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들기
오로지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7.2.27
20대나 30대에 직장을 구하거나 대학을 가고, 동네 학교를 벗어나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죠. 삶의 범위가 넓어지고 만나는 사람이 다양해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잘 하는 것이 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합니다. 어설프게나마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그 취향에 따라 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보게 됩니다. 남들이 보면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성취감으로 찬란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되기도 하죠. 물론, 욕심내서 나아가다 보면 시야가 조금씩 넓어져 성취감이 새로운 도전 의지로 덮여버리기도 합니다. 최근에 성취감과 새로운 도전으로 꺾여 퇴색되어버린 성취감의 상처 사이를 번갈아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흥분과 손끝이 저릿해져 오는 긴장과 즐거움으로 아주 즐겁습니다만, 성취감이 짧다는 것은 그만큼 아는 것도 짧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처음 팝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후로 9년입니다. 이 즈음에서는 직업으로써의 취미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조금 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나아가기에는 재료나 기법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태반입니다. 칭찬에 물들어 초보라는 사실을 잊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배우는 공방을 넘어 예술 제본을 하는 렉또베르쏘까지의 문턱 앞에서, 중급이 끝날 때까지 걸린다는 2년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패키징에 대한 공부도 고민 중입니다. 더불어 더 나아가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뭘 하고 싶었나, 지금은 뭘 하고 싶은 것인가, 도대체 뭘 어디까지 하고 싶은 것일까 되짚어 보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팝업북을 수집하다 2008년인가 처음 팝업북을 샀을 거예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였죠. 그 후로 로버트 사부다 선생의 몇 가지 팝업북을 구입해 보다가 2009년에 [나는 팝업북에 탐닉한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팝업 북도 신기했고, 수집에 대해서 달리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죠. 그 후로 조금씩 구입한 팝업북과 아트북이 세어보진 않았지만, 곧 백 권은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으고 보는 재미도 재미입니다만, 나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도 슬슬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런저런 기웃거림 끝에 [입체도형 팝업카드 만들기]라는 책과 [실루엣 디자인 팝업카드 만들기]라는 책을 발견함과 동시에 그 책을 디자인한 공룡과나비잠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룡과나비잠 사이트에는 여러 작가들이 공개한 무료 도안을 모아두는 게시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팝업카드를 만들다 2011년도에 두 책에 수록된 팝업을 만들어보면서 공개 도안으로 팝업 카드도 처음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때 만들었던 도안은 해상도가 낮아 접는 선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도안이었음에도 만들어 놓고 행복했었죠. 그 후로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팝업카드 만들기 책과 해외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도안들, 작가들이 공개한 무료 도안을 편견 없이 만들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무료 도안 사이트 중에 케논 크리에이티브 파크는 팝업뿐만 아니라 오토마타 등 다양한 도안을 공개하는 곳이라 한동안 이 사이트에서 노닐며, 팝업 이외의 다른 작업들도 만나보았죠. 3D 데코파주(decoupage)나 쉐도우 박스로 불리는 입체감 있는 작업도 이 사이트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각 작가들의 도안들을 보며, 각자의 특색이 있는 팝업을 좋아하게 되고 몇 명의 작가들의 이름을 알게 되면서 나도 팝업북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죠. 책으로써의 팝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바인딩을 배우다 팝업북을 엮는다면 그 묶는 방식도 알아야겠다 생각이 들어 바인딩을 배우러 갔습니다. 그런데 처음 배우게 된 바인딩은 속지를 표지에 실로 엮는 바인딩 기법이었죠. 팝업북의 표지를 생각하면서 갔는데, 실 바인딩이라니! 지금은 가능성에 대해서 종종 고민해 봅니다만,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었죠. 그 강의를 들으면서 북 아트에 대해서 살포시 알게 되었습니다. 상상을 책으로 구현한다는 것, 예술로서의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죠. 팝업은 아트북을 만드는 하나의 구현 방법이었던 것이고, 아트 북의 내용은 그림일 수도 있고 다양한 기록물일 수도 있고, 페이퍼 커팅일 수도 있고,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제한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러다가 2016년 1월에 롤링페이퍼 공방에서 강좌를 수강하면서 바인딩 기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즐거운 한 해를 보냈습니다. 동안 공방에서 수업한 작업과 개인작업을 합하면 50권도 넘는 노트를 만들었더군요.
페이퍼 커팅을 하다 일러스트레이터를 배우다 팝업을 만들다 보면 다양한 장식들이 많이 들어갑니다. 페이퍼 커팅의 욕망을 만들어 낸 책은 히로코 작가의 팝업 도안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도안을 그려보겠다고 들었던 첫 일러스트레이터 강좌가 최향미 작가가 [피어나다]를 내기 전에 진행했던 강좌였던 것도 큰 영향이었죠. 그 강좌를 듣고 도안을 그려보겠다는 생각이 깊어져 스쿨인더페이퍼에서 진행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강좌를 수강하게 되었죠. 아직 만족스러울 만큼의 도안은 못 그리지만 간단한 작업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페이퍼 커팅 한 작품으로 노트 표지를 꾸미는 작업에 호응이 많더군요. 페이퍼 커팅을 북 아트 작업에 적용하시는 분이 없었던 듯합니다.
직업으로써의 취미를 생각하다 지속적인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한 노력도 노력이겠지만, 직업으로써의 취미도 생각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팝업카드를 공부하면서 만든 카드들을 지인들에게 팔아서 기부활동을 했던 것도, 취미 전시에 출품해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살금 살금 욕심이 생겨나더군요.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욕심. 그래서 작년 이맘때 읽게 된 책이 [손재주로도 먹고 삽니다 ]입니다. 수공예 숍 오너를 위한 조언을 읽으며, 다양한 궁리를 하게 되면서 독립출판과 작은 서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래서 독립출판과 소규모 서점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
자수 책을 사다 직업으로써의 취미를 생각했으면서도, 앞으로는 당분간은 그럴 일이 없겠다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는데, 책 표지로서의 자수에 관해 알아보고 상상력을 펼치면서, 이제 이것은 취미라고 생각하기 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에 미치며 이제는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좀 긴 생각을 하여보았습니다. 자수와 페이퍼커팅과 바인딩이 이래저래 섞이며 리본공예까지 기웃거리다보니, 이것은 취미라기 보다 뭔가 종합예술을 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간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좀 일찍 시작할 것을 그랬어요.
※ 혹시 같은 고민을 하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 언급된 책과 강의들은 링크를 달아 두었습니다. 방향을 못 잡고 계신느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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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