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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1. 연재소설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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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의 월요일 아침에 지원은 모든 일을 한 템포 빠르게 시작했다.


기상 시간도 앞당기고 출근도 서둘렀다. 정류장이나 지하철역에 갈 때도 걸음을 빨리 하고 가끔은 환승이나 하차 시간을 줄이기 위해 운행 중인 지하철 안에서도 걸어 다녔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던 이십대 중반부터 생긴 버릇이었다. 물론 월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라 활기차다거나 회사에 가는 게 즐거워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지원은 오래 전부터 월요일은 주말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가야하니까 어쩔 수없이 끔찍함을 참으며 등교하고 출근했다. 


월요일에는 언제나 잠이 부족하고 어깨가 뻐근하고 입맛이 없었다. 대중교통의 인구 밀도는 다른 요일보다 높고 도로 정체도 심했다. 집에서 일찍 출발했는데도 평소와 비슷하게 도착할 때가 많았다. 월요일에는 왜 출근하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은 것처럼 느껴질까. 오랫동안 궁금해 했지만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 월요일이 되면 그저 한 템포 서둘렀다. 알 수도 바꿀 수도 없다면 등 뒤의 태엽을 좀 더 바짝, 여러 번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원은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 월요일에도 늦잠을 잤다는 걸 깨달았다. 싸우고 각 방을 쓰며 냉랭하게 지낼 때마다 의식주를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아무렇게나 지냈고 생활 리듬이 엉망이 되었다. 아침은 씨리얼에 우유를 부어 먹기도 했지만 대부분 건너뛰었고 점심은 매장에서 해결하고 저녁도 포장해 온 음식으로 때웠다. 김밥을 감싼 호일이나 돈까스와 초밥이 든 일회용 용기를 버릴 때마다 지원은 이렇게 또 한 끼를 때웠구나, 자조했다. 그리고 때운다는 말에 대해, 때우면서 사는 날들의 고단함에 대해 생각했다. 때운다는 건 구멍이 나거나 빈 자리가 생기는 걸 일시적으로 메우는 것. 그래서 식사의 비용과 상관없이 때운다는 말 안에는 포만감이 없다. 지원은 가끔씩 찾아오는 거식증이나 폭식증이 포만감이 없는 끼니 뒤에 숨어 있다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원은 잠이 묻은 얼굴로 침대에 한참 앉아있었다. 9시가 다 된 시간과 바닥에 놓여있는 빈 맥주 캔들, 빈 집이 악몽의 여운 같이 느껴졌다. 봄이 되어 침대의 이불과 매트리스 커버를 바꾸기로 했는데 손도 대지 않았고 바구니 안에는 일주일치 빨래가 쌓여있었다. 지나간 일주일이 먼지가 되어 둥글게 말린 채 집 안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영진이 누웠던 자리에는 새벽까지 보다가 밀어둔 노트북이 놓여있었다. 집안 상태나 먹고 입는 것도 문제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이 가장 형편없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움직이거나 뭔가를 만들거나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고 해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친구를 만나거나 모임에 나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냉전 중인 상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을 게 아니라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대화를 나눠도 얘기가 겉돌 뿐이었다. 그렇다고 부부 싸움한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까발리며 징징거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만나지 않게 되었고 집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지원은 집에서 지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드라마 보는 일로 소비했다. 평소에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뉴스, 시사 관련 다큐멘터리를 주로 봤다. 특히 퇴근 후에 영진과 소파에 앉아 개그, 코미디, 토크쇼를 보며 웃고 장난치는 걸 좋아했다. 드라마가 나오면 체질에 맞지 않아 대부분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싸워서 거실에 혼자 남으면 지원은 무조건 드라마 다시보기를 눌렀다. 장르와 시대, 주인공만 다를 뿐 신파와 불륜, 권선징악, 사랑지상주의로 버무려진 한국식 비빔밥을 허겁지겁 떠먹었다. 


