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죽음은 나와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아프거나 죽는 사람이 없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TV나 신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접해도

그 순간만 '안됐다'는 생각을 할 뿐, 금방 잊어버리곤 했다.

큰 사고가 나거나 아파도 나는 쉽게 죽지 않을거라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는데...

20대 후반에 첫 아이를 낳으면서

처음으로 생과 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아기를 낳을 때, 어디에서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운명임을...

그제서야 실감했다.

나도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면서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보게 되었다.

아픔, 사고, 노환 등으로 여러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라는 사람도 삶의 종착역에 다다를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고,

나조차 이 세상을 떠나야한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슬픔이 밀려온다.

이 마음을 추스리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을까 생각하던 중,

이효범의 <사람은 왜 죽는가>를 만나게 되었다.

인간은 왜 죽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다양한 방면에서 살펴본다면

필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이 책의 저자 이효범은 '사람이 죽어야 할 이유'를 16가지로 정의했다.

16장의 제목만으로도 큰 공감을 일으킨다.

나 개인의 죽음을 놓고 봤을 땐 비극이지만,

인류 전체를 생각하면 죽음은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차를 하나 하나 읽으며

책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사람은 왜 죽는가>에는 죽음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결론을 내린

철학자, 문학가, 과학자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의 저자 이효범은 서강대 철학과 박사학위을 받고,

공주대 사범대 윤리교육과 교수를 지낸 분이다.

지금은 이효범연구소에서 죽음과 사랑, 인간과 윤리에 대해 연구하며

문학, 역사, 철학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왜 죽는가>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하고,

큰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처음 죽음을 실감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봄 소풍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철길 다리에서 친구 둘이 기관차에 부딪쳐 사지가 찢어진 모습을 목격한 것.

처참하고, 끔찍한 죽음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을 터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죽음은 자신을 위대하게 만드는

하나의 시험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나만큼은 죽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은 나도 어릴 때 느꼈던 바이다.^^;;

죽음의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고자 철학과에 진학했지만,

학교에서는 죽음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죽음은 언제나 화두였지만 그 해답을 찾지 못했는데...

50대 후반, 유럽 배낭여행 중에 만난 20대 청년이

죽음과 관련된 책을 가지고 있는 걸 보며

'더 이상 죽음의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책을 출판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렇게 해서 16가지 죽음의 의미를 정리할 수 있었다.

'죽음은 삶과 짝이다'라는 주제는

내가 대학시절에 레포트로 적은 제목과 같아서 흥미로웠다.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죽음은 찾아오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 죽음은 생소하다.

직접 체험해보지 못하는 죽음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혹은 책과 연구 자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뿐이다.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서 죽음을 어떻게 다뤘는지 살펴보고,

과학적으로 죽음의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여러 철학자들이 죽음에 대해 정의내린 문장을 읽으며 공감하기도 했다.

스토아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죽는 것조차도 삶의 한 부분이고,

죽음을 맞은 순간에 잘 죽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라고 말했다.

철학자들은 '죽음이 없는 삶은 한없이 지루하고,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생명이 유한하기에 더 열심히 살아가는 원동력을 얻는다.

천 년, 만 년 살고 싶다가도

'우리에게 긴 세월이 주어졌을 때 과연 잘 살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생명체가 죽는 이유를

신체적, 심리 사회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매일 신체를 사용하며 살고 있기에

우리 몸도 기계처럼 소모되고 있다는 설이다.

그리고 몸 속에서 활성산소가 생성되고 있어서 신체가 노화한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몸에 대해 연구하고,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생물학적 노화 이론이라면

인간의 심리와 사회학에 초점을 맞춘 설이

심리, 사회학적 노화설이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회적 역할과 참여율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노화와 죽음을 늦추고 싶다면

신체 뿐만아니라 심리, 사회적으로도 활발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내 곁을 떠난다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무너지고, 삶의 의욕이 상실된다.ㅠ

하지만, 아내를 잃은 장자의 모습에서 현명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혜자는 아내가 죽었는데도 질그릇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자를 나무라는데...

장자 왈, "아내가 죽은 당초에는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소.

그런데 그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것이요.

그저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소.

비단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시 기도 없었소.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변해서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해서 형체가 생기며.

형체가 변해서 삶을 갖추게 된 것이요.

이제 다시 변해서 죽어는 것이요.

이는 춘하추동이 서로 사철을 되풀이해 운행함과 같소."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더 나아가 나의 죽음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남편의 작은 아버지께서 췌장암으로 고생하시다 영면하셨다.

힘든 투병 생활과 치료를 반복하시다 1년 만에 세상을 하직하셨다.

그 과정을 곁에서 모두 지켜보진 못했지만,

남편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작은 아버지를 찾아 뵈었다.

많이 마르고, 늙으셔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죽음 직전까지 고통으로 힘들어하시다가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장례 절차를 거치며 작은 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은 암 때문에 고통받고, 일그러진 표정이 아니었다.

한없이 편안하고, 안락해보이는 모습이었다.

작은 아버지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슬픔 속에서도

죽음이 삶의 고통을 걷어갔다는 생각을 했다.

톨스토이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것과 동일한 느낌을 받았다.

일리치가 죽기 전에 가족들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일리치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그 모습을 안쓰러워하는데...

죽음으로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다다르자 삶을 힘들게했던 통증이 모두 사라지고,

죽음 마저도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

'죽음은 어디에 있지? 죽음이 뭐야?

죽음이란 것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 어떤 공포도 있을 수 없었다 (중략)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이반 일리치의 죽음 中-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실컷 이야기해놓고,

'죽음은 알 수 없다'고 마무리한다.

먼 옛날, 진시황은 불로초를 찾아 평생 살고자 했고

구글벤처스의 빌 마리스 또한 '미래 인간은 500살까지 살 수 있다'며

자신 또한 영원히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현재 안티에이징을 연구하고, 생명과학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에

먼훗날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지구와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다.

죽음을 심도깊게 연구한 선조들과 이 책의 저자 덕분에

죽음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젊다면 젊은 30대이지만,

불쑥 불쑥 죽음이라는 화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될 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병으로, 사고로, 노환으로 혹은 자살로...

수많은 이유로 오늘도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슬픔과 고통을 추스리고,

죽음을 직면하고자 한다면

<사람은 왜 죽는가>를 읽어 보시길 바란다.

죽음을 덤덤히 바라보는 것 또한 남은 사람들의 몫이므로.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를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