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벌레가 울어대는 와중에 약간 더운듯 약간 시원한듯 나른한 분위기에서 읽었는데 어찌나 이 작품에 대한 느낌과 딱 떨어지는지. 느긋한 마음으로 어딘가 여행지의 자연 속에서 읽으면 딱 좋을듯하다. 1978년도 작품인지라..라고도 말할 수 있고, 1978년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라고도 말할 수 있는, 뭔가 덜 스피디하고 덜 센세이셔널하지만, 추리소설의 본연의 맛은 은근히 품고있다. 이번작품의 영제가 A is for annoyance라는데, 향후에 더 나올 아 아이이치로의 전도와 도망은 어떤 영제가 붙을지 궁금하다 (분명 다음은B is for ,,,일거야).

 

아 아이이치로(亞 愛一郞)는 키도 크고 이목구미도 단정하고 피부도 하얀게 귀족수재를 연상시키는데다가 학자처럼 지적인 눈, 시인과 같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데가, 입매는 스포츠맨처럼 야무지고 옷차림도 점잖은 서른중반의 남자. 요즘 즐겨보는 케이블방송의 '익스트림 데이트쇼 러브체인지'에 나가면 일단 일차에서 호감을 얻을 만한 남자이다.

 

 

근데, 입을 열었다하면 행동을 했다하면 그의 입과 행동이 그를 배반하는데...그러니까 '익스트림...러브체인지'에선 2차에 모든 불을 다 꺼뜨릴 수 있겠다. 그래도, 여전히 미모의 덕은 남아 수사차 가는 기차안에서 도시락을 산다던가 목격자의 증언을 듣는데 유리하다.

 

직업은 카메라맨이지만, 그닥 돈되는 거라기보단 구름, 벌레, 뼈..등을 찍으며 관찰력이 은근 뛰어나 여기 작품집에 수록된 여덟사건의 핵심을 꿰뚫는다.

 

수록된 사건은 무난한듯 하지만, 은근 기발한 해석을 가져오는데...

 

신인상도 탔던 'DL 2호기사건'에선 비행기폭파협박을 받은 기업가의 정신세계와 확률을 분석하고,

 

'미기우데산 상공'에선 예리한 후각을 (흠흠, 나도 풀었네그려),

 

'삐뚤어진 방'에선 좌우대칭의 아파트구조를 캐치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은 다음에 하는게 어떻겠나" 고아미가 말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디까지나 말뿐이었다. 사실은 기도가 무단으로 401호에 침입하기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고있었다...p.127

 

(푸하하하, 나도 가슴 두근거리면서 기다렸어 ^^)

 

 

'손바닥 위의 황금가면'에선 피해자가 떨어뜨린 가면을 파악해 약간 좌절하려는 형사를 도우며,

 

'G선상의 족제비'에선 우리들 일상에서 마주치는 교묘한 암시를,

 

'발굴된 동화'에선 암호를 푼다.

 

...유리상자라고 실은 그 한가운데가 해골모양으로 파내져있거든요...유리과 공기는 빛의 굴절률이 다르거든요...해골구멍에 유리와 굴절률이 동일한 액체를 넣으면...빛이 굴절하지않고...유리구멍은 안보이게되죠....은색가루를 섞어...흔들면 은색금속이 액체속에 확산되니까 해골이 모습을 드러내고 가만히 놔두면...해골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p.254~ 255

 

(이장난감은 실제로도 안나왔을까나?)

 

'호로보의 신'에선 세계대전시 남태평양에서 고립되어있던 일본군이 맞닥뜨린 원주민들의 사건을,

 

..나카카미 : 쓸데없는 참견일지 몰라도 '뼈'라는 말은 너무 하지않습니까? 일본어에는 '유골'이라는 말도 분명히 있는데요..

 

아 : 그래서 말인데요, 선생님. 그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유골 말씀인데...어느 부분의 유골이었습니까?

 

학자: (나카가미 쪽을 흘끔거리며) ...그 뼈...유골은....p.321~322

 

 

'검은안개'에선 단순한 사건에서 살인사건을 잡아낸다.

 

 

아 아이이치로란 특이한 이름에다가 완벽해보이는 외모를 배신하는 행동과 언행으로 의외성의 재미를 가져다준다지만, 탐정보다는 작가의 말이 어찌나 재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표지도 재미있는데, 각각의 작은 그림이 과연 여덟편중 어떤 사건과 관계있을지 찾아보다가 각이야기 처음에 그려진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난, 가운데 오른쪽 도끼부터 시작하는줄 알았는데..).

 

이웃서점 알라딘에선 재밌는 추리관련 앙케이트를 하던데, 'G선상의 족제비'를 보건데 관련자의 불법성도 눈감아주면서 연기도 해주고, '발굴된 동화'를 보면 자비를 들여 수사도 해주는 아 아이이치로라면, 나의 탐정으로 삼아도 든든하겠다. 게다가 귀엽고 눈도 호사를 할 수 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