온 몸과 마음이 자신과 아무 상관없고 일어날 리 없는 허구의 얘기를 원하는 건지도 몰랐다. 지원은 힘들 때만 신을 찾으며 신앙을 회복하는 사람처럼 냉전의 시기를 지날 때만 드라마를 보고 드라마에 의지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새벽에 잠들 때까지 이어보기를 계속 눌렀다.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잊기 위해서 매달리고 빠져들었다. 그러다보니 늦게 자고 깊이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 


처음 부부싸움을 했을 때 운동을 했다면 어땠을까.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나가거나 헬스클럽에 가서 티셔츠가 다 젖을 때까지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면, 책을 읽거나 요리를 했다면, 그랬다면 이후의 삶이 매번 조금씩 나아지지 않았을까. 그러나 지원은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멍하게 앉아 몇 시간씩 텔레비전이나 보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다. 삶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성의 인간이라는 게 못마땅했다. 누군가 등 뒤의 태엽을 꼼꼼히 조여주면 좋겠다고, 야단치지 않고 천천히 친절하게 이 패턴 밖으로 데리고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원이 드라마 하나를 다 보는 동안 영진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왔다. 집에서 그는 게임을 했고 또 게임을 했고 계속 게임만 했다. 그 외에 그 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모른다. 지원이 아는 건 두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를 견디고 자신을 견디고 남아도는 시간을 견디며 버텼다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방식은 매우 닮아있었다.


그나마 일을 하는 게, 할 일이 있고 걸음을 빨리 하며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게 지원을 지탱해주었다. 사랑이나 관계가 위태로울 때 몰두할 일이 있다는 건 커다란 위안이다. 낮에 손님이 없을 때 지원은 종종 매장을 둘러봤다. 매출이 저조해도 출근할 곳이 있고 할 일이 있어 미친년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각 방을 쓰던 일주일 동안 지원은 집과 매장만 오갔다. 걸어서 삼십 분 거리라 봄이 되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 삼아 걸어 다녀야지, 마음먹었는데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 많았다. 마스크를 쓰고 다닐 정도로 건강에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만 스모그 속을 달릴 정도로 무모한 성격도 아니었다. 아파트 정문을 통과할 때까지 걸어갈까, 고민하다가 스마트 폰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곤 버스 정류장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버스의 창가 자리에 앉거나 서서 지원은 휴대폰에 저장해둔 음악을 들었다. 미세먼지 속을 지나가며 볼륨을 높이는 동안 숨통이 트인다는 기분이 들었다.


지원은 겨울에 신던 운동화를 신발장에 넣어두고 가벼운 스니커즈를 꺼내 신었다. 예령은 벌써 출근해서 매장 문을 열었을 것이다. 원래 오픈은 예령이, 마감은 지원이 하기로 정해두었지만 자신이 게을러지고 일을 미루는 순간 매장은 망한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령이 손님들에게 세일 상품을 보여주고 있었다. 근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들른 젊은 엄마들인 것 같았다. 한 사람은 여자아이 코트를, 다른 사람은 남자아이 점퍼를 손에 들고 살펴봤다. 두 사람 다 옷과 가격은 마음에 들지만 다시 겨울이 되었을 때 아이가 이 옷을 입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지원은 가방과 겉옷을 내려놓은 다음 계산대에서 예령과 손님들이 대화하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여러 사람이 와서 물건을 고르며 망설일 때는 행동력 있는 한 사람의 결정이 중요하다. 비슷한 이유로 망설일 때 그 사람이 사면 다른 사람들은 덩달아 사고 그 사람이 안 사겠다고 하면 아쉬워도 내려놓는다. 단발머리와 야구 모자 중에 지원의 눈에는 야구모자의 입김이 더 세보였다. 


두 엄마가 들고 있는 옷과 그들의 표정을 살피는 동안에도 지원의 머릿속에서는 영진이 겉옷을 들고 일어나 현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둘이 식어가는 코코아를 앞에 두고 무겁게 침묵하던 장면이 어른거렸다. 그때는 일 미터도 안 되는 테이블 너머가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같았다. 너무 멀어 낮과 밤과 계절이 다르고 쓰는 말이 다르고 사랑과 미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고, 다르고 달라서 건너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짐작할 수도 없는 곳 같았다. 그 거실의 풍경과 매장에서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엄마들이 아이의 옷을 고르는 장면 중 무엇이 더 현실적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예령이 지원 쪽을 쳐다보며 눈짓을 보냈다. 지원은 웃으며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테이블과 뒷모습과 현관문을 지우고 사람들 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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