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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piter13
  1. 비너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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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왕이면 자동차를 스스로 몰고 왔으면 좋겠어.”


 


  “에? 그럼 우리는 안 되겠네. 도와줄 수가 없잖아.”


 


  “현신 쌤께 부탁해보면 어떨까?”


 


  마가 의견을 내놓았어.


 


  “그건 반칙이야. 이건 ‘우리’끼리 해결하기로 한 거잖아.”


 


  필이 반대했어.


 


  “하지만 마라톤 선수라도 그건 무리라고. 그럼 하다못해 오토바이라도 탈 줄 안다면……”


 


  잡이 말을 하던 도중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어.


 


  “저 스쿠터로? 무리야, 그건.”


 


  마가 말했어.


 


  “하긴. 너무 멀어. 고속도로는 탈 수가 없으니 국도로 와야 하는데, 저걸로는 어림도 없을 거야.”


 


  “꼭 부산이어야 해?”


 


  내가 물었어.


 


  “우리 집에서 너희 집까지 정도면 어쩔까?”


 


  “네가 와주는 거야? 날 위해서?”


 


  누룽지의 얼굴이 그야말로 홍당무처럼 붉어졌어.


 


  “그것도 좀 그렇지 않나? 얘는 이제 오맙또의 일원도 아니고, 더 이상 수요일의 아이도 아니야.”


 


  필이 말했어.


 


  “까다롭긴. 누룽지도 좋아하는 것 같고, 애초 이 계획은 모두 얘한테서 나온 거잖아. 뭘 그런 걸 일일이 따지고 난리냐?”


 


  잡이 면박을 주었어.


 


  “그건 그렇고, 넌 이제부터 ‘수요일의 아이’가 아니니까 다른 닉네임이 필요해. 너는…… ‘달려라’다. 줄여서 달. 어때?”


 


  잡이 엄숙하게 말했어.


 


  “그거 좋은데 그래? 왠지 어울려. 달.”


 


  아이들이 모두 만족스러워했어. 그래서 나는 달이 되었어. 나도 정말 마음에 쏙 드는 닉네임이었지.


 


  “그럼 결정인 거네. 달이 누룽지를 위해 스쿠터를 타고 달려간다. 누룽지. 너 집이 어디야?”


도라가 물었어.


 


  “인천.”


 


  이런 제길. 서울이 아니었어!


  저녁때가 가까워오자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애미’에는 양나 씨와 나만 남았어. 그녀는 붉은색 포장지에 초록색 리본으로 묶인 커다란 상자를 하나 건네주었어.


 


  “생일선물이야.”


 


  “어, 고맙습니다.”


 


  나는 당황하면서 받아들었어. 그녀가 날 위해 해준 것들이 너무 많아서 따로 선물까지 준비했을 줄은 몰랐는데. 포장지를 벗기고 상자를 열어 보니 안에는 번개모양이 새겨진 붉은색 헬멧이 들어 있었어. 나는 양나 씨를 위해 얼른 써보았어.


 


  “완전 맘에 들어요.”


 


  “신나게 달려봐, 달.”


 


  양나 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


 


  “저…… 뭐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뭐든지.”


 


  “애인하고는……”


 


  “그녀하고는 완전히 끝났어.”


 


  “그렇군요.”


 


  “소년. 네가 뭘 생각하는지 알아. 하지만 그녀가 내 곁에 있어서 행복한 순간이 분명히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잘 헤어졌어. 서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앞날의 행복을 빌어주고, 따듯하게 안아주고, 힘차게 악수까지 했다고.”


 


  “다행이네요.”


 


  “그래. 다행한 일이야.”


 


  양나 씨는 씨아를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분명하게 다시 한 번 말했어.


 


  “정말 다행한 일이야.”


 


  어느새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어.


 


  “눈이 오네요.”


 


  내 말에 양나 씨는 창밖을 쳐다보았어.


 


  “화이트 크리스마스라. 아참, 현신이 네게 시간이 되면 잠깐 들러달라고 했어.”


 


  “왜요?”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 하지만 양나 씨는 모르는 척해주었지.


 


  “글쎄. 크리스마스인 데다 네 생일이기도 하니까, 그도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 아닐까? 스쿠터랑 헬멧은 놓고 가라, 소년. 면허가 먼저야.”


 


  “그럼요.”


 


  나는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일어섰어. 그러고는 양나 씨와 다정한 포옹을 했지. 행여 그녀의 목을 건드릴까봐 무척 조심스러웠어.


 


  “정말 고맙습니다.”


 


  진심을 담은 내 말에 양나 씨는 천만에, 라고 대답했어.



  나는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현신에게로 갔어. 침착하게 걷자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져갔지. 결국 나는 거의 뛰다시피 그에게로 가고 있었어. 누룽지가 원하는 것도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현신의 진료소는 문이 닫혀 있었어. 나는 호출기를 눌렀고, 잠시 후에 현신이 문을 열어주었어. 그의 모습을 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지. 왔구나, 라고 그가 말했어. 네, 왔어요, 라고 내가 대답했어.


 


  “생일 축하한다.”


 


  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어.


 


  “이제 열일곱 살이 된 거니?”


 


  “네.”


 


  기쁨으로 날뛰던 가슴에 먹구름이 드리워졌어. 그의 입에서 직접 내 나이를 들으니 내가 한참이나 어리게 느껴졌기 때문이야. 11년의 차이. 현신에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11년만큼의 경험.


  우리는 함께 이층으로 올라갔어. 현신의 집은 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더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어.


 


  “내가 네 나이 때 뭘 좋아했는지 기억을 더듬어봐도 잘 모르겠더라. 난 그저 별 특징 없이 평범하기만 했던 애라. 유일하게 동물을 좋아했지만, 네게 덜컥 동물을 선물해 줄 수는 없는 일이고. 그래서.”


 


  현신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작은 상자를 내게 주었어.


 


  “점원에게 물었더니 이게 너만 한 나이의 애들한테 잘 어울릴 거라고 하더구나.”


 


  “고맙습니다!”


 


  현신이 설사 앨리스 같은 사나운 수소를 선물해줬더라도 나는 정말 기뻤을 거야. 하지만 상자를 열어 보니 안에는 캐주얼한 디자인의 명품 브랜드 시계가 들어 있었어.


 


  “어! 이건 너무……”


 


  너무 값이 나가는 거라 나는 어안이 벙벙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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