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단편집에서 같은 작품만 매번 감질나게 소개되는 체스터튼의 브라운신부, 영국의 중고서점에서 사오고 나니 역시나 5권의 번역서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Kel의 법칙은 작년여름이 아니라 벌써 2002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대강 읽고서는 1권외에는 큰 재미를 주지 않아, 다음과 같은 리뷰를 썼었다.

"논리적인 추리가 아닌 인간심리의 이해로 무장한 브라운신부라는 캐릭터가 지배하는 추리소설 (평점:, 2002-10-02)"

그 (아리스티트 발렝탱)는 '생각하는 기계'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무식한 말은 현대 운명론과 물질주의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p.17 (Does this mean that famous 'Thinking Machine'?)

그렇지만, 전자 (논리적인 추리)가 아니라기 보다는 후자 (인간심리의 이해)에 보다 의존하는, 결코 전자의 것을 간과하는 않는 것을 보여준다. 맨첫작으로 소개되는 작품이자 가장 유명한 [푸른 십자가]에서는, '...추적자의 눈을 끄는 기이한 것은 예외없이 추적당하는 사람의 눈도 잡아 끌 것이라는 생각이었다....'(p.19)는 발렝텡과, 여러가지 미끼를 던져보고 반응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브라운 신부의 모습을 통해 체스터튼의 추리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비밀의 정원]과 [이상한 발걸음소리]에서는, Nursery rymes이나 성경, 문학작품 등에서 제목이나 모티브를 따오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보라 창백한 말이 있나니, 이에 올라타는 자의 이름을 죽음이라 하느니라 - 요한계시록 6장 8절'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들을 세밀히 관찰하여 결론으로 이끌어낸다.

[날아다니는 별들]의 할리퀸 등의 연극 또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연상케하고 또한 의상이 이용된다. 기독교인에 대한 글을 쓴 체스터튼이였으므로 단순한 오락으로 사건의 해결로 맺지 않고 한마디를 던진다. '인간은 선한 일에 있어서는 일정 수준을 유지할 수 있네만 나쁜 일에는 그 수준을 유지할 수가 없다네. 점점 더 내리막길을 향해 내달릴 뿐이지 (p.164)'

[보이지 않는 남자]에 등장한 인물들의 기괴함은, [비밀의 정원]에서의 잔혹한 살인사건을 몇마디로 단순화시켜버린다 (딕슨 카라면 충분히 그로테스크한 배경에다 사건을 몇개 더 만들어 낼 수 있을 텐데...). 그에게 있어서 촛점은 사건 그 자체라기보다는 브라운 신부가 어떻게 사건을 푸느냐에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잘못된 모양]은 완전하진 못하지만 상황적인 밀실에서 피해자가 남긴 이상한 유언 '나는 내 손으로 죽는다. 하지만 이것은 살인이다! (p.230)'에다가 콜리지 (Samuel Taylor Coleridge의 Ancient Mariner) 를 배경으로 하여 보다 분위기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문학적 배경을 많이 깔고 있는 추리소설이 많으므로, 게다가 가끔은 영문학을 이용한 추리작품이 많으므로, 힘들었어도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것이 나에겐 정말 다행이자 기쁨이다).

[이즈리얼 가우의 명예]는 포우의 그림자가 느껴지며, [사라딘 공작의 죄악], [신의 철퇴], [아폴로의 눈] (여기서 플랑보의 이름이 에큘이라는 것이 언급되는데,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의 이름이기도 하다), [부러진 검의 의미]는 여기저기에 많이 수록된 작품이자, 체스터튼의 대표작으로서 재미까지 보장하는 수작이다.

체스터튼은 포우와 코난 도일 사이를 이으면서도, 디킨스와의 교류에서 알다시피 문학적 추구를 한 작가이다. 찰스 디킨스에 쓴 그의 책은 인터넷에서 텍스트로도 읽을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러나 성격은 만만치 않았던 디킨스와 오랜 시절 교류했다는 점에서 나에게 점수를 땄다는 점을 언급해둔다.

p.s: 시대적 배경이 그런건 알고 있지만 간혹 그의 글에서 동양에 대한 무지감과 막연한 두려움을 보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