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나누다
Joy
- 작성일
- 2024.6.8
아무튼, 문구
- 글쓴이
- 김규림 외 1명
위고
그래! 나는 문구인(文具人)이었어!
제각각의 크기와 다양한 재질의 종이를 품은 노트들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하다 주섬주섬 장바구니에 챙기거나 저마다의 모양과 색색의 현란함을 뽐내는 펜들 사이에서 길을 잃는 나를 ‘문구인’이라 칭하지 않는다면 무엇이라 일컬을 수 있겠는가. 이 책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확인한 나는 작가가 그랬듯 환호의 탄성을 질렀다.
문구인(文具人). 이 단어를 보는 순간 암실에 빛 한 줄기가 쨍 하고 들어와 온 방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평생을 찾아 헤맨 단 하나의 단어를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조우한 느낌! 아아, 정말이지 나는 이 단어와 단숨에 사랑에 빠져버렸다. from EBOOK
워낙에 문구를 좋아하는 내가 (여행지에서도 서점과 함께 문구점에서는 어김없이 발길을 멈추곤 하는) 이 책을 펼친 순간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아니, 오히려 이제껏 이 책을 읽지 않은 것이 의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구인이라는 세 글자엔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문구류를 너무나 좋아해서 매일 문방구를 내 집처럼 드나들던 어린 시절, 집 안 곳곳에 널려 있는 수만 개의 문구류, 회사에서 실험하고 배우며 만들고 있는 문구들, 그리고 죽기 전에 문구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대단한 문구를 만들고 싶다는 오랜 포부. 이 모든 것에 어울리는 수식어가 문구인 말고 또 있을까?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꿈까지 모두를 관통하는 한 단어. 그래, 나는 결국 문구인이었다. from EBOOK
자신의 정체성을 ‘문구인’으로 규정하며 시작한 <아무튼 문구> 이 책에는 말 그대로 저자의 문구에 대한 사랑이 가득차 있고 무엇보다 그녀가 애정하는 다양한 문구류들은 나를 환호하게 만들다가 결국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그중 가장 먼저 나의 손에 들어온 ‘미도리 노트’를 잠깐 소개하자면 마침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문구’에 대한 나의 애정을 확인하던 중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실물을 발견하고나니 도저히 (안 사고는)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인내하며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문구인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미도리 노트를 고르겠다. from EBOOK
만년필을 즐겨 쓰던 시절 여러 종이 테스트에 실패해가며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절대 비치지 않을 종이를 찾다가 미도리 노트를 만났다. 미도리에서 자체 개발한 MD페이퍼는 얇지만 뒤로 잉크가 쉽게 번지지 않는다. 종이질은 취향을 많이 타서 사람마다 선호가 다르겠지만, 엷은 미색에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차락차락 경쾌한 소리가 질리지 않고 좋은 걸 보면 미도리는 나와 궁합이 잘 맞는 노트임은 틀림이 없다. 게다가 가죽과 종이의 조합을 사랑하는 내게 미도리는 가죽 커버와 함께 쓸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을 발산했다. from EBOOK
집에 사들고와 만년필로 쓱쓱 글을 써보니, 오호라! 이래서 저자가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노트라 했구나, 싶었다. 사실 올해 들어 일기장으로 쓰기 시작한 몰스킨 반고흐 에디션 노트에 만년필로 글을 썼다가 뒷장까지 배겨나는 통에 통탄을 금치 못했던 (만년필로 일기 쓰려고 했는데, 안되는건가!!!) 내게 그런 걱정 없이 깔끔히 글이 써지는데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 때문이 호불호가 살짝 갈릴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이 마음에 든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책에서 언급된 몰스킨 노트 이야기도 살짝 소개해 본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노트’라는 카피를 앞세운 몰스킨(Moleskine)은 헤밍웨이, 피카소, 반 고흐 등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이 즐겨 쓰던 노트로 스스로를 브랜딩했다. 하지만 사실 몰스킨은 설립된 지 20년이 갓 넘은 회사라는 사실. 그럼에도 몰스킨을 손에 드는 순간 예술가가 된 기분과 왠지 모르게 크리에이티브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니 결과적으로 훌륭한 브랜딩이라고 할 수 있겠다. from EBOOK

이외에도 책 속에는 사봐야지, 마음 먹게 만드는 노트와 필기구 이름들이 나열되는데, 막연한 ‘문구예찬’이 아니라 나는 이 노트가 좋더라, 이 필기구는 정말 짱이었어! 이야기를 해주니 저절로 호기심이 상승한다.
커버를 가지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미도리(Midori) 트래블러스 노트커버를 시작으로 헤비츠(Hevitz) 노트커버(가죽 질이 매우 좋아서 여러 색상을 가지고 있다)..(후략) from EBOOK
펜텔 트라디오, 에너겔, 마하펜, 팔로미노 연필, 빅 4색 볼펜, 샤피 네임펜 등을 좋아해 여러 자루 사두었다. 펜이 아닌 것으로는 비망노트, 무인양품 문고본 노트, 컴포지션 노트 등을 쟁여두었다. from EBOOK
거기에 이어 어디에 가면 다양한 문구류들을 살 수 있는지도 소개하는데 재미있었던 것은 저자가 언급한 ‘서울의 3대 문방구’ 중 2곳을 이미 섭렵했다는 것! 역시 나에게는 문구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문구인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서울의 3대 문방구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홍대의 호미화방, 고속터미널의 한가람문구, 남대문의 알파문구 본점이다. from EBOOK
나는 이중 한가람문구와 알파문구 본점을 들렀었는데 아쉽게도 호미화방은 가보지 못했다. 그곳까지 갔었더라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함께 꼭 달성(누가 알아준다고?!!)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 책을 읽으며 구매한 미도리 노트를 시작으로 이후 나는 노트며, 필기구를 좀 더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안 쓰는 노트가 쌓여있는데(조금 과장한 것이다. 그리 높게? 쌓여 있지는 않다) 노트를 사거나 책상 위에 놓인 컵에 꽉꽉 들어찬 필기구의 잉크가 제법 남아있음에도 새로운 것을 살 때 느껴지던 죄책감(!)을 살짝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와 만나고 있다.
문구인으로써의 정체성을 깨달은 참에 나도 저자처럼 조금은 ‘뻔뻔’해지기로 했다.
똑같은 게 집에 있는데 왜 자꾸 사느냐는 질문에 “그건 이것과는 달라. 이건 이런 기능이 있다구”라고 구구절절 핑계를 대곤 했다. 그러다가 문구 소비에는 ‘실용적’이라는 단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사실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만 있으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문구가 정말 딱 그 정도의 존재일지도 모른다..(중략)..그렇다. 문구의 세상은 결코 실용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from EBOOK
물건을 사기 전에 스스로에게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사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닌가. 어차피 살 거 당당하게 사면 되지 않나. 그래서 이제는 조금 뻔뻔해지기로 했다. ‘근데 꼭 필요해야만 사나요?’ 이렇게 자문하고 ‘아니, 꼭 필요한 물건만 사라는 법은 없지’ 혼자서 대답한다. 더구나 세상에 진짜로 필요한 물건들만 존재한다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게 지루해진다. from EBOOK
- 좋아요
- 6
- 댓글
- 4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