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너스에게

jupiter13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0.9.17
“다를 게 뭐가 있어? 보아하니 너희들 중,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평일 야간개장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고, 다 같이 가는 거니까 뻘쭘하지도 않을 거고, 무엇보다 위험하지가 않잖아. 합법적인 오락이니까.”
“롤러코스터의 벨트가 고장 나면 죽을 수도 있어.”
“네가 이번에 또 대마초를 피우다 걸리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지.”
도라는 입을 다물고는 다시 의자에 기댔어.
“그래도, 그렇게 맛있는 치킨은 절대 못 먹어.”
“저기 말이야.”
누룽지가 조심스레 손을 들며 말했어.
“나도 그렇게 맛있는 치킨을 먹어본 적이 있어.”
“치킨회사 광고는 광고지에 하십시오, 사장님.”
도라가 빈정거렸어.
“그런 게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느라고 일주일 동안 토마토만 먹은 적이 있었거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치킨을 시켜먹었는데, 난 아직도 그 맛이 잊히지가 않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이었다고.”
“그거 그럴듯하네.”
마가 배꼽을 잡고 웃으며 말했어.
“그만두자, 그만둬.”
도라가 툴툴거렸어.
“아니? 그거 꽤 괜찮은 얘기잖아? 도라, 잘 생각해봐. 어두운 구석에서 꽁초 빠는 재미도 좋겠지만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놀이공원에 몰려가서 노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다고.”
“넌 그래본 적이라도 있는 거냐?”
“당연하지. 설마 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던 거야?”
도라는 기회가 없었다고 중얼거렸고, 다른 아이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애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어. 비너스. 그건 무척 이상한 기분이었어. 내게 뭔가 끔찍한 문제라도 있는 양 취급을 받다, 갑자기 가장 정상적인 존재가 돼버리는 것 말이야.
“내가 장담할게. 야간개장은 정말 한번 가볼 만해. 불꽃도 터뜨리고, 놀이기구들도 전구를 달아서 반짝반짝 빛나. 얼마나 예쁜데. 특히 롤러코스터를 타면 그게 한눈에 내려다보이거든.”
아이들은 모두 도라를 쳐다보았어. 도라는 의자를 흔들면서 망설이고 있었지.
“좋아, 뭐, 한번 해본다고 손해날 건 없겠지.”
마침내 도라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어.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는데, 대마초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 절대로.”
우리는 양나 씨가 주방에서 아이들과 함께 쿠키를 산더미처럼 구워가지고 나올 때까지 다음주 ‘오맙또’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토론을 했어.
“다음 주까지 우리는 철저하게 토마토만 먹어야 해. 제일 중요한 건 바로 너야, 도라. 설마 우리만 질리도록 토마토 먹게 하고 너는 온갖 것 다 찾아먹은 뒤 치킨이 맛이 있네, 없네, 그러는 건 아니겠지?”
잡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어.
“넌 왜 그렇게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이냐? 설마 내가 그런 치사한 짓을 하겠어?”
“뭐, 각자 알아서 할 일이지만 어렵더라도 참아보자고. 누가 알겠어? 정말 세상에서 가장 죽여주는 치킨을 먹을 수 있게 될지.”
다시 헤드폰을 끼며 마가 말했어.
양나 씨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자 그녀는 나를 보티첼리의 그림이 걸려 있는 상담실로 데려갔어. 씨아는 밖의 소란을 피해 상담실 소파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고 있었지. 나는 양나 씨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우리의 계획에 대해 털어놓았어. 뜻밖에도 양나 씨는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어. 나는 그녀가 반은 장난으로 받아넘길 줄 알았으므로 조금 놀라고 말았어.
“괜찮은 생각이야, 소년. 하지만 생각보다 힘이 들 수도 있고, 잘 안 될 수도 있어. 그때 너나 다른 아이들이 심각하게 좌절하거나 실망하게 되는 건 전혀 괜찮지 않지.”
“그게,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닌데요. 그저 이런 식으로 현실 가능한 소소한 일들을……”
나는 양나 씨의 표정을 보면서 입 속으로 말을 삼켰어.
“소년. 네 사소한 소망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었지? 여기는 쏟아지는 소나기를 잠시 피할 수 있는 대피소 같은 곳이야. 답답하다고 지붕을 걷어내면 어떻게 되겠어.”
“……반대하시는 건가요?”
양나 씨는 깊은 생각에 잠겼고 나는 묵묵히 기다렸어.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함께 결정을 했다니 이번 일은 허락할게. 단, 참가하는 인원은 애초에 이 일을 결정한 너희 여섯 명에 한해서야. 너는 돈이 필요해서 이 일을 받아들인 거였으니 만일 뜻하는 대로 잘되어간다면 따로 수고비를 지불해주마. 네게 돈이 필요하다는 건 원하는 게 생겼다는 뜻이겠지? 그러니까 상황을 봐가면서 계속 의논하자.”
“고맙습니다.”
“처음이니까, 믿을 만한 인솔자를 한 명 붙이겠어. 나는 다른 아이들과 있어야 하니 안 되고, 현신에게 부탁할게. 괜찮겠지?”
“네, 그럼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양나 씨가 날 부드럽게 불렀지.
“비너스에게 편지는 잘 쓰고 있니?”
“네.”
“그녀가 너를 잘 이해해주고 있어?”
“아마도. 우리는 아주 잘 통하는 것 같아요.”
“그거 좋구나. 정말 좋아.”
양나 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고, 나는 그녀의 걱정으로 인해 무거웠던 마음이 다시 가벼워지는 것 같았어.
- 좋아요
- 6
- 댓글
- 30
-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