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 play movie

바다소년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8.10

이 영화는1997년 조용히 개봉하여 소리 소문 없이 내린 아름다운 독일 영화다.
철부지 같던 90년대는 이 영화와 함께 안녕을 고했고, 이후 난 정돈되고 안정된 90년대를 마감할 수 있었다. 바다를 사랑한, 친구를 그리워 한 이 영화는 나의 감성을 만졌고, 완성시켜 주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천국에서는 바다에 관한 이야기 밖에 할 이야기가 없는 걸..
이 영화는 바다를 그리워한, 천국을 그리워한, 두 남자의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짮았던 여정을 그리고 있다.
scene 1
아직은 오전, 간밤의 열기가 시들어진 클럽 〈True romance〉. 무희들이 오늘 밤 공연에서 선보일 춤을 연습하고 있다.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은 I Will Survive. 그 곳에서 검은 옷에 검은 선글라스를 낀 두 사람이 시시걸렁한 농담을 나누고 있다. 그들의 보스는 두 사람에게 연청색 벤츠230을 조직의 보스에게 전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scene 2
열차 안. 군인처럼 다부진 체격에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그 앞에 마주 앉은 심약해 보이는 남자가 금연 열차임을 상기시키지만 한 번 째려보고는 다시 담배를 피운다.
담배 피는 남자는 마틴,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의사 앞에 앉았다. 의사는 마틴에게 뇌 속에 당구공만한 종양이 있다고 말한다. 남은 시간은 앞으로 며칠 뿐. 의사는 마주 앉은 마틴에게 정기검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열차 안에서 마틴과 마주앉았던 남자는 루디. 그도 의사 앞에 앉았다. 루디는 골수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scene 3
같은 병실을 쓰게 된 두 사람, 서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병실에서 우연히 데킬라를 발견하고, 둘은 병원 식당으로 가서 함께 술을 마신다. 그 즈음 우리의 어설픈 갱 두 사람은 얼결에 아이를 차로 치게 되고,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어느 병원인지 말 안해도 알 듯).
다시 병원 식당.
바닥에 주저앉은 두 사람은 데킬라를 마시고 있다.
담배를 피는 마틴에게 루디는 담배는 나쁘다고 말한다. 마틴은 “왜, 폐암에 걸린다고?” 하고 웃으며 되묻는다. 그제서야 루디는 자신들의 처지를 생각하며 실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마틴은 시인처럼 되뇌인다. “해변에선 짜릿한 소금내, 바람은 파도에 씻겨지고, 뱃속은 무한한 자유의 따사로움으로 가득 차네. 입술엔, 연인의 눈물 젖은 키스가 쓰게만 느껴지네.”
마틴의 몽환적인 독백에 루디는 지금껏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말 한다.

마틴 : 우리는 지금 천국의 문 앞에서 술을 마시는 거야. 세상과 작별할 순간이 다가오는데 그걸 못 봤단 말야? 천국에 대해서 못 들어 봤어? 그 곳엔 별다른 얘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물 속으로 빠져들기 전에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논하지. 영원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근데, 넌… 별로 할 말이 없겠다.
두 사람은 주차장에 세워진 연청색 벤츠230을 타고 병원을 탈출한다. 오직 바다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scene 4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얼결에 강도가 되어버린 마틴과 루디. 이제 그들을 뒤쫓는 건 어설픈 갱과 경찰들이다. 루디는 마틴의 강도 행각을 좋아하진 않지만,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과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못할 것이 무엇이냐는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 한적한 시골 동네, 휴고 보스 매장에서 환자복을 벗고 근사한 수트로 갈아입은 두 사람. 하지만 주유소에서 훔친 돈은 옷 값을 지불하기엔 부족하다. 마틴은 매장 바로 맞은 편의 은행을 털어 옷값을 지불한다. 아주 충분하게..
은행강도까지 저지른 두 사람을 잡기 위해 경찰력은 총동원되고 둘은 여유로운 도망길에 오른다. 마틴은 순간순간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한가로운 시골 국도에서 두 사람은 트렁크를 열어보고 가방 안의 100만 마르크를 확인하며 환성을 지른다.
특급 호텔에 묵으며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두 사람. 마틴은 엘비스가 그의 어머니에게 선물했던 분홍색 캐딜락을 엘비스의 열성팬인 어머니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루디는 두 여자와 자고 싶다는 소원을 말한다.
scene 5

시시각각 다가오는 경찰과 갱들을 피하며 둘은 무사히 버킷리스트를 실현한다. 그리고 남은 돈은 마음에 드는 주소로(한마디로 랜덤) 10만 마르크씩 우편으로 보내 버린다.(정말 기발하다. 엔딩 크레딧 후에 재미있는 결과를 보게 된다.^^) 루디의 버킷리스트를 실현한 밤, 둘은 갱들에게 잡히고 만다.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 웃으며, 자신들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 연청색 벤츠230을 받기로 한 조직의 보스가 나타난다.
보스는 마틴과 루디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나직이 묻고, 마틴은 담담히 바다를 본적이 없어서 바다를 보러 가려 한다고 말한다.

