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ical

Kel
- 작성일
- 2005.8.6
핑거포스트, 1663 (1)
- 글쓴이
- 이언 피어스 저
서해문집
경찰이라면 형사라면 하나의 범죄사건에 대해 여러 목격자, 증인, 관계자, 용의자들의 여러 버젼을 하나의 책으로 써내려 가는 아이디어가 그다지 신선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매일 듣는 것일테고, 여러사람의 여러얘기이던지 한 사람의 반복된 스토리이던지 듣다가 보면 어디선가 어긋나는, 일관성이 결여되는 부분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터이니까.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 웃긴 이름에도 불구하고 형이하학적인 나를 매혹시킨 몇안되는 철학자에 속하지만, 뭐 그의 이론에 맞춰 어렵게 작품을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 그저 읽다가 보면 그의 말이 자연스레 이해될 뿐이다 .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하는 기준에서 다른 이를 판단한다. 그 기준은 자신의 위치를 높이 만드는 잣대일 것이고, 남을 판단하는 동시에 자신의 만족을 추구할 것이다. 그럼과 동시에 어떤 이가 어떤 기준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 화자가 그 기준을 내적화해 원칙으로 내미는 경우일 수도 있고, 남에게 자신을 그런 기준으로 봐달라는 요구일 수도 있다.
옥스포드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첫번째 화자인 이태리인 마르코 다 콜라는 맨 처음부터 "나는 실제로 있었던 일만 말하겠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라고 사실을 강조한다. 사실을 얘기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100%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도치 않던 의도하던 간에 사실들을 연결하는 일부 중요한 사실을 누락시킴 또한 100% 진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사실을 말한다고 하더라고 어차피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 주관화 될 여지가 다분 많으므로 객관화된 사실만을 가리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유머스럽게 표현되었지만 영국인의 성격과 문화에 대한 지중해인의 편견은 그가 본 연극에서 극대화된다 (내용상으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 여러분도 추정해보시라 - 으로 추정했는데 - 나중에 맞는 것을 알았을때, 책줄거리와 상관도 없는 작은 것을이지만 짜릿한 재미였다 - 그는 오로지 이태리인으로서의 관점만으로 세계인의 클래식이 된 그 작품을 쓰레기로 취급한다 (뭐, 만인의 클래식이라도 어떤 이에게는 별거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두번째 바톤을 넘겨받은 잭 프레스콧 역시 이런 면에서 마르코 다 콜라를 비판하지만, 그 또한 지극힌 인간적인 이러한 경우를 벗어날 수 없다. 역시 그 또한 자신이 중시여기는 이야기와 관점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뿐이다.
이제 2권으로 넘어가다 보면 얘기가 조금 시들해질 수 있다.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화자의 말솜씨에 따라 까르르 웃는 농담도 있지만, 같은 얘기 몇백페이지씩 읽어봐라, 그 긴장도를 유지할 수 있을런지.
여기서 이안 피어스 (그리고 보니 이름 참 멋있지 않은가....어흠)는 윌키 콜린스보다는 조금 머리를 썼다. 같은 사건 얘기를 하더라도 얘기의 비중을 조금씩 다르게 두고 있다. 하기사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얘기를 풀어낸다 하더라도 그 사건에 대한 개개인의 비중이 다 일괄적으로 같겠는가 말이다.
조금씩 상대방의 정체에 대한 얘기가 엇갈리면서, 작은 사건들 또한 해석이 달라지면서 마음은 자꾸 다시 1권으로 넘어간다. 그러니까 콜라는 뭐라고 적었드라? 하면서... ([식스센스] 보냐?) 하지만, 여기서 부터 사건은 조금씩 조금씩 그 뚜렷한 윤곽을 찾아가고, 읽는 나는 편견에 사로잡한 한 인간의 외곩수? 자기 만족적 (결국은 자신을 괴롭히는) 해석을 보면서 혀를 차게 된다.
코끼리의 몸을 더듬고 있는 앞못보는 이에 관한 우화와 같이 난 책장이 계속 넘어가면서도 난 이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진실을 100%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시 읽으면서 형광펜으로 여기는 사실, 여기는 감상, 여기는 허구, 이런 식으로 색색깔로 칠을 할 수 밖에 없을 지도 몰랐다.
맨마지막 화자의 얘기가 - 물론 여기서 미스테리가 모두 풀리긴 해도 - 또하나의 버전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래서 다소 종교적인 엔딩이 마음엔 안든다), 진실과 따뜻한 마음이 얼마나 강력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알 수 있었다. 눈물이 나올듯 하면서 짜안한 느낌이었다.
2권 후반부에 이를때까지 열심히 읽어갔던 보람이 200% 보상받는 기분이다. 벌써 8월이긴 해도, 올해 별5개를 준 작품들을 쭉 훑고 난 뒤 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이 작품은 올해 상반기 최고의 작품이라고. 아, 올해 뿐만 아니라 이 미묘하면서도 달콤하면서도 질리지 않은듯 매혹적인 맛은 그다지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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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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