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04

"미야코 언니가 망설이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립할 경제력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오해하실까봐 염려되는데, 전 모두가 하나같이 자기 힘으로 살아갈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한테는 여러 사정이나 배경이 있고 예를 들어 가족을 간병해야 하거나 하는 여러 상황이 있잖아요. 하지만 미야코 언니의 경우는 간이치 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경제적인 것뿐이죠. 그분과 앞으로 바람직한 관계를 지속해나가고 싶다면 미야코 언니가 그걸 보완할 수 있을 정도로 수입을 늘리는 건 어떨까요? 간이치 씨는 지금 혼자 살고 있으니 원래 문제가 없을 거예요. 미야코 언니가 가지고 있던 불안감은 간이치 씨의 장래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불안이 아닐까요?"

p.413

"난 같이 살고 싶다고 했어. 이대로는 변화도 없고 그래선 고민하는 내용도 달라지지 않아. 결과가 어떻든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서 제안하는 거야. 불안감이나 고민을 없애고 싶은 게 아니라 종류를 바꾸고 싶다는 거야."

p.452

소요카는 간이치가 무면허 운전을 한 것은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가 아닌지 관대한 모습이었지만, 미야코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다. 간이치는 운전을 안정적으로 하고 무척이나 능숙해서 분명 운전 경력은 길 것이다. 하지만 무면허로 운전하는 것은 미야코에게는 어떤 사정에서든지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은 것이다. 그건 음주운전과 동급으로 죄질이 나쁘다. 마음속 어딘가로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 그의 안이한 생각이 미야코 내면에서는 용서하기 힘든 일이었다.

일본 소설가 중에서 국내 출판된 책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에쿠니 가오리와 야마모토 후미오, 단 둘뿐이다.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가 않고 새삼 새롭게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모두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요번 <자전하며 공전한다>는 야마모토 후미오 작가님 컬렉션 중 마지막이 되는 작품이다. 많이 좋아하는 작가님인데.. 유작이 국내에 출간되고서야 작가님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팬이라 하기엔 거참.. 심히 부끄럽고 민망하다. 그리고 많이 아쉽고 안타깝다. 더는 작가님의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요번에 7년 만에 나온 신간이 너무 좋았기에 더더더 아쉬움이 크다.ㅠ

주인공인 미야코는 도시에서 살다가 부모님의 간병을 핑계 삼아 고향으로 돌아왔다. 30대 초반, 시골에서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아야 주변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나이. 하지만 그녀는 미혼인데다 계약직이다. 거기다 남자친구는 중졸에 직업이 불안정하다. 모든 게 불안한 미야코의 상황.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그런 그녀의 고민과 그 고민을 헤쳐나가는 방식이 꽤나 나랑 잘 맞는 이야기였다. 나도 미혼이고, 카페 아르바이트생이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지만 중졸에 직업이 불안정할지도 모를.. 남자친구 따위가 없다. 모든 게 늘 불안하지만 왜 또 그게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아서 미야코와 생각이 잘 맞았다. 그냥 뭐랄까.. 딱 10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미야코랄까..^;;;ㅎ

p.531

딸의 결혼식에서 엄마는 아빠랑 결혼해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OOO가 건넨 이 대답이 마음에서 꽤 오래 자리잡고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너무 애써 행복해지려고 안 해도 돼.

... 조금은 불행해도 돼.

어차피.. 내 마음처럼 안 되는 게 인생인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