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베토벤 9번 교향곡' 연주를 다양하게 접한 건 아니지만, 그런 빈약한 감상 경험 속에서도 이 연주만큼은 정말 색다르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번개에 맞은 듯한 느낌?! 땀을 뻘뻘 흘리다가 찬물로 기분좋게 샤워한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 연주를 들으면서 합창과 베토벤에 대한 충성심이 새록새록 다시 피어오름을 느낀다. 어줍잖은 음악이론/용어따윈 저멀리 내다버리고, 오직 이 음반을 들으면서 내가 느꼈던 바를 있는 그대로 몇자 적어 보고자 한다.

일단 달린다! 너무나 시원하다! 베토벤 9번 교향곡이라는 작품이 가진 숭고한 정신적 고양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무척 청량하고 듣는 이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든다. 이런 효과는 아마도 아바도옹의 각고의 노력을 거듭한 충실한 악보연구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 연주를 통해 나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특히 1악장의 '힘'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되었다. 8분 전후에 등장하는 팀파니 소리가 특히 강렬하고 매우 인상적이다. 이 팀파니는 날선 칼과 같은 현악군과 함께 2악장의 초입을 다시 한번 강타한다. 1악장의 기운은 이 Scherzo악장마저 장악하는 느낌이다. 이 두 악장이 한 덩어리가 되어 깊은 인상의 전반부를 장식한다.주지하다시피 아바도와 베를린필의 이 연주는 합창의 평균적인 연주들과 비교해 볼 때 약간 빠른 템포로 진행되는데, 그러면서도 작품의 '여유와 아름다움'은 고스란히 살아있다. 바로 3악장 이야기다. 참 예쁘다. 이 악장도 물론 같은 지휘자, 같은 악단의 96년 연주와 비교해 70초 가까이 빠른 해석이긴 하나(13:57→12:48), 오히려 베토벤이 바로 이런 3악장 연주를 원한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정갈하고 아름답다. 유려한 3악장으로 유명한 카라얀이나 동곡 최고의 해석으로 이름높은 푸르트벵글러와는 또 다른 美가 느껴진다(물론 다들 좋은 연주들로서 어느 연주가 특정우위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명한 이 작품의 4악장은 악장 초입에 등장하는 더블베이스의 인상깊은 음색과 성악의 시작을 알리는 바리톤의 'O Freunde, nicht diese Töne~!'부분에서 특히 큰 감흥을 느낄 수 있는데, 아바도의 이 연주는 이 두 부분 모두 만족스럽다. 특히 장애를 극복한 멋진 바리톤 크바스토프의 음색이 단연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동곡의 바리톤 연주로 이름 높은 그룬트헤버나 호세 반 담, 발터 베리 등과는 또다른 음색으로 그의 인생 역경이 목소리와 연주에 묻어나오는 듯 해 더욱 경건하게 들린다. 모든 악기군과 성악군 합창단들이 동시에 열기를 쏟아내는 총주부분에서도 각 성부와 악기들의 음색은 상당히 뚜렷하게 구분되어 들리고 또한 정갈한 느낌이다. 인간의 소리가 마치 하늘의 뜻과 맞닿을 것만 같은 이 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선 연주자 전원이 젖먹던 힘을 다하여 화려하고 감동적인 매듭을 짓는다. 모든악기의 격력한 울림(響)이 정적 속으로 아스라히 사라지면 위무 받은 우리네 가슴이 다시금 새 희망으로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이렇듯 난 아바도의 이 녹음을 통해 큰 감동을 경험했다. 얼마 전 정명훈 선생님의 베토벤 합창 연주회에 다녀왔는데, 정명훈 선생님도 이 작품이야 말로 듣는 이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음악 본연의 역할에 가장 충실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코멘트 해주셨던 게 생각난다. 더불어 이 음악을 통해 한국인들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싶다는 소회도 밝히셨다. 이렇듯 어느 악단의 어떤 지휘자 해석이건 '베토벤 9번 Symphony' 연주는 늘 큰 기쁨으로 다가오겠지만, 고전음악 애호가들은 물론, 베토벤 바이러스 등을 보고 '합창'을 처음 들어보려하는 분들까지, 이 연주를 아직 접해보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쯤은 꼭 감상해 보시길 적극적으로 추전드리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