말이다)
두울. 얼마 전 리뷰를 남긴 '중쇄를 찍자'와 어딘가 이야기가 닿아있는 느낌
('중쇄를 찍자'는 출판인들의 이야기가 중심인데, 함께 일하는 서점인들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문장
“살아가는 일을 포기하지 마, 행복해지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을 포기하면 인간은 그 자리에서 썩어버릴 뿐이야.” p.90
이건 ‘잘 있어’의 냄새다..(중략)..민감한 코에 눈물의 냄새가 아플 정도로 파고들었다. 가슴이 불안으로 꽉 조이는 느낌이었다. p.138
소용없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별안간 벼랑 아래로 내던져지듯이 운명의 선고가 내려진 것이니 이제 와서 부정하고 저항해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p.150
식료품이나 의류와는 달리 책이라는 것은 없어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책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실상 그리 많지않다. p.174
*이 대목을 읽다가 책 없이 살 수 없는 이웃님들이 참 많다는 생각에 혼자 웃음을 지었다 : )
‘아아, 책 냄새다.’
코 끝에 스미는, 침엽수를 닮은 냄새. 어렴풋이 냉기가 느껴지는, 알싸하고 적막한 냄새. 한없이 그리웠던 냄새. p.224
유백색 유리창 너머는 흑요석을 깔아놓은 듯한 캄캄한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온다는 사실을 잇세이는 알고 있다. 이 마을에서 맞는 첫 아침 하늘은 어떤 색일까. p.251
그들을 위해 서점 주인은 책을 고르고 추천해온 것이다. 활자 세계로 가는 머나먼 여정의 길동무, 혹은 하늘에서 빛을 발하며 방향을 알려주는 별처럼. p.274
‘살아있는 한,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꿈꾸는 일은.’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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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