보스 : 그럼 뛰어. 시간이 얼마 안 남았거든.(미소)
뛰어가는 마틴과 루디 뒤로 보스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천국에는 주제가 하나야. 바다지. 노을이 질 때 불덩어리가 바다로 녹아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은 촛불같은 마음속의 불꽃이야.”
scene 6

드디어 바다에 도착한 마틴과 루디.
바다로 난 오솔길을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앞에 하얀 포말이 부서진다. 그들의 앞날을 예견하듯 회색 하늘이 을씨년스럽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데킬라를 마신다. 힘이 부쳐 주저앉는 마틴의 손엔 담배 연기가 생의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있다. 소리 없이 옆으로 쓰러지는 마틴. 그의 옆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루디.
그토록 그리던 바다를 앞에 두고 마틴과 루디는 지금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얀 포말은 설움이 되어 다가오고 음울하고 나즈막한 밥 딜런의 노래가 흐른다.
엔딩 크레딧의 푸른 하늘 위로 겹쳐지는 마틴과 루디의 이름은, 그들이 천국으로 갔음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영화 속 마틴과 루디는 이후 나의 인생에서 화인처럼 뜨겁게 각인되어 있다.
마틴으로 분한 틸 슈바이거는 젊은 날, 내게 있어 최고의 연기, 최고의 감성, 최고의 배우로 기억되고 있다.
Mama, take this badge off me
I can't use it anymore
It's gettin' dark, too dark for me to see
I feel like I'm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
엄마, 내게서 이 배지를 떼어줘요.
난 더 이상 이것을 달고 있을 수 없어요.
세상은 점점 어두워지고, 너무나 어두워서
나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요.
나는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립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립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립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립니다.
누군가 지금껏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가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영화 knockin' on heavens door를 꼽는다. 헐리웃 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배우들의 진중함과 억지스럽지 않은 유머, 그리고 시종일관 아름답고 때론 을씨년스럽게 펼쳐지는 유럽의 풍광.
마틴 역을 맡은 배우 틸 슈바이거는 유럽권에선 꽤나 유명한 배우이다. 나는 틸 슈바이거의 억지스럽지 않고, 얼굴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세월의 깊이를 좋아한다. 우리나라 배우로 치면 안성기 같은 느낌이랄까. 오래된 필름이라 화면도 거칠고, 세련되지 않았지만, 이 영화에는 이런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영상이 더 어울린다. 감성이 풍부했던 젊은 시절 영화 속에서 마틴이 빗 속에서 엄마에게 분홍색 캐딜락을 선물하는 장면, 루디가 발작으로 쓰러진 마틴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약국에서 할 수 없이 총을 드는 장면, 마지막에 루디와 나란히 바다를 바라보던 마틴이 소리 없이 조용히 넘어지는 장면을 보며 눈가를 적시곤 했다. 어제 추억 속의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며 다시금 붉어지는 눈가를 훔쳐야만 했다.

이 영화엔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갱들도 악인이라기 보단 어수룩한 동네 아저씨 같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설픈 듯 자연스럽고, 무척이나 절제되어 있다. 억지로 눈물샘을 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며 어느 덧 속으로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기 전과 이 영화를 본 이후 바다는, 내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는 극장에서도, TV에서도 다시 보기 힘든 내 인생의 영화. 오래도록 나만의 Masterpiece 로 기억에 저장해 두려 한다.
지금도 귓가에 밥 딜런의 몽환적인 노랫소리가 울리는 듯 하다.

마틴 : TIL SCHWEIGER 틸 슈바이거
루디 : JAN JOSEF LIEFERS 얀 요세프 리퍼스
각본 : THOMAS JAHN 토마스 얀 & TIL SCHWEIGER 틸 슈바이거
감독 : THOMAS JAHN 토마스 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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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댓글 33
- 작성일
- 2012. 8. 19.
@홀로서기
- 작성일
- 2012. 10. 5.
- 작성일
- 2012. 10. 5.
@ygh0620
- 작성일
- 2012. 10. 5.
- 작성일
- 2012. 10. 5.
@sunnyda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