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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oo
- 작성일
- 2019.8.18
1년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나에게
- 글쓴이
- 마리 로베르 저
동양북스(동양books)
저자는 어느 날 가구를 사러 이케아에 갔다. 설레고 신나는 마음으로 가구를 구경하던 저자는 어느 순간 문득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심정. 그때 그녀는 이케아 매장 한구석에 스피노자를 소환한다. 스피노자가 자신에게 커피 한 잔 건네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천천히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났다고 한다(스피노자는 욕망에 대해 철학 했다).
저자는 이케아 매장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철학을 일상으로 끌어오고 싶었다고 한다. 철학자가 우리 인생 문제의 상담자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 마리 로베르는 일상에 철학을 끌어온다. 철학은 상아탑 속에 갇힌 고매한 학문이 아니고, 우리 일생 속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이라 주장한다. 우리에게 위기가 닥치더라도 지혜로운 철학자들의 주요 철학 개념을 떠올리고 우리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 또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저자는 우리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12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주요 저서와 철학 개념을 소개한다.
① 밀
- 친구에게 진심을 말할 수 있을까 없을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공리주의자 '밀'을 소환한다. 그였다면 진심을 말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는 거짓말도 용인하긴 한단다. 다만, 두 가지를 충족한다면. 이견 없는 상황일 것, 거짓말이 허용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했다면. 뭐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밀이라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충족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진심을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고 좋아한다면 진심을 말하는 것을 택하고, 그 반대라면 거짓말을 선택할 거라고. 밀의 공리주의는 지금 우리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사람의 만족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밀은 양적 쾌락보다 질적 쾌락을 더 중요시했다는데 과연 이 두 가지를 인간이 구분하고 측정할 수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어려운 문제.
② 에피쿠로스
- 철학자 중에 제일 오해받는 철학자가 에피쿠로스가 아닐까 싶다. 소위 '쾌락주의자'라는 명칭 때문인데, 이 명칭의 이미지 때문에 많이들 오해한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한 상태'는 흥청망청 놀고, 먹고, 마시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와 반대인 잠잠한 상태를 뜻한다. 침묵하며, 사색하고, 자연과 벗하는 삶! 오히려 금욕주의에 가까운 철학이다. 에피쿠로스는 평화와 행복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한다. 그는 심적 평화에 제일 큰 장애는 '두려움'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을 하나하나 부숴버림! 그의 글을 읽으면 '햐, 정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부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해도 돌아서면 여전히 두려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그가 행복을 위해 조언한 말과 삶의 방식은 유익하다.
{ 에피쿠로스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문제는 행복하지 않다는 두려움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이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외부 세계에 덜 의존하고, 적게 가졌더라도 자족하며 존재의 기쁨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다. (...) 그의 야망은 오로지 단순한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는 것, 가능한 한 가장 소박한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40쪽) }
③ 아리스토텔레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 절제, 침착하게 생활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분위기를 자아냈는지 상상이 가능하다. 침착하며, 말보다는 실천이 앞선 사람이었을 듯. 이로 인해서 아우라도 대단했을 것 같다. 올바르게 행동하려고도 많이 노력했을 테지. 그는 올바르게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다지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행동들이 그 의지를 따라간다고 했단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 우리가 꾸준히 반복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단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재인용, 59쪽) }
④ 니체
- 명언 장인, 니체. 니체는 사람마다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 에너지가 우리를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힘을 향한 의지'라고 했단다. 무기력한 허무주의 보다는 '적극적인 허무주의' 지향!
{ 우리는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게으름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77쪽) }
이 두 가지가 극복하기 참 어렵죠. 사람은 마음에 안 들어도 늘 하던 대로 살기 쉬운 존재이므로.
⑤ 스피노자
- 저자가 이 책을 쓰는데 계기가 된 철학자,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욕망'에 대해 천착했다. 그는 욕망, 욕구, 의지, 충동은 보편적 가치이자 우리의 본성, 코나투스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 욕망 때문이라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욕망이 있고, 이 욕망이 바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주는 지표가 된다고 한다. 음, 맞는 말인 듯. 때때로는 '베블렌 효과'처럼 왜곡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과연 저자가 이케아의 한구석에 스피노자를 소환한 일은 잘한 일이었다.
⑥ 플라톤
- 『향연』, 에로스에 대한 대화들. 남자와 여자,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나저나 플라톤의 『향연』도 읽어봐야 할 텐데.
⑦ 파스칼
- 신과 대화.... 이 분야는 내가 관심이 없어서.
⑧ 레비나스
- '타자'에 대해 철학한 레비나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인은, 결코 우리와 같지 않은 인간이다.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타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할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⑨ 하이데거
- 하이데거는 근심과 불안,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고 한다. '죽음'을 사유하기. 우리 삶이 '죽음' 없이 성립할 수 있을까.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
⑩ 칸트
- 칸트는 사람들이 사랑의 변화무쌍한 감정에 속았다가,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관계도 일상적으로 정착되면 사랑의 감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단다. 참된 사랑은 감정의 기복이 덜하고, 굳건하다며 경험 보다 성찰을 중시한다. 흠, 맞는 말이긴 하지만 경험도 중요하다. 경험이 없다면 성찰이고, 이성이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⑪ 베르그송
- 아, 베르그송. 베르그송 하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 떠오른다. 소설 속 여주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베르그송 글 몇 번 보다가 떼려치우고 요가를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어쨌든, 그 책 속에는 베르그송의 철학이 상당히 어렵다고 표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마리 로베르의 책 속에는 뭐라고 설명되어 있을까. 베르그송에 의하면, '일'은 매우 중요하다며, 일 덕분에 우리는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들어서고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흠, 뭔가 상당히 막스 베버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⑫ 비트겐슈타인
- 비트겐슈타인은 문화권을 역사와 관습에 따라 진화한 고착된 언어라고 보았다. 언어로서 문화권을 나눌 수 있다고. 사실 언어 하면 '비트겐슈타인'이 떠오를 만큼 이 분야의 강자(?)이신데, 그래도 그분의 주장이 내가 볼 땐 좀 아리송한 부분이 좀 있다. 그래도 언어가 인간 사고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동의하며, 어느 집단이나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집단의 언어 규칙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동의한다. 같은 언어라도, 어느 조직, 어느 집단이냐에 따라 언어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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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고매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은 일상의 문제를 가지고 고뇌하고 숙고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쓴 글이 우리 일상과 멀어서일 뿐.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처럼 우리가 노력해서 그들의 언어 규칙에 익숙해지면 될 터. 철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다 그런 언어 규칙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제목 『1년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나에게』는 책 속의 한 챕터 제목을 조금 변형한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편의 소 제목이 <나는 왜 1년 전과 똑같은 실수를 하는 걸까?>이기 때문.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해 읽으면 기대와 사뭇 다를 수 있다.
이 책은 12명의 철학자들의 주요 개념을 소개하며 일상에서 부딪히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목표를 둔다. 아니, 고민 해결보다도 철학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책이랄까. 기대와 달랐지만, 어려울 수 있는 철학을 쉽고, 가볍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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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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